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되고
한 여름의 무더위가 한창이었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맥도날드 대첩이 있던
그날로부터 멀어질수록
조금씩
일상생활이라는 게 가능해지더라.
그런데 그게
마음이 나아지고
정신이 돌아와서가 아니라
나도 좀 미친년이 되어서랄까.
그날 이후의 이야기를 듣게 되거나
작은 일이라도
그와 관련된 어느 일이 생기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가 생기고
막가파로 질러대는 모습으로 말이다.
욕도 많이 늘었고
더 이상 그들과의 일에 있어서
평화주의자는 아니었지.
마음의 상처에
아주 얇고 연약한 딱지가 앉았다.
나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물이 닿지 않도록,
말라서 갈라지지 않도록
엄살떨어가며 조심조심
셀프 방어 중이었는데
사모는 그러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사모는
몸과 마음이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허우적 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악과 깡의 수준은
보통사람의 것과
견줄 수 없는 수준이고
남들은
호랑이 굴에서
정신 차리고 나왔다고 안도할 때
사모는 그 굴에서
호랑이까지 잡아 나올 여자니까.
그런데 그런 모습은
그 사람 자체가
강철로 만들어져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
너무 강해 서랄까?
하도 많은 일을 겪은 인생이었기에
(자신의 지난 일들을 말해준 적 있다)
내가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뼛속까지 박혀있는지라
비상이다 싶을 때가 되면
자동으로
온몸에 철갑옷이 씌워지는 거였다.
그리고는
용감한 무적의 흑기사로
빙의되는 거였지.
그런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기쎈여자라 생각하며
혀를 내둘렀지만
사모는 그 빙의가 끝이 나고 나면
철갑옷에 쓸려 다 벗겨진 딱지들을
피눈물 흘리며 마저 떼어 내면서
'이 따위 상처로 죽지 않는다'
스스로를 다독였던 거였다.
그때는 몰랐다.
위로받는 사람은 나였고
사모는
그 위로를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괜찮냐 묻는 거,
이러니 이렇게 생각해라
저러니 저렇게 생각해라
조언해 주는 거,
그런 것들이 어쩌면
본인 자신에게 하는 말 아니었을까.
어떤 날은
꽤 오랜 시간을 통화하기도 했는데
그때 속으로
난 이제 괜찮은데,
난 그건 상관없는데라고 생각하며
뭘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가지 했거든.
근데 그때 그건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그 말들을 입 밖으로 내면서
본인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던 거였다.
그걸 어찌 알았냐고?
통화를 할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모가 맥도날드 대첩 이후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래 있던 불면증이
심해진 것도 있지만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한국에 아는 법조계 지인들과
밤새 통화를 하며
한 수 앞을 준비하기도 했더라.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까지? 하고 생각했지만
S와 J의
새로운 타깃이 되어 버렸던 사모는
심각하고 진지한 목소리였기에
꽤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구나 하면서
미친개한테 물렸다 생각하고
끝낼 줄 알았던 사모가
속으로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싶었던 거지.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꼴로
그 화근인 J와
통화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맥도날드에서
대판을 치르고 나왔을 때
사모가 J에게 내준 숙제였다.
사고 칠 생각 말고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나에게 보고하란 뜻이었던 건데
사모는 통화를 할 때마다
J를 이리 까고, 저리 까고,
돌려 까 대며
분풀이도 함께 하는 중이었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아다 한 번에 죽이지 않고
이리저리 건드리며
가지고 놀 듯이 말이다.
그러다 가지고 노는 앞 발을 깨물어
반항하기도 했는데
큰 타격감은 주지 못 한 채
오히려
더 두들겨 맞는 꼴이 되곤 했었지만
그 모든 일들이 사실 사모에겐
스트레스였던 거 같다.
"전화 안 받으셔서
바쁘신 줄 알고 바로 끊었어요"
"아냐 아냐, 좀 잤어.
내가 어제
아파서 잠을 좀 못 잤거든"
사모는 어느 날부턴가
배가 아프다고 했었다.
그 고통은 점점 자주
그리고 심하게 찾아와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었고
왜 이러지 싶을 때쯤
생리를 한 달에 두 번 하거나
한 달을 내내 하게 되면서
아마도
자궁 쪽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짐작만 하고 있을 때였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상무는
도저히 불안해서 안 되겠다며
병원을 예약했고
모든 검사를 마친 후
결과를 보러 다녀와서는
나에게 전화를 해 주더라.
뭐라 하더냐 묻는 나에게
사모는
어린아이처럼 밝은 모습으로
병원이 크다느니
의사가 잘 생겼다느니 하는
쓸데없는 소리만 한참을 하더니만
한다는 말이
"나 수술해"
모든 증상이 자궁을 의심하게 했고
이리저리 검사를 해 봤더니
자궁에
혹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고 하더라.
의사가
이 정도면 많이 아팠을 텐데
어찌 참고
이제야 병원에 왔냐 했다네.
크기가 큰 것도 문제지만
한 두 개가 아닌 상태에서
몇 달째 약도 통하지 않는 통증에
하혈을 하고 있으니
자궁적출 수술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했다.
그 말을 듣고
상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동안 서성이고 있으니
원하면
치료 쪽으로 진행해 볼 수도 있지만
크게 나아질 수준은 아닐 거고
그 시간 동안 환자는
그대로 고통에 노출될 거라는 말에
사모는 수술을 하겠다 말했다고 했다.
상무는 충격을 받아
똑바로 앉아 있지도 못하고
난리를 치며
치료를 먼저 해보고
결정하자 했다는데
그러면 아픈 걸 버텨야 하는 건
사모의 몫이니
자긴 더 이상 참을 자신이 없고
솔직히 지금도 죽도록 아파서
제발 빨리 끝내고 싶다 말하며
수술 날짜를 잡고 왔다는 것이다.
"딴 데 아닌 게 어디야.
이건 떼 내면 되는 거잖아.
내가 애를 낳을 것도 아니고
좀 있음 폐경인데.
수술만 하면
이제 아프지도 않을 거고
잘 됐어!"
되게 후련하고
속 시원하다는 말투였고
이제 고통 끝 행복시작이라며
긍정적이고 밝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다시 또
갑옷을 찾아 입었구나 싶었다.
그 속에서 상처는
또 덧나고 있었겠지.
"근데 있잖아,
의사가 뭐랬는 지 알아?"
혹시 몰라서
작년 한국에서 했던
종합검진 결과지를 가져갔었는데
의사가 그걸 보더니
이 때는 깨끗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며
혹시 최근에
극도로 스트레스받거나
힘든 일이 있었냐 묻더란다.
"나,
그년들 때문에 이렇게 된 거 같아"
순간
온갖 말들이 머릿속에 엉켜
입을 벌려도
쏟아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감정이 솟구쳐
전화기에 대고
그년들 욕을 해대고
화를 주체할 수 없어
펄쩍 뛰게 되더라.
왜 그렇게 눈물은 쏟아지던지.
스스로 무너질까 봐
태연한 척한 거 다 안다.
그럼 더 힘들어 질게 뻔하니까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가깟으로 원 안에 서 있다는 걸
다 안다.
그래서 내가 욕을 하고
울며 불며 화를 내는 모습에
흑기사가
조금이라도
대리만족 되었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