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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pr 07. 2024

<99> 처음처럼

신상훈(전 신한은행장)의 인생 좌우명

입지전적 금융인이 스승으로 삼았다는 삶의 철학 



2006년, 소주 ‘처음처럼’이 출시되었을 때 신한은행 본점에서 난데없이 소주 시음 행사가 열렸다. 신상훈(1948~ ) 행장의 인생 좌우명이 ‘처음처럼’이란 사실을 알게 된 소주 회사가 제품 홍보 차원에서 1500명 전 직원들에게 120ml 미니어처를 2병씩 제공한 것이다. 사무실 곳곳에서 ‘처음처럼’이란 건배 구호가 울려 퍼졌다.


당시 신한은행장의 집무실에는 ‘처음처럼’이란 휘호가 걸려있었다. 이는 고졸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로 ‘은행원들의 우상’이라 불리던 신상훈이 지점장 시절부터 특별히 가슴에 새겼던 삶의 모토이자 철학이었다. 어떤 인터뷰에서 그는 자기 좌우명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말 한마디가 내게 주는 의미는 그 어떤 교훈이나 법전보다도 큰 효력을 발휘한다. 경영자로서 어떤 결정을 할 때 말없이 나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이 글귀를 내 삶과 생활을 채근하는 시금석이요 인생의 스승으로 삼고 있다.”


그는 지위가 높아지고 권한과 책임이 많아질수록 행원 시절 지녔던 ‘겸손의 미덕’을 지키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견지하자는 의미라고 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해야겠다. 군산상고를 졸업하자마자 산업은행에 입사했다가 신한은행 창립 멤버로 이적해 은행장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마음가짐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여겨진다.


사실 ‘처음처럼’은 진보 지식인 신영복(1941~2016) 전 성공회대 교수가 서화 에세이집의 제목으로 사용했던 표현이다. 서예가이기도 한 신영복은 평소 서민적 체취의 글씨를 좋아했는데, 소주 회사가 제품에 사용한 ‘처음처럼’도 그가 쓴 글씨다. 


‘처음처럼.’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나는 음식점에서 소주 마실 일이 있을 때 거의 예외 없이 ‘처음처럼’을 주문한다. 맛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브랜드의 뜻이 너무 좋아서다. 초심을 지키는 것이며, 초지일관이며, 시종여일(始終如一) 아닌가. 


가끔씩 마주 앉은 사람 처음 만났을 때의 나를 상상해 본다. 뭔가를 기대하며 설레었을 것이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을 것이다. 또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 주려고 조신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지금 아는 사람은 모두 언젠가 처음 만났던 소중한 인연을 갖고 있다. 자녀, 남편. 아내, 친구, 학교 선후배, 직장 동료, 이웃 사람 누구 하나 예외가 없다.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해 보면 모두가 설렘이고 조심스러움이다. 지금은 어떤가?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는 않는가? 


누군가에게 품격이 느껴진다면 십중팔구 처음 만났을 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애써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매사 조심스럽게, 그리고 예의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겐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품격이 스며있으니 그런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게 되어있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도 ‘처음처럼’은 더없이 중요하다. 젊은 날 새긴 뜻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끝은 확연히 다르다. 성공가도에선 처음 낮은 자리에서 익혔던 겸손의 미덕도 애써 유지해야 한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면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


“겸손은 윗사람에게는 의무, 동등한 사람에게는 예의, 아랫사람에게는 기품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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