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브람스(독일의 작곡가)의 인생 좌우명
그는 영혼이 자유로운 남자였다. 여행을 무척 좋아했다. 여러 여성을 사랑했지만 결혼은 끝내 하지 않았다. 약혼까지 했으나 파혼하고 만다. 대신 스승의 아내를 사모했다. 그 스승의 딸을 잠시 짝사랑하기도 했다.
독일 음악을 대표하는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는 20세 때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소개로 로베르트 슈만 부부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브람스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슈만은 그를 옆에 두고 불타는 음악 인생을 이어간다. 하지만 슈만은 자살 유혹에 빠지는 등 정신 질환을 겪다가 46세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이후 브람스는 스승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과 자녀들을 정성껏 돌봐주었다. 그러면서 클라라를 점차 사모하게 된다. 14세 연상이었다. 여러 차례 사랑을 고백했지만 클라라는 음악 동료 이상의 마음을 주지 않았다. 슈만 가족의 주변을 맴돌던 브람스는 그녀의 딸인 12세 연하 율리에게 연정을 품는다. 하지만 딸마저 젊은 백작을 만나 결혼해 버린다.
브람스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면 ‘자유 가운데 고독’을 즐기고 간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는 그에게 슈만을 소개해 준 요아힘의 인생 좌우명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좌우명처럼 살다 간 사람은 요아힘이 아니라 브람스라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좌우명을 브람스의 것으로 여긴다.
브람스의 인생관은 ‘F-A-E 소나타’라고도 불리는 바이올린 소나타 3악장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자유와 고독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는 슈만과 브람스, 디트리히 세 사람이 악장을 나눠 공동으로 만들어 요아힘에게 헌정한 곡이다. F-A-E란 요아힘의 좌우명 ‘Frei aber einsam(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의 머리글자다.
브람스는 음악 여행을 즐겼다. 이탈리아에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오래 머물며 작곡과 연주에 몰두하기도 했다. 마음속 자유를 찾기 위함이었을까? 자기만의 고독을 붙잡기 위함이었을까? 그는 평생 자유와 고독 둘 다 거머쥐고 살았을 것 같다. 작곡과 연주를 함께 한 것처럼.
일상에서 자유는 행복의 필수 요건이다. 누군가에게 구속받는 사람이 행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자유롭다고 해서 고독하지 말란 법은 없다. 자유와 고독이 얼핏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공존하고 있음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단 고독이 곧 외로움이 아닐 때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 태어날 때나 죽을 때나 예외 없이 혼자다. 금슬 좋은 배우자가 옆에 있어도, 살뜰하게 챙겨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어도 고독감을 느낄 수 있다. 함께 어울리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고독할 수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생겨난 이유다.
그런데 고독은 분명히 외로움과 다르다. 외로운 사람은 홀로 있을 때 추위를 느끼지만 고독한 사람은 마음이 편안하다. 고독한 사람은 외로운 사람과 달리 정신활동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예술을 즐겨 감상하는 사람,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
브람스는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냈지만 고귀한 예술활동 덕분에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고독을 즐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