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바리스타가 되었습니다.
평생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살았다. 어릴 때는 당연하더라도 서울로 유학을 와서 자취할 때도 같이 살던 누나가 밥을 했다. 결혼하고는 식사 준비는 더욱 나의 일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혼자서 끼니를 때워야 할 때도 미리 준비해 준 음식을 차려 먹는 정도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음식은 라면 끓이기가 유일하다. 그러나 내가 끓인 라면을 식구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야채를 너무 많이 넣고 수프를 적게 넣어 싱겁기 때문이란다.
"아니! 라면은 김치를 같이 먹어야 제맛이니 좀 싱거워야 되지 않는가?" 항변해 보지만,
"라면은 역시 수프의 그 짭짤한 맛이 있어야지!" 소용이 없다.
이런 내게 식구들이 조르는 것이 있다.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아내와 둘째 딸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작 자격증이 없는 내게 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내린 커피가 맛있단다. 커피라면 유리병에 든 맥심 그래뉼 커피와 프림, 설탕을 2대 1대 2의 비율로 타서 먹는 것만 알았다. 지금도 원두커피보다는 믹스 커피를 좋아한다. 편리하기도 하지만 그 맛에 더 익숙하다.
나는 어쩌다 무자격 바리스타가 되었는가? 큐그레이드 자격을 가진 첫째 딸이 핸드드립 하는 것을 보았다. 원두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신기하고 궁금했다. 원두를 가는 것부터 드리퍼와 필터 그리고 서버를 준비하여 주둥이가 가늘고 긴 주전자로 물을 내리는 과정을 딸에게 배웠다. 내 손으로 해보고 싶었다.
"직접 한번 해보세요." 나의 속마음을 읽었는가? 딸이 권유했다.
물이 끓는 동안 그라인더의 입도를 세팅하고 스푼으로 원두를 계량하여 갈았다. 끓는 물을 주전자에 옮기고 온도계를 담가서 물의 온도를 맞추었다. 3분 이내에 드립이 끝나야 한다고 해서 마음이 바빴다.
그렇게 내린 커피 맛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식구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와! 정말 맛있어요!"
식구들의 칭찬에 나도 즐거웠다. 냉장고에 있는 과일을 씻고 잘라서 내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던 내가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시작한 핸드드립이 몇 년 이어지면서 자격증은 없지만, 우리 집에서는 가장 오랜 경력자가 되었다. 이제 내가 내린 커피는 주말 아침 식사의 첫 메뉴가 되었다.
외할머니가 모내기할 때 내오는 명태구이는 참 맛있다. 어머니의 조청 고추장은 윤기가 나고 달다. 어머니의 음식솜씨가 좋아서인가? 어릴 때 남의 집에 가서는 밥을 먹기가 힘들었다. 남들은 내가 입이 짧은 탓이라고 하지만 음식의 맛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나와 여동생은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누나는 횟집을 하고, 여동생은 궁중음식 인간문화재 이수자로 유튜브 요리 프로그램에서 21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내게도 요리하는 유전자가 있는가? 아내가 음식을 하면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여 묻고는 한다.
남자가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요리하는 남자가 멋있게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언젠가 여성잡지 부록으로 발행된 요리책이 있었다. 요리의 기본을 잘 정리한 책으로 기억한다. 요리에 관심이 생겨서 그 책을 구하려 했지만 방법이 없어 아쉬웠다. 나도 요리 좀 하는 남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