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타르의 해석을 경계하며
Barnett Newman, 'Cathedra', 1951 | Museum/nl\
저는 항상 '포스트모던(post modern)'이라는 개념의 정체가 혼란스러웠습니다. '모던(Modern)'이 어떤 역사적 전후 문맥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도 정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당시 일부 학계에서 논의되던 파편적인 포스트모던의 개념을 섣불리 끌어와 예술 비평에 차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트모던의 명확한 역사적 구분에 관한 저의 기본적인 입장은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시각과 일치합니다. 그의 방대한 역작 『역사의 연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개념은 '도전과 응전'이지만, 현재 다루고 있는 시대 구분이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제8권에서 아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토인비는 서구 역사를 암흑기(Dark Ages) ➔ 중세(Middle Ages) ➔ 근대(Modern, 1475~1875) ➔ 포스트모던(Post-Modern, 1875~)의 4단계로 구분했습니다. 특히 부르주아 계급이 지배력을 상실하고 대중이 전면에 등장하는 1875년(보불전쟁 이후)을 새로운 시대의 시작점으로 짚어냈습니다.
이러한 토인비의 거시적인 역사적 정의는 우리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체감하는 모던의 개념과 상당한 괴리가 있습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기인합니다.
첫째는 번역의 문제입니다. 모던(Modern)을 비롯한 근대적 용어들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 전후로 서구의 철학과 제도를 수입하며 한자를 조합해 새롭게 만들어낸 이른바 '화제한어(와세이 한고, わせいかんご, 和製漢語)'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 번역어들이 우리의 학문적, 실용적 체계에 그대로 이식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기에, 서구의 본래적 역사 경험과 어긋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물론 이런 용어들의 사용은 우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제의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역사적 아노미 현상입니다. 우리의 근대화와 현대화 과정은 서구처럼 수백 년에 걸쳐 자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압축적이고 타율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처럼 서구와의 뼈아픈 역사적 시차와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서구의 텍스트에서 출발한 포스트모던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더욱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토인비는 거대한 역사적 변환 과정과 그에 따른 인식의 전환까지 함께 고찰하며, 그의 방대한 저서에서 역사적, 인식론적 추적을 근거로 학계에서 거의 최초로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를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포스트모던의 철학적, 예술적 주창자라고 알려진 리오타르는 자신의 포스트모던 개념을 설명할 때 이 토인비의 역사적 고찰을 근거로 끌어다 썼을까요? 그의 저서 어디를 봐도 그런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가 푸코처럼 역사적 층위를 따라가면서 글을 쓰는 타입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변적 추상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포스트모던의 철학적 개념은 대개 다음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Incredulity toward Metanarratives)입니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을 계몽주의의 이성적 진보, 헤겔의 정신의 실현, 마르크스주의의 노동자 해방 등 사회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목적과 방향으로 정당화하려는 보편적 담론, 즉 '거대 서사'가 설득력을 잃고 붕괴한 상태로 정의했습니다. 과거를 설명하고 미래를 약속하던 거대한 이야기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둘째, 언어 게임의 다원성(Plurality of Language Games)입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 대표 저서인 『철학적 탐구』의 개념을 빌려와 보편적인 하나의 규칙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부정했습니다. 대신 사회를 서로 소통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통약 불가능한) 수많은 국지적이고 이질적인 언어 게임과 미세 서사들이 공존하는 상태로 파악했습니다. 절대적 진리 대신 각자의 규칙을 가진 다양한 목소리들이 산재하는 다원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셋째, 지식의 수행성 비판(Critique of Performativity)입니다. 현대의 정보화 사회에서 지식은 더 이상 '진리 탐구'나 '인간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권력과 자본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효율성의 논리에 종속된다고 보았습니다. 리오타르는 지식이 상품화되고 체계의 도구로 전락하는 이러한 수행성의 횡포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넷째, 오류추리 또는 패럴로지(Paralogy)입니다. 이는 시스템이 요구하는 맹목적인 효율성과 억압적인 전체적 합의(Consensus)에 저항하는 실천적 개념입니다. 기존의 고착화된 언어 게임의 규칙을 깨고, 창의적인 불일치와 역설을 끊임없이 만들어냄으로써 지식과 예술의 미지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그의 철학적 주장은 사실 당대 지식인들인 비트겐슈타인,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 등의 이론을 두루뭉술하게 반죽해서 빚어낸 하나의 사이비 철학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습니다. 그가 자신의 철학적 개념을 실증하기 위해 초기 추상표현주의의 한 명인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을 희생양으로 호출하는 방식만 봐도 그렇습니다.
바넷 뉴먼이 직접 쓴 글을 잠시 옮겨 보겠습니다.
「숭고는 지금이다 (The Sublime is Now)」 (1948년 미술 잡지 『호랑이의 눈』 게재) "지금 제기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 우리가 숭고하다고 부를 수 있는 전설이나 신화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 우리는 어떻게 숭고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가? 우리는 숭고함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열망, 즉 절대적 감정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다시 주장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유행이 지난 낡은 전설이라는 시대착오적 소품이 필요하지 않다. (...) 우리는 서유럽 회화의 장치였던 기억, 연상, 향수, 전설, 신화 등의 장애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나 인간, 혹은 '생명'으로 성당을 짓는 대신, 우리 자신으로, 우리 자신의 감정으로 그것을 만들고 있다."
리오타르는 저서 『비인간: 시간에 관한 대화』(1988)에 실린 「숭고와 아방가르드」(1984)라는 글에서, 자신이 내세운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을 증명하기 위한 희생제물로 바넷 뉴먼을 호출하여 다음과 같이 씁니다.
"아마도 낭만주의와 '모던' 아방가르드의 모든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은 '숭고는 지금이다(The Sublime is Now)'를 **'지금 숭고는 이것이다(Now the Sublime is This)'**로 번역하는 데 있을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저 위나 저 너머도 아니며, 더 이르거나 늦은 것도 아니고, 옛날 옛적도 아닌 바로 여기, 지금, '그것이 일어난다(it happens)' —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아무것도 없는 대신 지금, 그리고 여기에 이 그림이 존재하며, 바로 그것이 숭고다."
말하자면, 고전 미학의 숭고미에서 서사성을 거세한 뒤, 자신의 포스트모던적 숭고미의 전형으로 바넷 뉴먼의 텍스트를 교묘하게 비틀어 끼워 맞춘 것입니다.
저는 그가 왜 하필 숭고미를, 그것도 바넷 뉴먼을 끌어왔는지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그가 주장하는 철학적 개념을 뒷받침해 줄 수많은 현대 미술 사조가 이미 지천에 깔려 있었거든요. 팝아트, 대지미술, 옵아트, 개념미술, 신체미술, 설치미술 등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동시대 미술의 전형들은 1980년대 이전에 이미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굳이 리오타르가 철 지난 숭고미를 다시 꺼내든 것은,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차용한 고전적 숭고에서 서사만 쏙 빼낸 '신형 숭고미'를 제조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적 정당성과 독창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지적 장치에 불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의 다양성을 자신의 철학의 한 뿌리로 가져왔지만, 정작 작가나 감상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른 채 철학적 현학만으로 위장하여 우리의 정신을 기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리오타르가 주장했던 포스트모던적 예술론으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혹시라도 포스트모던의 개념을 쓸 일이 있다면 토인비에게 기댈 것이라고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확인해 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작품에서 숭고미를 느끼든, 우리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을 느끼든, 이렇게 상투적으로 제조된 철학적 개념은 작품을 대면하여 감상하는 실존적 현전성 앞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방해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밤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 혼자 열을 올리고 있는 저 자신을 생각하니 우습네요.
저의 개인적인 기록일 수도 있는 글을 항상 따라와 읽어 주시는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