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래치 작렬하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

by 블레스미

"그렇다니까~ 잠깐이면 돼 여보.

당신이 와야 나도 집에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지금 빨리 그냥 대충 입고 와봐"




결국 J의 도발에 활시위는 당겨졌다.




'정말 상무가 온다고? 이 자리에??

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머릿속에 로딩시계만 돌아갈 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냥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그 문자를 보지 않았다면,

답을 하지 않았다면,

만남을 거절했다면,

오늘의 이 상황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제 정말 망했구나 싶어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모든 게 자포자기가 되었다.

허나

머릿속이 하얘진 건 나뿐이었을까?




S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멍 때리는 모습으로 가만 앉아 있었고

J는 여전히

갈 데 까지 가보자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오래 걸리지 않아 상무는 도착했고

모여있는 우릴 보며 들어오는 얼굴을 보니

이게 무슨 일이냐는 표정이더라.




S와 J는 쳐다보지도 않는 와중에

나 혼자 반사적으로 일어나

말없이 허릴 간단히 숙여 인사했다.




"뭔데?

아침부터 왜 다들 여기에.."




상무는 다른 테이블의 의자를 끌어와

마주 앉은 J와 사모의 사이에 앉아

우리 모두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당신, 이제 이 차장 조심해!

얘네가 우리 뒤에서 딴 짓거리 하는 거

몰랐지?"




무슨 소리냐 묻는 상무에게

사모는 S가 적어온 A4종이를 보여줬고

그걸 보며 상무는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J가 끼어들었다.




"상무님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저 쪽 테이블로 잠깐 가셔서

저랑 얘기하시면 돼요"




하면서 일어나더니

한 손으로는

앉아있는 상무의 팔을 잡는

시늉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옆 테이블을 가리켰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내 남편이 진짜 오니까 쫄았냐?

여보 가지 마

여기서 내 얘기 듣고

쟤가 무슨 짓을 하는지 똑똑히 봐봐"




"아휴.. 언니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내가 직접 설명드릴게!

여기 이렇게

S랑 다른 얘기 하던 중이니까

언니는 계속 얘기해요.

내가 설명만 드리고 온다구~~"




무슨 설명을 하겠다는 거며

그 설명을 왜 지가 하나.




설마설마하던 상무가

진짜로 나타나니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건지

눈이 돌아갔던 J의 태도는 다시 돌아왔고

눈썹을 한 껏 꾸겨

간절한 듯한 표정과

읍소하는 듯한 목소리로

상무에게 말하더라.




지금껏 지가 보인 꼬락서니가 있는데

한 순간에 깨갱하는 비굴한 년.

창피한 줄도 모르는

낯짝도 두꺼운 년.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사모는 순순히 옆 테이블로 둘을 보냈고

J가 무슨 말을 하는지

말 섞지 말고 똑바로 들어 놓기만 하라고

상무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우리 셋의 대화.

사모는

S를 좋게 달래기 시작했다.




"이래서

내가 너 J랑 어울리는 걸 걱정한 거야.

도대체 무슨 소릴 듣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이걸 봐봐.

이게 지금 니가 계획한 꼴이니?

그리고 J 좀 봐봐라.

아깐 미친년처럼 대들더니

저기 가서 어쩌고 있나 봐 봐.

니네 딸 욕하고 다닌 것도 쟤라는 거

몰랐잖아!"




그 말 끝에 둘이 앉은 테이블을 봤다.

J의 어깨는 한 껏 안으로 말린 채

수그린 자세로 말하고 있었고

상무는 무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문 모습이었다.




딱 봐도

누가 기어들어가는 대화인지

알 수 있는 모습.




S는

사모의 설명과 달램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그동안 사모와 통화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는지를

쏟아내고 있었는데

J와 상무가 대화를 마쳤는지

우리 쪽으로 되돌아오는 바람에

S는 말을 멈췄다.




상무는

대충 무슨 일인지 알 것 같다며

나머지 이야기는 와이프한테 듣고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만나자 할 테니

오늘은 여기서 이만 나가는 게

좋을 거 같다 말했다.

(우릴 보는 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들 더 하실 말씀 있으시냐 물었고

나와 J는 바로 없다는 대답을 했지만

S는 자기는 아직도 할 말이 많다고.




아 놔..

더 있어봤자

서로 좋을 거 없다는 게 안 보이나??




"그럼 말씀해 보세요"




상무의 말에

그때부턴 이제

사모와 S의 판이되어 버렸고

원래 타깃이었던 나와

S에게 기름을 퍼붓던 J는

객이 되었다.




"저 사실

사모님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통화할 때마다

왜 이렇게 못되게 말씀을 하시고

저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




사모가 말을 끊었다.




"너 진짜 웃기는 애다!

너 이러는 거 니 남편이 알고 있니?

너도 당장 니 남편 불러!

와서 너가 이러고 있는 거

다 보고 다 들으라 해!!"




하.... 점입가경




대답 없이 무표정인 S에게

사모는

꿀리는 거 없으면

남편을 당장 부르라 소리쳤고

S는 내가 못하겠냐는 표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순간 제일 어이없었던 건

J의 표정이었지.




자기가 먼저

내 남편을 부를 테니

상무도 부르라고 큰소리를 치더니만

결국 자기는 부르지도 않고

상황을 이지경으로 만들었으면서

그 불똥이 본인에게도 튈까 봐

눈치를 보는 얼굴이니 말이다.




회사에 있던

S의 남편 염차장은 도착했고

모두는 침묵한 채

그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자를 끌어다 S옆으로 앉더니

S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고

사모는 염차장에게

S가 적어 온 종이를 들이밀었다.




"이거 먼저 읽어 보세요.

이거 S가 적어 온 건데

내용도 웃기지만

이런 걸 하나하나 다 기록해 놓고

사람 불러다가 취조하는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는데

알고 계셨어요?"




나를 압박하려 적어 나온

그 A4 종이는

사모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S 자신을 찌르는 칼이 되어 버렸다.




염차장은 그걸 읽더니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그 종이를 접었고

그 종이는 점점 작아지더니

염차장의 주먹 속에 갇혀 버렸다.




지원군이 되어 주지 못하는

남편을 보자

S는




"제가 얼마나 힘들면 그랬겠어요!

사모님 저한테 욕도 하셨잖아요!"




사모가

내가 너한테 언제 그랬냐며

증거 있냐 따져 물으니

녹음이 있다는 말을 하더라.

세상에...




S는 아이들을 차에 태운 상태에서

사모에게 전화가 걸려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는데

그날도 잔소리를 하더니

S가 맞받아치자

"너 죽을래?"라고 했다는 것.




그 전화를 끊고

큰 딸은 화가 나서

엄마가 왜 죽어야 하냐며

소릴 질렀다 하고

막내딸은 무서워 울었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통화를

자기가 녹음했다는 거지.




그 말을 듣자마자

이건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녹음까지 있다고 하니

S의 마지막 한방에

사모마저 나락이구나 싶었던 거다.




하지만 우리의 사모가 누구인가

젊을 적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2바퀴는 겪었을 사모라는 걸

간과했다.




"세상에.. 너 무서운 애구나!

너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누가 말만 하면

다 녹음하고 다니니?

염 차장님! ㅇㅇㅇ아시죠?

여보! ㅇㅇㅇ기억나지?"




ㅇㅇㅇ은

모두가 한국에서 근무했을 적

함께했던 직원이었는데

부하직원과의 대화를 녹음해서

분쟁이 생기면

유리한 쪽으로 이용해 먹다가

그게 밝혀져 징계 먹고

사표를 낸 직원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머나 얘 좀 봐~~

니가 그 무서운 짓을 하고 다녔네.

너 동의 없이 녹음하고

그걸로 이렇게 협박하는 거

범죄야 범죄!

다들 잘해 보자고

이 시골마을에서 개고생들을 하는데

서로 도와주지는 못 할 망정

통화를 녹음해다가 협박을 하고

맞는지 아닌지도 모를 일들을

하나하나 종이에 적어서

그걸 들고 다니고!

너 정말 무서운 애다.

염 차장님 이게 맞아요?

부인이

다른 주재원 가족들을 상대로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그리고 녹음이 있다고 해도

더 못 믿겠는 건

'죽을래?'라는 말이라고 했다.




사모는

그럴 경우엔 뒤진다는 표현을 쓰지

여태 자기는

그런 말을 써 본 적이 없다며

절대 자기의 말투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건 내 남편도 안다며

내 입에서

죽을래 소리 나온 거 본적 있느냐

상무에게 물었고

그런 말은

원수가 아니고서야

서로 장난식으로 주고받는 말인데

어떻게

무섭게 죽을래라는 말을 쓰냐며

넌 평소에 그런 말 쓰고 사냐 되묻더라.




생각해 보니

나도 뒤진다는 표현은 많이 들었지만

죽는다는 표현을 들은 적은 없었다.




어이가 없는 건지, 할 말이 없는 건지

그 이상 아무 대꾸도 없는 S에게

사모는

통화 녹음하고 다니는 무서운 여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기록해서 들고 다니는

이상한 여자라는 결론을 내주었다.




사모가 정말 그리 말했는지,

그 녹음이 정말 있는진 모르겠지만

불구덩이에서도 살아 나오는 여자였다.

역시 싸움은 기세구나

당황하지 않고

엎어치기를 해 버리는 기세!




그러고 나니 상무가

이쯤에서 그만 헤어지던가

다른 곳으로 자릴 옮기자 말했다.




맞다.

그곳은 맥도날드.




한 낮이 되어가자

점점 사람들은 많아졌고

한 중간에 모여 앉은 까만 머리들은

삿대질에

알 수 없는 언어로 언성을 높이고

테이블까지 내려치고 있으니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러다 직원은

영업방해로 경찰을 부르지 않을까

나는 내심 불안했는데

상무도 그 분위기를 읽은 거지.




하지만 불안한 건

나와 상무뿐인 건지

다들 미동도 없었고

오히려 S가 다시 입을 떼려 하자

상무는 그럼 우리만 남자 하며

나와 J를 집에 보내려 했지만

사모는

이렇게 마무리 지으면 안 된다며

일어서는 나와 J에게

금방 끝낼 테니

가지 말고 앞에서 기다려라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문 앞에 있는 빈 테이블에

잠시 앉았는데

J가 내 앞에 앉더라.




그러더니 갑자기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내 손을

잡는 게 아니겠는가?!

놀래서 쳐다봤더니




"하유~~

언니가 다혈질인 건

블레스미(나)도 잘 알잖아요.

그래서 저 둘이 오해가 생겨서

우리까지 이렇게 돼네"




이거 정말 미친년 아닐까?




날 담그려고

둘이 같이 판을 짜 놓고

이참에 사모까지 밟아야겠다 싶어

들이박더니

어떻게 바로 나에게 이러지?




나는 바로 손을 뺐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우려 했느냐

따지고 있는데

사모가 와서 내 등짝을 떄렸다.




"얘랑 말 섞지 말라니까!

이거 다

얘가 너한테 허튼수작 부리는 거야!"




염차장 부부는 그 자리에 남았고

우린 모두 밖으로 나왔다.

사모는 상무를 먼저 보내더니

J에게 너가 이런 사고를 칠 줄 알았다며

한바탕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맥도날드 안에 남겨진

염차장 부부를 보았는데

염차장은 고개 돌려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고

S는 털썩 앉은 모양새로 앉아

서로 대화는 없어 보였다.




그 둘이 얼마나 복잡한 심경일지

딱 알겠더라.

특히 염차장은 더욱더.

자기 부인이

직장상사를 건드린 꼴이니 말이다.




J에게 한바탕 퍼부었던 사모는

바로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놀랬지? 커피 마셔"




이 한마디에

나는 눈물이 터지고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길래

그 자리가 뭔지 알고

혼자 나가 앉아있었던 거냐 하면서

아까 J가 전화로 잠깐 올 수 있냐 할 땐

귀찮기도 하고 아침부터 뭐냐 싶어

싫다 했는데

내가 전화에 대고

나올 수 있냐 묻는 목소리를 들으니

이거 무슨 일이 났구나 싶어서

얼마나 허겁지겁 나왔는지 모른다

하더라.




"이거 봐~

구멍 난 바지 입은 거 지금 알았잖아"




하면서 보여주는데 웃음이 터지더라.

덕분에 조금씩 안정을 찾았고

그제야 몸에 온기가 돌았다.

그렇게 마주 앉아

사모는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J는 미국에 오면

자기가 사모의 최 측근이 되고

실세가 될 거라 기대를 했다고 한다.

통화할 때마다 느꼈기에

사모는

나는 너를 특별대우 할 생각이 없음을

내 비친 상태였는데

J와 내가 사모집에서 첫 대면한 날

사모가 날 가까이 여기는 걸 보고

나에게 반감을 가진 거 같다고 하더라.




참나...

무슨 삼각관계도 아니고...




"내가 J한테

너 칭찬을 많이 했거든.

그날 이후부터

널 이간질한 거 같아"




말이 칭찬이지

아마도 비교를 한 거 같다.

나에게 대학원 다니는 H를 갖다 붙여

경쟁시켰듯이

J에게 나를 갖다 붙였던 게 분명했다.

그러니 배알이 꼬일 수밖에.




그런 J는 S를 포섭했고

내가 사모의 끄나풀이며 꼬봉이니

절대 말 섞지 말고 조심하라

주입을 시켜 놓았던 거였다.




그래서 S가 날 피해

어덜트 스쿨 오후반을 다닌 거였구나

싶었다.




그렇게 얘길 듣는 과정에서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S의 꿍꿍이를 현실로 만든 건

사모였다는 것!




S가 J와 친하게 지내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던 사모는

S에게 잔소릴 자주 했었는데

그게 듣기 싫어 친하지 않은 척하던 중

둘이 쇼핑하러 같이 온 걸

내가 보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난

어덜트 스쿨에서 나를 피하는 S가

의문이었던 때라

왜 자꾸 날 이런 식으로 피하지 싶어

그 둘을 본 걸 사모에게 얘기하며

뭐 아는 게 있으시냐 물은 적이 있는데

그걸로 사모는 S에게 전화를

왜 날 속이고

몰래 둘이 다니는 건 무슨 꿍꿍이냐

쪼아 댔던 거다.




내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부분이 있는 일이었지만

S입장에서 보면 J가 말해 준 대로

나는

그 동네 최고의 고자질 쟁이였던 거지.




아니, 그러길래

안 친한 척을 하고 다녔으며

사모는 또 왜

그걸 가지고 쪼르르 전활 하냐고!




그러니 그게 학습이 된 S는

그날부터

사모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의 발단은

나라고 여긴 것이고

심지어 사모와 웃으며 통화를 해도

또 뭘 듣고 저렇게 날 떠보는구나

의심을 했던 것이며

J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하고 다닌 S딸 욕을

내가 했다 뒤집어 씌우는 걸로

옆에서 계속

기름을 붓고 있던 중이었던 거다.




오늘 이 막장도 마찬가지.




지난 금요일

S를 집으로 불러다 대화를 나누고

좋게 헤어졌는데

그날 저녁 하필이면

사모가 S에게 전화를 했더라.




전 날 화내서 미안하다는 사과로

통화를 마쳤지만

S는 오늘 낮에 우리 집에서 만난 일을

내가 사모에게 보고했다 생각을 한 것.




기분 좋게 대화를 하고

좋게 생각하자 마무리했는데

우리 집에서 가졌던 만남마저도

어쩌면 사모가 지휘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을 테니

사모와 내가

본인을 가지고 노는구나 싶어서

더 이상은 못 참겠다 폭발을 한 거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나에게 만나자 문자를 보냈던 거다.




"뭐?

금요일에 갤 집으로 불렀었다고??"




"그날 S랑 통화하셨었다고요??"




드디어 모든 것들이 연결되면서

의문이 해소되고

내 머릿속 마지막 퍼즐을 찾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내 앞에 날 위로해 주겠다고 앉은,

날 위해 전쟁터로 달려오고

상무까지 부른,

날 대신해

미친년들을 상대해 줬던 사모가

정말 너무나도 미웠다.




나를

사모의 끄나풀로 만들고

꼬봉으로 만든 건 J였지만

그걸 현실화시킨 건 사모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