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의 수술날짜는
코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뭘 해 줘야 하나 싶어서
마음만 바쁘던 나날들이었다.
한국에서 수술을 하면
무엇보다도
마음의 안정은 따라올 테고
음식이며 회복하는 방법들이
한국사람 몸에 맞게 이루어질 테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수술이라면
한국에서 하는 게
여러모로 낫지 않을까 했지만
그때 한국은
COVID 19로 인해
비행기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고
의료시스템이 붕괴되어
환자조차
병원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던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얼마나 도움을 줘야 하나
싶었던 거다.
하지만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사모가 아니기에
수술하는 날짜와 시간만 알려줄 뿐
뭐 하나 부탁하는 것도 없고
내가 물어도 괜찮다는 말만 하니
더 고민이었던 거지.
시간은 금세 흘러 수술날이 되었고
나는 집에서
혼자 시계를 볼 때마다
지금쯤 이러고 있으려나
저러고 있으려나 생각하다
사모에게 가져다 줄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은 복강경 일 경우
수술 후 2~3일 입원하는
시스템이지만
미국은 수술 후 별 문제가 없다면
당일 퇴원을 하기에
저녁쯤 집으로 돌아올 사모에게
첫 끼니는 죽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소고기 야채 죽을 한 솥 끓여 놓고
남편을 시켜
상무에게 연락을 해 보았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도 읽지 않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나
한참 애를 태우고 있는데
상무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술이 늦어져
이제야 집에 간다 하시길래
정신이 없으실 거 같아
다른 건 묻지도 않고
그냥 도착할 쯤에 맞춰서
남편이 죽을 가져다 드리고 왔네.
그리고는
귀찮고 힘드실 거 같아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 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바로 사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블래스미~
죽 너무 잘 먹었어~~"
사모의 목소리는
독감에 걸려 죽다 살아난
걸걸한 목소리였다.
괜찮으시냐,
수술은 잘 된 거냐,
지금은 어떻냐,
혼자 화장실은 갈 수 있으시냐..
난 참고 있던 질문들을 쏟아냈고
사모는 역시나
별거 아닌 일에 뭔 호들갑이냐는
말투였다.
"근데,
어제 왜 이렇게 늦게 오신 거예요?
수술이 늦게 끝난 거예요??"
본인이야 마취하고 누워 있으니
몰랐는데
나중에 상무가 말해주기를
수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상무를 부르더란다.
수술을 시작해서 뱃속을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아
난소를 함께 제거할 수도 있기에
그것에 동의하는 동의서를 받아가고
추가 인력을 대기시키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니 눈이 질끈 감기고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근데 있잖아
수술 후에 의사가 뭐랬는지 알아?"
적출한 자궁을 살펴보니
자궁 뒷 쪽으로
검사 때는 보이지 않던 혹들이
한가득이었다며
의사도 수술하길 잘했다 하더란다.
"병원에 더 누워계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장기 하나를 적출했는데
수술 잘 됐다고
당일에 퇴원시키는 나라였다.
퇴원시키면서
진통제를 얼마나 세게 넣었는지
화장실도 혼자 걸어가고
어젠 어느 정도 버틸만했는데
오늘을 돌아 눕기도 힘이 든다 했다.
사모랑 통화를 하는 내내
속으로
한숨을 얼마나 쉬었는지 모른다.
"너가 해 준 죽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수술이 늦게 끝나
온 식구가
쫄쫄 굶고 있었다고 하더라.
사모도 몸이 아픈 그 와중에
배가 고팠는데
뭘 씹어 삼키기는 싫다 하던 중
내가 끓인 죽을 받은 거였다고.
사모가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먹고 있는데
부엌에서 아들과 남편이
냄비 바닥까지 긁어먹으며
더 먹고 싶단 소리가 나더란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러면서
역시나 젤 필요한 게 음식이지 싶어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고
국을 왕창 끓여 가져다 드리고
삼계탕과 삼계죽을 끓여
가져다 드리기도 했다.
그때 그 삼계탕 맛이
머릿속에 콕 박히셨는지
그날 이후
삼계탕 얘기만 나오면
내 이름을 말씀하셨지.
사모의 수술 소식은
몇 집만 아는 상태였는데
거기엔 J도 포함이었다.
처음엔 그 소식을 들으면
통쾌해할 거 같아 말하지 않았는데
점점 갈수록
원망이 들고 화병이 생겨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J가
자기 딴에는 위로한답시고 뱉은 말이
"야유~~ 언니,
수술하는 건 좀 그래도
생리 안 해도 되니까 좋지 뭐~"
미친...
그게 당사자 앞에서 할 말이냐!
위로한답시고
니 머릿속에서 나온 수준이 그거냐!
그 말을 들은 사모는
속에서 용암이 솟구쳐
넌 이게 좋아 보이냐며
그렇게 좋으면 니가 가서 하라고
소릴 쳤었다지.
그런 개소리나 할 줄 아는 J가
어느 날 미역국을 끓여 왔다 했다.
"내가 자는 동안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받아 놓은 거야!"
불똥이 상무에게 튈 만큼
불타올랐던 사모는
상무에게 당장 갖다 버리라고
소릴 쳤고
그 미역국은
싱크대 음식물 분쇄기로 직행되어
흔적도 없이 갈려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도
무슨 영양제를 사 왔다던데
사모는 내가 미쳤냐며
걔가 주는 게 무슨 약인 줄 알고
내가 받아먹냐 난리를 쳤었지.
그렇게 회복을 하는 시간 동안
사모는
복통으로 힘들어하기도 했고
갑작스럽게 심한 하혈이 있어
한밤중에
응급실로 가야 하는 날도 있었다.
모두가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모를
시간을 보내고 나니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사모는 거의 모든 면에서
일상으로 복귀 한 모습이었다.
상무는
그동안 챙겨준 게 고맙다며
저녁을 사겠다 했다.
나야 누구라도 그랬을,
그래야만 할 일을 한 거뿐이었는데
인간의 도리를 하지 못하는 여편네들이
주변에 널린 덕에
내가 돋보이게 된 꼴이라니.
더불어 내 남편까지도
상무눈에 아군으로 읽혔으니
내조도 한 셈이었다.
"블래스미,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다운타운에 있는 좋은 식당에서
오랜만에 모두가
하하 호호하는 시간이었다.
회복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수술이 잘 되어
이렇게 마주 앉아 웃으며
지난 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모른다.
이제 제발 아무 일 없이
지금만 같아라 하던 순간이었지.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거
우린 모두 잘 알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