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변했지만 자식을 위하는 그 마음의 결만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정월 대보름 하루 전이다. 어릴 적엔 보름 전날부터 준비가 한창이었다. 엄마가 지어주신 오곡찰밥과 고사리, 고비, 호박나물, 무나물 같은 갖은 묵은 나물들... 그땐 나물이 그렇게 맛난 음식인 줄 몰랐다.
남도 출장에서 어젯밤 막 돌아와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데, 큰애와 신혼집에 입주한 둘째가 모두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둘째까지 출가한 후 집안이 썰렁했는데, 보름을 앞두고 찾아오겠다는 아이들을 빈손으로 맞을 수는 없었다. 외식도 생각했지만 비도 오고, 두 돌 안 된 손주도 있어 묘안을 짰다. 단골 누룽지백숙 집에서 음식을 포장하고, 재래시장에 들러 오곡밥 재료와 나물을 사기로 했다.
흐린 날씨에도 시장은 보름 대목으로 붐볐다. 나물만 사려던 계획은 싱싱한 꼬막과 두루치기용 고기, 과일, 그리고 갓 나온 두부와 닭강정까지 샀더니 준비해 간 시장가방이 모자라 검은 봉지 몇 개가 더 추가됐다. 직접 요리하지 않아도 자식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만은 여느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 묵직한 교자상 두 개를 이어 붙였다. 제사 때나 꺼내던 상이 이토록 요긴할 줄이야. 오곡밥은 솥에 안치고, 사 온 음식을 그릇에 내놓으니, 그제야 현관에서 손주가 씩씩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비록 손수 만든 요리는 아니지만, 급히 공수해 온 정성이 더해진 또 다른 상차림이다.
손주까지 일곱 식구가 둘러앉았다. '닭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는 큰사위는 백숙과 닭강정에 금세 얼굴이 밝아졌고, 아직 새로운 가족 풍경이 낯선 둘째 사위는 뭘 해야 하나 두리번거리기에 앉으라고 자리를 내주었다. 평소 요리엔 관심도 없던 작은딸이 손수 만들어 온 팬케이크에 과일을 얹어 후식으로 내놓았다. 못 보던 딸애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흐뭇해 서로 놀렸다. 결혼이 사람을 이토록 변하게 하나 싶다. 모두 찰진 오곡밥 한 그릇 뚝딱 비워내며 나누는 이야기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손자가 외할아버지를 ‘아저씨’라고 불러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할아버지’ 발음이 어려워 아저씨라 부르면서도 할아버지를 정확히 가리키는 손주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돌아가는 아이들 손에는 미리 주문해 둔 김치와 여행지에서 사 온 김, 유명 빵집의 양갱을 똑같이 들려 보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농사지은 고춧가루며 마늘을 다섯 자식에게 골고루 싸 주느라 허리 펼 날 없던 엄마. 그 시절엔 손님이 오면 며칠 전부터 떡을 하고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드느라 준비 과정이 훨씬 고단했을 것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자식을 위하는 그 마음의 결만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평생 직장 생활을 하느라 서툰 솜씨지만,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만은 엄마를 꼭 닮은 것 같다. 특히 딸들만 있을 때와 달리 사위들이 생기니 ‘백년손님’이라는 말이 부쩍 실감 난다. 무엇을 좋아할지 늘 고민이다.
작은애 편에 오곡찰밥을 보냈더니 저녁에 가족 단톡방에 상차림 사진이 올라온다. 우리는 큰애네와 달래 된장찌개, 생선구이, 꼬막무침으로 봄을 맛보았다. 간만에 집밥을 먹는다며 좋아하는 사위를 보니, 조금 번거롭고 힘들어도 움직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들도 그래서 그렇게 바쁘게 사셨나 보다.
아이들을 보내고 뒷정리를 마치니 밤 9시가 넘었다. 며칠 전 ‘황혼 신혼’이라 이것도 단출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자식 수가 늘어 잔치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요리에서 해방되나 싶었더니, 이제야말로 진짜 요리를 제대로 배워야 할 시절이 온 듯하다.
이번 보름달은 개기월식으로 붉게 물든 ‘블러드 문’이라더니, 식구가 늘어난 우리 집도 여느 명절 못지않게 왁자지껄했다. 가족이 따뜻한 밥 한 끼 나누며 안부를 나누는 이 소박한 시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붉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온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해 본다.
(성수동 어느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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