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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오기 Mar 21. 2024

하얀 저녁 퇴근길

꽃도 좋지만 달도 예뻐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하나.


퇴근길, 회사 주변에 있는 오래된 빌라에 키 큰 목련이 보인다.


꽃만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습성에 넘의 집 마당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니

꽃과 함께 친구 하듯 어우리진 하얀 달이 렌즈에 잡힌다.


꽃도 좋지만

달도 예뻐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하얀 색깔이 닮았나?

둥근 모습이 닮았나?


꽃 속에도

달 속에도

그리움이 살포시 숨어 있는 것 같다

어릴 적 그 소년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둘.


퇴근길 출출해서인지

서둘러 나온 탓인지

전철까지 걸어가는 길이 유혹 투성이다.


맛있는 국숫집

찐빵과 만두를 파는 전설의 왕만두집

화양제일시장의 다양한 먹거리들이

자기 좀 봐 달라고 손짓을 한디.


눈으로

코로 손짓을 보내오는 걸

겨우 외면하다가 지고 말았다.


비록 냄새는 조금 나겠지만

그럼에도 맛나게 먹어 줄

식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꽁꽁 싸 달라고 해야지'

 '가슴에 꼭 안고 가야지'


오늘도 나는 찐빵

그이와 둘째 몫은 만두로 정했다.


'빨리 기서 먹어야지'

시간 반 걸리는 퇴근 길이 유난히 야속하다.


미처 먹어 보기도 전에

냄새로 허기를 채운다.


내 덕분에 고통스러울 이름 모를 옆자리 승객에게

말 없는 미안함을 전한다


'냄새야.

나한테만 오너라'


이래저래 하얀 저녁 퇴근길이다.







#목련 #만두 #찐빵 #화양제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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