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살면서 자꾸 생각나는 스토리, 더 리더~

by 따오기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스토리텔링을 공부하며 ‘나는 어떤 스토리를 좋아하는가?’, ‘그동안 어떤 작품에 감동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평소 폭력물이나 스릴러, SF 장르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공부를 위해 참고 삼아 보기는 하지만, 가슴 벅찬 감동이나 전율까지 느끼지는 못했다. 주로 《시네마 천국》, 《퐁네프의 연인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나 ‘비포 시리즈’ 같은 멜로물을 즐겨 보았다. 돌이켜보니 장르의 호불호도 중요하지만, 청춘의 시기에 접한 영화가 유독 가슴 깊이 오래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교수님께서 책과 영화 두 가지 매체로 구현된 작품을 소개해 보라고 하셨을 때, ‘이거다’ 싶어 떠오른 작품이 있다.


독일의 법대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이다. 이 소설은 2004년 국내에 출간되었고, 2009년 영화로 개봉한 뒤 2017년에 재개봉했다. 나는 2009년에 책을 먼저 읽었는데, 너무나 먹먹한 여운에 책을 덮자마자 영화를 찾아보았다. 대개 원작 소설이 영화화되면 두 매체가 별개처럼 느껴지기 마련인데, 『더 리더』는 책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영화의 탐미적인 영상미가 마치 하나의 세트처럼 촘촘하게 어우러졌다. 개인적으로 원작과 영화가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 작품은 열다섯 살 소년 미하엘과 서른여섯 살 여인 한나의 사랑을 통해 독일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조명한다. 우연한 도움으로 시작된 인연은 ‘책 읽어주기’라는 둘만의 의식을 통해 깊어지지만, 한나의 갑작스러운 실종과 8년 후 법정에서의 비극적인 재회로 이어진다. 재판 과정에서 미하엘은 한나가 종신형을 감수하면서까지 숨기려 했던 비밀이 바로 ‘문맹’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그는 끝내 침묵을 지킨다. 이후 감옥에 갇힌 한나에게 낭독 테이프를 보내며 소통을 이어가지만, 결국 한나는 사면되던 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야기는 인간에게 자존심이란 무엇인지, 연민과 사랑, 죄와 벌의 경계는 어디인지, 그리고 전쟁이 평범한 시민들에게 어떤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지 등 다층적인 고민을 던진다. 특히 미하엘에게 '낭독'이란 행위는 한나를 향한 지극한 사랑의 언어였으며, 문맹이었던 한나에게는 단절된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이자 생의 의지를 붙드는 끈이었다. 소년기에 시작된 이 뜨겁고도 처절한 사랑이 미하엘의 일생을 지배하는 것을 보며 ‘처음’이 지닌 무게를 다시금 실감했다.


그에게 왜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느냐고 차마 비난할 수는 없다. 성공한 법조인이 죄수가 된 옛 연인에게 선의를 베풀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같은 사회적 테두리 안에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자신의 커리어와 과거의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며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번민이 아프게 다가온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 나치 부역자라는 앞선 세대의 원죄를 목도한 전후 세대가 짊어져야 했던 도덕적 부채감과 혼란스러운 시대정신이 투영되어 있기에 그 고뇌의 무게는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여주인공 한나는 자신의 트라우마인 ‘문맹’을 비밀로 간직한 채 평생을 죄인처럼 숨어 산다. 결국 그녀는 무지로 인해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살아갔으며, 실제 죗값보다 가혹한 형량을 선고받는다. 훗날 감옥에서 글을 배우며 문맹에서 벗어난 뒤에야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스토리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 더욱 마음이 머문다. 작가는 후기에서 글로 내어놓음으로써 그 무게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다고 했지만, 그 짐이 정말 가벼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드러냄으로써 더 무거워진 것은 아닐지 염려되기도 한다. 딸에게 평생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했다고 고백하던 장면에서 그의 깊은 고뇌를 보았다. 그래서인지 평생 한 사람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한 그 무게가 진하고 아린 여운이 되어 나에게도 무겁게 전해져 온다.


나는 허구로 촘촘히 엮인 스토리도 좋아하지만, 사실에 기반을 둔 리얼한 서사에 더 큰 감동을 느낀다. 인간 본연의 사랑과 트라우마, 그리고 비밀이라는 소재 앞에서 우리는 모두 숙연해지며 그 세계에 동화된다. 미하엘이 한나의 집을 다시 찾아가는 도입부의 예사롭지 않은 공기, 재판장에서 한나의 결백(문맹)을 밝혀야 하는가에 대한 극적인 갈등, 그리고 출소를 앞두고 들려온 자살 소식까지. 이 모든 지점이 작품의 정점이다. 특히 독일의 시대상과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개인의 삶에 남긴 상처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아우른다.


영화를 보며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에는 육체적 욕망을 해소하는 에로스적 사랑이었다면, 상대가 곤경에 처했을 때는 그 존재를 지탱해 주는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승화되는 미묘한 변화를 느꼈다. 우리가 이 작품에 이토록 몰입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 가슴속에 말하지 못한 사랑 하나쯤, 혹은 저마다의 트라우마 하나쯤은 묻어둔 채 살아가기 때문 아닐까.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최고의 소재다. 나 또한 언젠가 이토록 특별하고 멋진 사랑 이야기 한 편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



더리더후.JPG 소년 미하엘과 한나 보다 중년의 그들이 더 아련하다.


8년 전쯤, 대학원에서 스토리텔링을 공부하며 과제로 썼던 글이다. 며칠 전 드라이브를 정리하다가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그때 그 감성이 살아나는 것 같아 업로드한다. 모 ott에 있던데 다시 영화를 보던가 책을 읽던가 할 것 같다. 다시 보면 또 다른 느낌이 솟아나겠지? 절절하면서 아픈 사랑이야기이자.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다. 소년부터 중년까지의 이야기라 더 리얼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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