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 치밀하게...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의 <심리정치>를 읽다

by Justin

한병철 교수의 책은 이로서 네번째 만남이다. <피로사회>, <투명사회>, <시간의향기> 그리고 지금의 <심리정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의 힘이란게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만들어 주는 책들은,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하는, 경험하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끄집어 내어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 묘미가 있다. 이 부분은 한병철 교수의 글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것을텐데, 최근 몇 권의 책들이 더 출간되어 읽기 전에, 그 동안 쌓아 놓았던 저자의 책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은 좋은 작업이 될 것 같다.


아마 작가 한 명의 책을 이렇게 단 시간에 읽은 경우가 없었을 것 같다. <피로사회>를 읽었을 때의 내가 느꼈던 감동이나 심리적 허망함이 너무 컸기 때문인것 같기도 하고 은연중에 자리잡고 있는 '억압'의 실상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한병철 교수의 글들은 미처 알지 못하고,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대신 이야기 해주는, 어쩌면 저자는 독자를 잠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채찍질을 든 인자하지만 엄격한 스승과도 같다.


네 권의 책에서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신자유주의'와 '인간'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으로 양분시켜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반대할 만한 일이지만, 사회주의 붕괴 사건 이후 자본주의의 대항마가 사라진 지금,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과속하는 자본주의와 그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왜?' 라는 아주 원초적인 질문을 가한다.


자기착취와 투명성에 근거한 한 단계 진보된 통제장치 그리고 미래를 향한 무의미한 희망찬가를 지나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며 체제를 굳건히 하는지를 설명하고, 지금 이 시간 자유를 만끽하며 24시간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몸부림치고, 이 세상은 살만한 거라는 노래가사처럼 정치적인 억압에서 벗어나 즐기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지를 깨닫게 하고, 그리고 그 자유가 돈의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에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의 자유로 기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면서 독자들의 머리 속을 텅 빈 진공관처럼 만든다.


우리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 수록 소득을 비롯한 삶의 수준이 불평등해 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체가 없는 적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여전히 불평등한 사회이고 돈의 유무에 따라 신분과 자유가 결정되는 사회라는 점을 '아주 최소한이라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순응의 압박은 부지부식 중에 당연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대 기술력의 상징인 정보통신 기술력의 진일보가 자본주의와 결탁해 소수 권력에 독점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아마 신자유주의 심리정치의 자발적 추종자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자가 진단하고 처방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부학은 우리를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며 '자기착취'와 '근거없는 희망고문' 그리고 투명사회가 어떻게 우리를 통제할 수 있는지 깨닫게 만든 이후, <심리정치>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달라' 라는 심리정치의 모토는 이 책의 출발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성적 사고에 의한 본질 파악, 끊임없는 '사유'야 말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는 말의 핵심은 '믿고싶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데카르트의 명언을 생각나게 만든다. 진정한 사유와 욕망으로부터의 일탈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끈질기고 아주 집요하게... 신자유주의와 자본에 들이대는 한병철의 다음 칼날을 기대해 보자.





이 글은 한병철 교수가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철학적 시각에 감명받아 쓰기 시작한 시리즈 형태의 글로써 2013년과 2015년에 걸쳐 쓴 글을 최근에 다시 각색하고 보완하여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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