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선생님

8 October 2024

by 밀리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이렇게 웃으면서 돈을 벌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삶의 터닝 포인트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건가. 2021년 겨울, 나도 모르게 터닝 포인트에 발을 내딛고 있었다.


당시 나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상태였다. 학교 과제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학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강의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고역이었다. 마감 기한이 다가오는 과제들을 잠시라도 피하고자 억지로 잠을 청했다. 차라리 잠을 자면 나아질 줄 알았다. 알람이 울리면 눈앞에는 해야 할 일이 더 짧아진 마감 기한과 함께 남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외침은 벽을 맞고 돌아오며 나를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대학교 4학년이 되기 직전, 결국 휴학을 결정했다. ‘어차피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새로 일을 시작했다. 5세에서 7세 아이들에게 독서와 한글을 가르치는 화상 교사 일이었다. 평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2명씩 30분 수업을 했다. 나는 컴퓨터 화면 너머로 선명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화면 속 작은 네모칸에 비친 나를 보고는 ‘선생님’이라 불렀다.


“선생님, 저 오늘 읽을 책 다 읽었어요!”

“선생님, 이거 제가 유치원에서 만든 거예요. 예쁘죠?”

“선생님은 어디 살아요? 아이패드 속에서 사는 거예요?”

“선생님도 엄마랑 아빠가 있어요?”


아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물음은 마치 무한한 세계를 탐험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순수한 호기심에 답하면서, 스펀지처럼 나의 말과 행동을 흡수하는 작은 존재들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들 앞에 설 때마다, 나의 언어와 태도를 하나하나 점검하게 되었다.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도, 이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가끔 선생님들이 나만의 특별한 점을 발견해 말해주던 순간들이 기억났다. “혜민이는 웃는 게 참 예뻐. 같이 있는 사람도 웃게 만드는 것 같아.”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고, 그 말이 가끔씩 떠올라 힘을 얻곤 했다. 그 기억이 나에게 다시금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아이들에게도 내가 그랬듯, 그들만의 특별한 점을 발견하고 알려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업이 끝나면 핸드폰 메모장에 그날 수업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특별한 행동이나 말, 그들의 개성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칭찬을 떠올렸다. 다음 주에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꼭 그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스스로를 특별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저번에 민지가 무지개색으로 칠했던 왕관 정말 멋있었어. 꼼꼼하게 색칠하는 건 집중력이 정말 좋은 거야. 대단해!”


“준용이가 수업 시작하자마자 웃으며 인사해줬을 때, 선생님 기분이 정말 좋아졌어. 밝은 얼굴로 선생님 맞이해줘서 너무 고마워!”



칭찬을 들을 때마다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양 볼에 금귤을 가득 넣은 듯 환하게 웃는 아이도 있었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리며 어물쩡 다른 말을 꺼내는 아이도 있었다. 그 다양한 반응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그저 ‘잘했다’는 칭찬이 아니라, 그들만이 가진 특별함을 알아주는 누군가의 관심이었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들의 질문은 여전히 끝이 없었고, 그들의 호기심은 나를 끝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내가 정말 이들의 선생님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지, 이 작은 사람들에게 어떤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질문들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질문을 통해 교사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넘어, 그들의 작은 세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 가서 동화 구연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대사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았다. 아이들이 이야기 속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더 실감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이 웃으면 더 크고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동화를 읽어줬다. 집에 돌아와 목이 쉬어도, 꿀을 바른 것처럼 계속 보고 싶어지는 그 작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짓곤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나는 소통 부문 우수 평가를 받았고, 내 수업 영상은 모범 교사 영상으로 선정되었다. 동료 교사들의 축하를 받으며, 얼얼한 기쁨을 느꼈다. 어쩌면 나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은 걸지도 몰라.


더 나아가고 싶었다. 유아 교사가 되어 아이들과 직접 마주하고 싶었다. 아이들의 세계 속에 들어가,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작은 손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유아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보육교사 자격증이나 유치원 교사 자격증이 필요했다. 2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나의 시선은 해외로 향했다. 우연히 호주에서 유아 교사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이다.


호주는 내가 가진 교육학 학위와 경력을 바탕으로 비교적 쉽게 교사 자격을 전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아 교사의 수요가 많은 나라였다. “나에게 딱 맞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결심했다. 호주로 가서 유아 교사로 일하겠다고.


그리고 지금, 나는 호주에서 차일드케어 에듀케이터로 일하고 있다. 아직도 이 선택이 나에게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주어진 시간은 1년.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고,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속에서 때때로 불안함이 엄습해오고, 지칠 때도 많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나에게 선사하는 벅찬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쉽게 웃고, 쉽게 기뻐한다. 음악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방방 뛰며 춤을 추고, 3분 전만 해도 소리 지르며 싸웠던 친구와 금세 화해해 블록을 함께 쌓는다. 그 작은 손길과 웃음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울 때, 나는 그 안에서 삶의 소소한 기쁨을 찾는다.


그들의 눈에는 언제나 호기심이 가득하다.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는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은 내 하루를 밝히는 등불과도 같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언제나 한 아이가 달려와 “미스 밀리는 어디 갔어요?”라고 묻는다. 그 작은 목소리, 나를 찾는 그 애정 어린 말들이 내 마음을 녹인다.


이곳에서,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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