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일본의 소설가)의 인생 좌우명
마크 트웨인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면 사랑과 양심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 허클베리는 도망쳐 나온 노예 짐을 신고할지 말지를 두고 실존적 고민을 한다. 양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울 때, 도망 노예를 신고하지 않으면 누구나 지옥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갖가지 모험을 함께 하며 어느덧 정다운 친구가 된 짐을 배신하고 싶진 않았다.
허클베리는 고민 끝에 결국 신고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이런 결심을 했다. “좋아, 그렇다면, 난 지옥에 가겠어(All right, then, I will go to hell)” 일자무식 가출 소년이 불의가 아니라 정의, 배신이 아니라 사랑, 거짓이 아니라 양심을 택한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는 어릴 적 이 소설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으며, 허클베리의 결심 문구를 인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일찍이 일본 문단을 평정하고 노벨상 수상이라는 큰 영예를 얻게 된 오에. 언행을 신중히 하면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음에도 온갖 욕을 먹으면서까지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다 간 데는 이런 좌우명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오에는 양심적,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천황제도와 원전 반대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하는가 하면 평화헌법 개정 시도와 자위대 이라크 파병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자신이 비판해 온 일본 정부의 문화훈장 수여를 거부할 정도로 완고한 신념의 소유자였다.
그는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동북아 역사 인식에도 진보적 성향을 보여 우익세력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일본 내에서 ‘전후 민주주의의 기수’라고 불린 것은 당연하다. 사랑과 정의, 양심의 가치를 중시하며 타자와의 공존을 끊임없이 시도했던 참 지식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에의 이런 삶은 노벨상 위원회가 서구 문인들을 편파적으로 우대한다는 이유로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장 폴 샤르트르, 전 세계에 반전 및 평화 메시지를 전하고자 대영제국훈장 수상을 거부한 비틀스의 존 레논을 떠올리게 한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의 영광이나 명예에 매달리기보다 세상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앞장서 실천한 사람들이다.
그렇다. 죽어서 훌륭한 이름을 남긴 사람은 하나같이 나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에 평화를 깃들게 하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자기 것 챙기는데 급급하고 세상의 불의에 귀 닫고 살다 간 사람의 이름을 누가 기억해 주겠는가? 반대로 정의를 위해서라면 몸소 지옥에라도 갈 수 있다는 각오로 사는 사람은 대대손손 이름을 떨칠 것이다.
거창한 인생을 장식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네 소시민들도 이런 자세로 살면 얼마든지 선한 이름을 남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삶이다. 세상에는 자기 양심에 귀 막고 거짓을 일삼는 사람이 너무 많다.
친구 간, 직장동료 간 이웃 간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간에도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선악의 심판자가 되어보라. 작더라도 더불어 행복하게 지내는 사랑의 삶을 실천해 보라. 많은 사람이 당신의 착한 이름을 기억해 줄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남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