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현명한 사람은 고민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때만 고민을 하고, 고민해도 효과가 없을 때에는 다른 생각을 하며, 밤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인간은 미래를 생각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은 오직 현재만 생각하지만 인간은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내다본다. 인간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능력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온갖 위험을 미리 차단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에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미래를 생각할 수 있기에 ‘꿈’ ‘희망’ 같은 행복 요건을 지니고 산다. 그 대신 ‘걱정’ ‘불안’이라는 불행 요소를 안고 살아야 한다. 러셀은 걱정이 질투 못지않게 나쁜 행복 파괴범이라고 규정했다. 정신적 피로의 대부분이 걱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란다. 그는 저서 ‘행복의 정복’에서 걱정을 없애거나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한 시각에서 제시했다.
걱정은 몸을 상하게 한다. 육체적으로 건강하더라도 걱정이 많은 사람은 피로를 느낀다. 러셀은 말한다. “걱정은 두려움의 한 형태이며 모든 두려움은 피로를 만들어낸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운 사람은 일상생활의 피로가 엄청나게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걱정거리를 제때 해소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엄습한다. 몸이 상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사람에게 행복은 기대난망이다.
일상생활에서 걱정은 누구나 조금씩 하지만 정도가 심한 사람이 문제다.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 걱정도 팔자란 소릴 듣는 사람을 가리킨다. 대부분 정신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다. 심한 걱정은 스트레스의 주범이자 불안증, 공황장애의 원인이다. 걱정의 영어표현 ‘Worry’는 독일어 ‘Wurgen’이 어원이다. ‘목 조르다’ ‘질식시키다’라는 뜻을 지닌 것을 보면 정신건강에 매우 해로운 심리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염려하고 불안해한다. 날씨, 체중 증감, 출근 지각, 자동차 사고, 자신과 가족의 질병, 자녀의 장래, 직장의 미래, 노후 대책, 죽음 등 세상사 모든 일이 걱정거리다. 중국 기(杞) 나라의 어떤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하는 게 좋을지 걱정이 돼 침식을 마다했다는 고사도 있지 않은가? 그 사람, 필시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걱정은 시간의 빈틈, 생각의 빈틈을 비집고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어떠한 걱정도 내일의 불행이나 슬픔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런 말 들으면 걱정은 괜히 하는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티베트 속담) “걱정은 빚지지 않은 빚을 갚는 것과 같다.”(마크 트웨인) “걱정은 내일의 슬픔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힘을 앗아갈 뿐이다.”(코리 덴 붐)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사람들이 낙관적인 인생관을 갖고 정신 훈련을 조금씩 하면 지나친 걱정을 얼마든지 예방하거나 물리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통제하는데 몹시 서투르다.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걱정거리에 매달려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의 걱정 탈출법은 이런 진단에서 출발한다.
러셀은 걱정을 퇴치하는데 정신 훈련이 더없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날의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점, 불면증을 고칠 수 있다는 점, 효율성과 분별력을 키워준다는 점이 그것이다.
러셀이 제안하는 걱정 대처법은 크게 두 가지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어떤 불행이 닥쳐오면 진지한 태도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되, 그 불행이 그렇게까지 끔찍하지 않을 가능성과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말해 보라고 했다. 그럴 만한 이유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란다. 얼마 동안 최악의 경우를 직시하되 확신을 갖고 “좋아, 아마 별 문제 아닐 거야”라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거치고 나면 걱정이 크게 줄어든다고 러셀은 말한다.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웨인 다이어도 러셀과 같은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저서 ‘행복한 이기주의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에게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무엇이고,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라고 질문해 보라. 그렇게 하면 걱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알게 될 것이며, 그 걱정을 쉽게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대부분의 걱정은 과장된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좀체 발생하지 않는다. 대다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 경험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믿을만한 과학적 데이터가 있다.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직면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고, 22%는 아주 사소한 일이며, 4%는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이고, 나머지 4%만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진짜 걱정거리이다. 결국 걱정거리의 96%는 소용없는 것, 쓸데없는 것이란 뜻이다.
물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경우 달리 대처해야 한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침착하게 최악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이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겠다.
러셀이 제안하는 또 하나의 걱정 대처법은 꼭 필요한 때를 정해 집중적으로 고민하는 것이다. 걱정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것은 정신 건강을 갉아먹는 일이다. 서두에 소개한 문장처럼 고민과 걱정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때만 하고 평소에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수면과 휴식이 필요한 밤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걱정을 잠자리로 가지고 가는 것은 등에 짐을 지고 자는 것이다.” 작가 토마스 하리발톤의 말이다.
러셀은 걱정거리에 대해 제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모든 자료를 내놓고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있는 힘을 다해 최대한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한 후 시간이 흐르면 보이지 않게 일이 진행되면서 생각이 정돈된다. “ 그 결과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그 결정을 번복하지 말라고 했다. 좌고우면 하는 망설임이야말로 심신을 지치게 하는 쓸데없는 일이란다.
걱정을 예방하고 퇴치하는데 러셀의 대처법이 유용하겠지만 미래를 잠시 잊고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은 걱정을 유보한다는 뜻이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때에만 고민하고 걱정하라는 러셀의 조언도 이를 염두에 둔 말이라고 본다.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뜻을 지닌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정신건강을 위한 최고의 금언이다.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반대로, 주어진 현재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오늘 하루 충만하게 사는 사람은 마음이 평온하기에 무조건 행복하다.
몸에 이상이 생겨 건강 검진을 받고 일주일 동안 결과를 기다린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험 더러 해보았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줄곧 걱정에 휩싸여 시간을 보낸다. 중병으로 확인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술을 받을까 말까? 수술을 받는다면 어느 병원에서 받을까? 여러 날 밤잠을 설칠 수도 있겠다. 걱정이 깊어지면 죽는 순간까지 상상할 수도 있다. 가족들에게 무슨 유언을 남길까? 재산은 누구한테 얼마를 줘야 하나?
러셀의 걱정 대처법에 따르면, 우선 죽음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본다. 하지만 별일 없을 것이라 기대하며 그 근거를 생각해 본다. 또 자꾸 걱정이 되면 특정 시점을 정해 집중적으로 생각을 해보고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래도 걱정을 떨칠 수 없다면 여행이나 운동을 한다. 일기 쓰기나 기도, 명상은 당연히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에 충실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걱정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으로 지금 이 순간 만족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면 그만이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이 시구를 음미해 보면 어떨까?
“행복하도다 홀로 있어도/ 오늘을 내 것이라 노래하는 이여/ 마음이 행복한 이는 외치리/ 내일이 최악의 것이 될지라도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나는 오늘을 성실하게 사노라.”
곧 닥칠지도 모르는 불행한 상황을 잊고 오늘을 담담하게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걱정을 완전히 퇴치하긴 어렵다. 끊임없이 자신을 추스르고 용기를 불어넣는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후배는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를 카톡 상태 메시지로 등재해 놓았다. 스와힐리어로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