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다시 읽다
타국에서의 생활을 이야기 할 때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여유롭게 살 것 같다', '즐기면서 살아서 좋겠다'라는 말이다. 우스게 소리로 넘길 때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밤늦게 술 한잔 먹고 오는 전화나 카톡 등에서 전해듣는 말들은 그렇게 농담으로 돌리기에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생각해 보면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도 모르게 우리는 항상 시간에 쫒기면서 피로와 어깨동무하며 살아왔고, 그속에서 문득문득 우울함이 엄습할 때 이유도 모른 채 그것이 또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나도 20년의 직장 생활을 동안 그것을 경험했고 급기야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을 드러내는것을 어느 한 순간 느꼈기에 모든 것을 중단하고 도피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고국에서 들리는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간혹 나의 선택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나 역시 어느 삶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에, 항상 '잘 지내고 건강해라, '행복해라' 라는 말로 마무리하곤 한다. 외국에서의 삶은 그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기에 한국에서 느꼈던 피로와 우울함에 절대적으로 비교할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피로하고 우울할까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해결책을 찾기위한 첫번째 질문으로 선택한다. 어젓한 가정과 직장이 있고 돈을 가지고 있으며 가끔씩 자신의 뜻에 따라 여행도 하고 취미활동도 하는데 왜 우리는 피곤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함에 대해 불안해 할까? 안정된 삶에서 오는 행복보다는 무언가 항상 부족하고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가 사회생활 기간동안 생기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피로사회>를 비롯한 한병철 교수의 글들이 정확하게 진단해 줄 수 있을 듯 하다.
우리는 개인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물질의 량으로서만 측정 가능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 있는 한, 성과로 점철되는 지금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고, 그 자유가 다시 나를 억압하는 반복된 과정이 일어난다는 저자의 판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 지칠 때 멈추지 못하고 계속 달려야 하는 것이 사회의 미덕으로 자리잡고, '아니오' 라고 얘기하지 못하고 '예' 만을 대답해야 하는 '긍정의 과잉'이 주는 피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자신을 착취하는 어색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피곤을 느낀다. 멈추고 쉬고 부정하고 싶은 초자아의 욕망을 억누르면서 보상에 근거한 '돌격 앞으로' 스타일의 현실자아 사이에 벌어지는 간극으로 우리는 우울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치의 150% 이상을 쓰며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자신과 타인에게 거침없이 채찍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더욱 심할 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유래없는 경제발전이나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데에는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몸과 마음은 지치고 지쳐 번아웃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자신을 뒤돌아 보는 여유와 자신 성찰이 필요하지만, 되돌아 보지 못하고 미래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희망찬 내일을 부르짖으며 앞으로 나아가자고 선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는 참 피곤한 사회에 아직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위기는 그렇게 자주 오고, 1년에 한 번씩 들려오는 위기 대응체계라는 말이 이제는 친근할 정도니.. 끝을 맺지 않고 항상 진행형으로 살아야 하는 이 사회는 피곤한 사회가 참.. 맞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호모 사케르가 맞다.
코로나로 비롯된 지금이 위기가 일상의 위기와 합쳐져 우리는 더욱 더 피로를 느끼면서도 그 본질을 알지 못한 채 코로나 위기가 넘어가기만을 기대하면 버티고 있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갑자기 찾아 온 확실한 위기보다 일상의 생활에서 느끼지 못한 채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무형의 위기가 더욱 위험하다는 것.
조금은 어렵지만 글 속에 흐르는 큰 줄기를 찾아내면 이해가 빠른 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 사회인이라면 한 번 쯤은 일고 자신을 되돌아 보는 여유을 가져보길 바란다. 만약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것을 해쳐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메시아를 갈구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어쩌면 자신의 일상을 파괴하고 새로 건설할 혁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모든 선택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