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숙의 <독일 교육 이야기>를 읽고 생각해 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 자체의 스토리에 빠지는 경우도 많지만, 책에서 접한 내용을 모티브로 삼아 자신을 포함한 주변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더 큰 의미로 작용한다. 즐겨읽는 여행에세이 속에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찾아내는 쏠쏠함 다음으로 여행의 참맛을 배우게 되는 감정이입의 과정도 경험하고, 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몸 속으로 들어가 현장감 있게 사건을 체험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철학이나 역사, 사회문화, 예술을 기반으로 한 인문학 서적도 관계를 배우고 나를 되돌하 보는 성찰의 기회를 가지게 슬쩍 던져주니 나름대로의 훌륭한 매력을 가진다.
교육. 솔직히 말하면, 베트남 이주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동기가 바로 교육문제였다. 높고 낮건, 돈을 많이 벌던 그렇지 못하던, 사회에 진출한 성인들은 사회가 제공한 교육체계를 모두 경험하고, 무사히(?) 사회에 안착한 사람들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것을 당연한 인생의 과정으로 여기면서 살아온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모든 것을 중단하고 베트남으로 이주하게 된 것은 다음 세대만큼은 성년층이 경험한 교육 체계와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고 경험해 주고 싶은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한국보다는 못 살지만, 교육법 체계의 차이로 베트남은 훨씬 더 자유로운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서 학생들은 자유를 느끼며 스스로 무언가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였다. 얼마나 효율적이냐는 문제는 그 다음이었고.
박성숙의 <독일교육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 지나온 과정들을 생각하며, 교육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학교를 다녔고 야간자율 학습과 시험성적, 그리고 체벌을 경험한 세대로서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딸 하나를 키우면서 비로소 질문을 던져 보게 된 것이다.
어느 순간 교육이란 말은 우리에게 가르쳐서 무언가 직업을 갖게 하는 수단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최근 여러 학교에서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새로운 교육방식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기에는 부족하고, 사회 역시 그런 교육을 받아들이기에는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고교평준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여전이 많고, 외고나 특목고 폐지 반대는 학교의 전통와 사회적 네트워크의 단절로 받아들이며 주저한다. 결국 교육을 본질을 이야기 할 때, 교육은 사회 시스템의 일부로서 기능하며 사회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독일교육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 라는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자전거와 수영을 학교에서 배우면서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고 미술수업의 절반이 비평으로 이루어져 예술에 대한 안목을 기르며 영어보다는 체육을 소중히 하고 성에 대한 자연스런 접근으로 오히려 성에 대한 문제를 없애는 역발상을 보여주며, 외우는 경제와 사회가 아니라 참여하고 행동하면서 주변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는 학교 수업. 꿈만 같은 일이 동 시대를 사는 글로벌한 시대에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사실 이러한 교육을 반대할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공고한 경쟁적 사회구조, 더 나아가 학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인식과 사회적 보상 시스템은 누구도 섣불리 교육의 변화를 선택할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 기성세대가 쌓아올린 경쟁 구조을 허물지 않으면서 자신의 2세가 그것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이중적 사고가 교육의 본질을 잊게 만드는 강화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육은 말 그대로 '가르치고', '육성하는' 일이다. 누구를 평가하고 누구의 직업을 가지게 만드는 결과에 초점을 둔 지식 주입은 더욱 아닐 것이다. 주입된 교육이 반드시 모든 학생을 만족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교육에서 조차 출발점이 다른 1%를 위해 99%를 희생시키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부모들도 불평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만큼은 더 높은 자리를 점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은밀하게 진행되고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누군가의 말이 기억난다. 사회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진보지식인이 집회 현장에서 아들에게 전화해서 학원 잘 다녀왔냐고 전화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 변혁의 출발은 교육에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사회 오피니언 리더라고 평가받는 사람들 역시 자녀의 교육문제 만큼은 자유로운 사고의 틀을 벗어나 교육을 부와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을 위해 기능하는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독일의 교육이 우리의 것보다 낫기 때문에 따라야 한다는 절대명언은 아니다. 독일에서도 2차대전 이후에는 국가재건을 위해 소수 엘리트 교육을 해왔었다는 것을 보면 우리의 교육이 반드시 잘못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육에서조차 불평등이 존재하며 99%의 아이들을 미끼로 소수자, 특히 가진자들을 위한, 학력을 위한 학원교육이 중심이 된다면 이것은 크나큰 사회적 손해라는 점이다.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배우는 사람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일종의 성공을 거둔 아이들이 사회적 주체가 되었을 떄 과연 어떠한 사고를 가지게 될 것인가는 분명하다. 한국의 교육 체계를 벗어나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좀 더 자유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교육은 사회의 일부분이자, 변화의 시작이고 마무리이다. 하지만 교육 자체는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사회의 시스템이 함께 바뀌어야 진정한 교육의 본질 의미를 그 기능을 하지 않을까?
해외의 학교도 특례입학이라는 말로 한국의 대학에 좀 더 쉽게 진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많이 느낀다. 한국 학생들이 특례라는 사유로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순간부터, 그런 한국의 학생이 전 세계에서 교육의 질을 글로벌 하게 떨어뜨리고 있는지는 않은지, 걱정이다.
외국에서 본 한국의 교육 시스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하드웨어나 소프트 웨어를 이루는 교육 컨텐츠는 최상위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교육 소비자의 문제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