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색
“철학은 그것이 제기하는 의문에 대해 진실한 대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르쳐주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사고를 확대하고 습관의 횡포로부터 사고를 해방시키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흔히 철학은 실생활에 유용성이 없다고 말한다. 인생을 깊이 공부한다지만 돈벌이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으니 대학 입시에서도, 취업 전선에서도, 결혼 시장에서도 외면당하기 일쑤다. 학문의 황제라지만 인기는 바닥이며, 퇴조하는 인문학 대열의 맨 앞줄에 서 있다.
하지만 철학한테는 억울함이 있다. 가장 먼저 생긴 학문이어서 쉼 없이 몸집을 키워가다 돈벌이가 될만하면 흔쾌히 분가시켜 준 것이 죄가 되었으니 말이다. 천문학, 물리학, 기하학,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은 모두 철학의 아들딸이다. 요즘 인기 절정인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실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과학’의 영역으로 옮아가고, 그럴 수 없는 분야만 철학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러셀은 철학의 유용성을 당당하게 말한다. 첫머리에 소개한 문장은 그의 저서 ‘철학이란 무엇인가(The problems of philosophy)’에서 인용한 것이다. 철학의 가치가 대부분 불확실성 속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 검증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 상식, 자기 마음속에 자라온 확신이나 편견, 습관의 횡포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철학에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러셀에 따르면, 철학과 인연을 맺지 않거나 맺지 못한 사람은 평생 각종 편견에 사로잡혀 산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너무나 명확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착각인 줄도 모르고, 현실에 안주한 나머지 미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무시해 버린다. 이런 사람들에겐 발전과 성장이 있을 수 없다는 게 러셀의 진단이다.
반대로 철학을 한다는 것은 보다 높은 차원의 생각을 하거나 광범위한 사유 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이는 파괴적이고 혁명적인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기존의 제도나 편안한 습관을 과감하게 깨부수려고 한다. 안정적이며 조용한 균형 상태보다는 불안하며 시끄러운 불균형 상태를 즐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발전과 성장은 이런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그렇다. 철학을 하는 사람은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전통적 가치관이나 주의주장에 매몰되지 않고 지적 자유를 추구한다. 저명한 철학자들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평생 광장에서 질문을 던지며 살았다. 임마누엘 칸트는 전문가의 권위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라고 설파했다. 또 프리드리히 니체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공격하는 사람이어서 ‘망치 든 철학자’라 불렸다. 이처럼 철학을 하는 사람은 현재 믿고 따르는 가치 체계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런 사람에겐 혁신 의지에다 통찰력까지 생긴다.
러셀은 철학에서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철학 관련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소리로 들린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직접 철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나 철학적 사색을 즐겨하면 꿈꾸는 사람이 된다. 러셀은 말한다. “철학적 사색을 하면 자기가 아닌 것에서 출발하여 그 위대함으로 자신의 경계를 확대할 수 있다.” 현재에 머물고 싶은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비록 춥고 험난하더라도 참된 자아가 가리키는 대로, 광활한 꿈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말이다.
꿈꾸는 사람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현재의 제도와 문법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로 나가는 사람이다. 현재의 문법을 배워서 익히는데 만족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문법을 만드는 사람이다. 다수가 생각하는 논리나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에 의해 앞으로 나아간다.
꿈은 남이 대신 꾸어줄 수 없다.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과 동력에 의해 작동된다. 제대로 꿈꾸는 사람은 ‘주인공으로 사는 삶’을 지향한다.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게 된다. 이런 사람이라야 스스로 행복할 수 있고, 또 손쉽게 성공할 수 있다.
노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자기를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한테만 천하를 맡긴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임을 깨닫고, 주인공답게 자신을 무한대로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천하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철학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신장시킨다. 러셀은 말한다. “철학적 사유는 우리의 생각을 확대하고 지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우주와 통합하게 만든다.” 그렇다.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사람은 대답보다 질문에 익숙하고 또 능하다. 불편함을 극복하고자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질문을 생산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상력과 창의력이 생겨난다.
철학적 사색은 우리를 지혜로운 삶으로 이끈다. 철학의 영어 표현 ‘Philosophy’는 ‘지혜를 사랑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삶의 지혜를 찾는 학문, 현명해지는 방법을 찾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지름길은 철학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철학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무기로 그동안 쌓은 지식을 삶의 지혜로 탈바꿈시켜 준다. 누구나 인정하듯 지혜는 지식보다 한 차원 높은 정신 자산이다. 지혜는 지식에다 판단력과 예측력을 추가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지혜를 구하는데 ‘깊은 생각’은 거의 필수다. 일찍이 공자는 지혜를 얻는 방법으로 사색, 모방, 경험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심리학자 레베카 뉴턴은 생각을 확장하기 위한 행동, 지적으로 겸손한 선택, 현명한 습관 함양 등 세 가지를 제안했다.
러셀에 따르면, 사색하는 습관은 각종 도그마를 피하고, 여러 다양한 관점을 객관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모든 의문을 공평하게 고려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색을 생활화해서 살면 자신의 관점이 다른 사람의 관점과 충돌할 때조차도 어렵지 않게 지적 화해를 도모할 수 있다. 사색하는 습관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식도 유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러셀의 생각이다.
또 철학적 사색은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사람은 신체의 건강을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마음에도 양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러셀은 말한다. “현실 생활에서 마음의 재화는 육체의 재화와 비교해 적어도 같은 수준으로 중요하다.” 철학의 가치는 한결같이 마음의 재화에서 발견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철학적 생활은 일상적인 생활에 비해 더 고요하고 자유롭다. 러셀은 우리의 삶이 위대하고, 풍성하고, 자유로워지려면 서둘러 철학적 사색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철학적 사색은 순수하다고 했다. 친구와 적, 도움이 되는 자와 적대적인 자,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공평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란다.
러셀은 철학자 가운데 철학적 사색을 통해 지혜를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솔선수범한 사람으로 특별히 바뤼흐 스피노자를 꼽았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기 때문일까?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러셀은 저서 ‘서양 철학사’에서 스피노자의 경우 이런 지침을 몸소 실천했다고 평한다. “스피노자는 죽음을 맞으면서도 끝까지 마음의 평정을 유지헸다.” ‘파이돈’의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앞두고도 전혀 흥분하지 않았으며, 보통 때와 똑같이 흥미로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단다.
스피노자가 언급한 것처럼, 삶에 대한 명상을 통해 지혜를 얻는 정신 활동이야말로 대표적인 철학적 사색이다. 동서고금의 수도자들이 명상을 중시하고 몸소 실천에 옮긴 이유라고 해야겠다. 러셀은 현대 사회의 바쁜 일상과 여가 실종으로 명상이 쇠퇴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 때문에 지식이나 영리함은 증가했지만 지혜는 오히려 감소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지혜란 천천히 생각하는 가운데 한 방울씩 농축되는 것인데 그 누구도 이처럼 천천히 생각할 여유가 없다.”
원래 명상은 철학과 무관한 영역이다. 하지만 생각을 깊이 한다는 점에선 철학적 사색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명상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신 훈련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자기 나름의 확신을 갖고 마음을 정리하는 수양 방식이다.
누구나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철학적 사색으로 삶의 지혜를 구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두 영역은 굳이 구별할 필요도 없고, 우선순위를 따질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