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에서 진흙탕 한 뚝배기 하실래요?

by 블레스미

2020년 3월 9일 월요일.

그날은 남편이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매년 3월이 되면

세계 동종업계들이 라스베가스에 모여

전시박람회를 크게 열기 때문에

매년 참석 중이었고

이 출장은

상무와 상무의 집사로 활약하고 있는

도련님 고 과장이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다.




남편은 오후 비행기였기에

느긋한 아침을 보내고 있는데

문자가 하나 오더라.




'시간 되면 잠깐 봅시다'

S였다.




뭐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도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




말투도 '봅시다'라니

실수가 아니라면

이건 분명 좋지 않은 용건인 거다.




그걸 보고

답을 미루거나, 무시하거나,

뭔데 이러냐 따져 물었다면 어땠을까?




난 금요일에 만남이 있었던지라

그리고 분위기가 좋았던지라

'이 여자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만 들어

알았다는 답을 했고

집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오후비행기니까

점심때까지 시간 괜찮지?

금방 올 거야"




여자에겐 육감이 있다 했던가.

나갈 준비를 하는 내내

마음은 불안했고

몸도 미세하게 떨리더라.




맥도날드 주차장에 도착했더니

S의 차는 없었다.

나는 차에서 기다리다가

그 여자가 도착해서 들어가는 걸 보고

따라 들어갔지.




"안녕하세요"



"아, 네. 커피 주문하시겠어요?"




우린 키오스크에 서 있었고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우리 둘 다

금요일의 표정과 말투는 아니었다.




S만 커피를 주문한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필이면 매장의 한가운데 자리였네.




S는 무표정이었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을 시작했지만

말투는 언짢았고

화를 억누르는 듯 들렸다.




그러던 중 S의 전화가 울렸고

전화를 건 사람은 J였는데

지금 맥도널드에 있으니까

이쪽으로 오라고 말을 하네?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오라고 부르는 건지 어이가 없었지만

갑자기 뭔지도 모르고 불려 나온

그 상황에서

순서가 정해져 있는 듯 진행이 되니

이미 난

뭘 묻고 따지고 할 정신

아니었던 거 같다.




오로지 머릿속엔

이게 뭐지 하는 생각만.




"제가 웬만하면

그냥 참고 지나가려 했는데요

이젠 도저히 안 되겠어서

보자고 했어요.

이거 제가 주말에 정리한 건데

한 번 읽어보시고 설명 좀 해 보세요"




하면서 A4종이 한 장을 꺼냈고

거기엔 번호를 매긴 손 글씨가

쭉쭉 적혀있었다.




읽어보니

이랬던 일, 저랬던 일, 그랬던 일들.




그렇다.

S는

그동안 사모에게서 쪼임을 당한 일들을

날짜까지 해서 적어 놓았던 거다.

그리고 그걸 나에게 들이밀면서

그중에

내 입에서 나간 말이 어떤 건지를

표시하라며 펜까지 꺼내더라.




정말 말이 나오지 않았고

머리가 굳어져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는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나도 내 말이 전해졌다는 걸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

두 번째는

앞뒤로 뺴곡히 적힌 일들 중

내가 모르는 것들이

절반을 넘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어떻게 먼저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침묵의 시간이 있었고

내가 설명하려 입을 떼자

S는 듣지 않았다.




"아뇨, 됐고요.

그냥 표시 하시라구요."




그런 실랑이만을 반복하다가

S는 갑자기

출입구 쪽으로 손을 뻗어 보였다.




J가 온 것이었다.




J의 집이 어디인지 내가 알고 있는데

이렇게 빨리 도착한다고?

심지어 차림새를 보니

외출을 준비한 모습이던데

준비하고 기다리지 않는 이상

그 시간 동안 이게 가능하다고?




이것 말고도

둘이 계획을 짜고 벌인 일이라

판단한 이유는

J의 행동이었다.




와서 날 보고

어머 당신도 있었느냐,

둘이 무슨 일이냐,

뭔데 심각하냐 이런 말 하나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S옆에 앉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으면서

콧방귀를 뀌더라.




그런데 왜?

금요일에 서로 좋게 이야기하고

헤어졌는데

주말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계속해서 모든 게 의문이었고

어리둥절이었다.




다리를 꼬아 올리고 팔짱을 낀 채

옆으로 삐딱하게 앉아서는

말없이 나를 노려보던 J는

내 손에 든 종이를 가로채

읽기 시작했다.



"이거 봐~ 이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내 얼굴 앞에다 그 종이를 흔들어 대며

날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면서

코웃음을 치더라.




나에게 얼른 표시나 하라는

S의 닦달에

나는 설명과 해명을 하려 했지만

먹히지도 않았으며

그 둘이

도중에 내 말을 뚝뚝 끊어대며

치고 들어오니

도저히 말이라는 걸

아예 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J는 나에게

삿대질을 해 대며

테이블을 치면서 변명하지 말라고

소리도 지르더라.




"됐고!

누가 꼰질러 바쳤는지

언니 불러서 물어보면 되겠네"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J는 사모를 불러 3자 대면을 하자며

사모에게 전활 걸었다.




"언니, 나예요.

지금 좀 나와봐야겠는데?"




하지만 알겠다는 대답이 없었는지

나에게 전활 주면서

통화하라 하더라.




"사모님, 저 블래스미예요.

통화 괜찮으세요?"




사모는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며

남편이 오후에 출장이라

쉬고 있는데

꼭 가야 하느냐 물었다.




마음은 너무 죄송했지만

나 역시

사모가 꼭 와주길 바라는 입장이었기에

잠시만 와 달라 부탁을 했더랬지.



통화를 마친 후

나는 J의 눈 흘김과 삿대질을

또 받아 내야 했고

그러는 동안 사모가 도착했다.




출입구가 내 등뒤에 있어서

걸어오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성큼 걷는 발소리와

허덕이는 숨소리가 들리니

뭔가를 눈치채고 달려오셨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왜 이 시간에 여기 다 모여있는 건데?

나 금방 가야 하니까 뭔지 빨리 말해"




J는 S가 적어온 종이를

사모에게 들이밀며

읽어보라 말했다.

그리고는

이거 언니가 S에게 했던 말들 맞냐

묻더라.




사모는 그 종이를 대충 보더니

손으로 내리치면서

다짜고짜 언성을 높였다.




"니들 지금 뭐 하자는 건데?!"




그러면서

이 자리가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무슨 의도인건지를

S에게 따져 물었는데

S가 횡설수설하며 설명하자

사모는 그 말들을 다 끊어 냈다.




"니들이 미쳤구나.

지금 나를 엿먹이겠다고 둘이 붙어서

이 판을 짠 거야? 어??

S너 무서운 애다!

여태 너 나랑 통화한 걸

이렇게 다 적어 놓고 있었어?

그럼 똑바로 적어야지.

누가 이거 보면

내가 널 잡아 죽이는지 알겠네!

니 입장에서 니 입장만 적어 논 걸

이렇게 들고 다니면 다 되는 줄 알았어?

지금 나 협박하니?!! "




그리고는 시선을 J에게 옮겼다.




"야 너!

내가 계속 봐주고 있는 거 모르지?

니가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내가 모를 거 같애?

너야 말로

지금처럼 뒤에서 판 깔지 말고

붙을 거면 앞으로 붙어!"




난 사모가 오면

정식으로 4명이서

대화라는 걸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판의 기세는

순식간에 사모가 잡아 채 버렸고

그 판은 점점

J와 사모의 싸움이 되어갔다.




나는 온몸이 떨렸다.




이렇게 경우 없는 짓은

처음 당해 보았고

이런

싸구려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




손은 차갑다 못해 시커먼 색이었고

사시나무 떨리듯 몸이 너무 떨리니

혼자 계속 심호흡을 하고

내가 내 몸을 감싸 잡아야 할 정도였다.




사모는 그 걸 옆에서 느꼈던 건지

테이블 아래로

내 손을 꽉 잡아주더라.

진땀이 흐르는 차가운 내 손에

따뜻한 손이 포개어지자

눈물이 왈칵하는 걸 겨우 참아냈다.




그 순간 남편이 떠올랐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어쨌든 내 말로 시작된 부분이 있으니

이 일이 알려지게 되면

나는 이 주재원 부족에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고

그 여파는 내 남편에게 까지 퍼져

회사에서 망신을 당하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와서 어떻게든 잘해 보려

그동안 안팎으로 애썼던 게

다 물거품이 될 거라 생각하니,

내가 모든 걸 다 망쳐놨다 생각하니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제발 이게 꿈이었으면

제발 제발 꿈이었으면..

속으로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내가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사이에

사모는 멈추지 않고 호통을 쳤다.




같이 돕고 지내야 할

주재원 부인들끼리

어떻게 이런 경우 없는 일을

꾸며 댈 수가 있느냐며




"니네가 동네 일진이야?

니네 보다 나이가 적다고 해서

얘가(나) 만만해?

어떻게

한 가정의 어른을 불러다 앉혀 놓고

이렇게 양아치짓거리야!!"




라고 말했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2:1로 물리쳐내고 있으니

본인이 피해자라 여겼던 S는

발끈하며

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종이에 적기까지 했겠냐

말하면서 나를 보더니

애까지 건드리는 건

할 짓이 아니지 않냐 하더라.




"제가요? 제가 뭘요??"




그게 무슨 소리지 싶어 물었더니

옆에 있던 J가

왜 모르는 척을 하냐며

팔짱을 낀 채 꼬은 발을 바꾸면서

나를 보고 콧방귀를 뀌고

비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얘기인즉슨,

S의 막내딸이 영어가 서툴러

ESL수업이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렇다 보니 그 학교에는

난민 아이들이 많았나 보다.

그래서 내가 그 집 딸은

난민학교를 다닌다 떠들고 다녔다는데

나는 금시초문이네.




어리둥절해서

가만있는 날 J가 보더니

"맞네! 지가 떠든거 맞네!

저거 봐 아무 말도 못 하잖아!"

하더라.




그런데 그 순간,

가만 듣고 있던 사모가 입을 열었다.




"잠깐... 만..

야! J!!

그건 니가 나한테 해준 말이잖아!!

니가 나한테

S네 애들 난민학교 다닌다며!!!"




하........ 이 무슨....




순간 우리 모두의 눈은 J를 향했고

말 그대로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J는

두 손을 들어 손사래를 치며

S에게 말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들어봐!

그게 아니구~~"




나는 기억한다.

S의 눈동자가 흔들렸던 것을.

그리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J를 쳐다만 보고 있었던 것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니가 우리 집에 와서 그랬잖아.

쟤네집 애가 영어 못해서

난민학교 다닌다고!

창피해서 나 같음 안 보낸다고!!"




J는

사모의 말을 막느라,

S에게 아니라고 손을 흔드느라

바빴고

그 틈에 나는

S의 팔을 쳐서 나를 보게 만들었다




"방금 들었져?

내가 나 아니라고 했잖아!!

그쪽이 좋다고 붙어 다닌 여자가

당신 딸 욕하고 다닌 거였네!"




S는 내 말을 듣긴 한 건지

얼빠진 표정으로

각자 떠들고 있는 이 사람 저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사모는 J를 미친년이라 부르면서

니 속셈이 이거냐며 더 몰아붙였고

이간질도 똑똑해야 하지

니가 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면서

날 불러냈냐 면박을 줬다.




그랬더니 궁지에 몰린 J는

쏘아대는 사모를 향해

적반하장을 시작했다.




나를 골로 보내고 싶어 꾸민 일인데

오히려 자기가 골로 가게 생겼으니

에라 모르겠다였던 건지

이때다 싶었던 건지

그동안

사모에게 가졌던 불만과 화를

쏟아 낸 것이다.




손가락질과

눈 부라림과

반말과

욕지거리 종합세트로 말이다.




그랬더니

분위기는 정말

절정으로 치달아 버렸고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오죽했으면

내가 양쪽을 말리고 있었을까.




"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내 남편 앞에서는 벌벌 기더니만

내가 만만해?!

너 내 남편 앞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어?

어??

할 수 있겠냐고!"




그 말을 들은 J는

턱을 쳐들고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참나, 불러요 불러!

내가 뭐 죄지었어?

나도 할 말 많으니까 불러!

나도 내 남편 부르면 되니까

부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