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대충 불렀다. 몸에 안 좋을 것 같으면 다 “불량식품”이었고, 어른들은 못 먹게 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쫀드기, 아폴로, 눈깔사탕, 맥주사탕 같은 것들은 그 시절의 대표적인 금지 목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반짝였다. 꼭 대단한 맛이어서가 아니라, 친구들과 몰래 웃으며 나눠 먹던 분위기까지 함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단순한 군것질이 아니라, 작고 선명한 어린 시절의 장면이었다.
불량식품의 좋은 점은 거창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주머니 속 동전 몇 개만 있어도 살 수 있었고, 한 입씩 나눠 먹으면 그걸로도 하루가 제법 즐거워졌다. 그 시절 우리는 적은 돈으로도 쉽게 기뻐할 줄 알았다. 비싼 것이 아니라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했고, 포장지가 화려하지 않아도 손에 쥔 것만으로 신이 났다. 지금보다 가진 건 적었을지 몰라도, 기쁨을 느끼는 마음은 오히려 더 단순하고 정직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 과자를 먹어 보면 생각보다 평범할 때가 많다. “내가 이걸 그렇게 좋아했었나?” 싶을 정도로 맛이 예전 같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도 불량식품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웃음이 나는 건, 우리가 그 맛 자체보다 그걸 먹던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학교 앞 문방구, 쉬는 시간의 소란, 친구 손에서 건네받던 한 조각의 쫀드기 같은 것들. 결국 오래 남는 건 혀끝의 자극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했던 순간의 온도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여러모로 투박했다. 요즘처럼 세련되거나 꼼꼼하지 않았고, 많은 것들이 허술하고 단순했다. 하지만 꼭 그래서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 불량식품처럼 조금은 엉성하고, 그래서 더 기억나는 것들이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것, 대단하지 않은 순간도 오래 마음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때 이미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삶은 늘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이 가치 없지는 않다는 걸 말이다.
어른이 되고 나면 자꾸만 크고 확실한 행복만 찾게 된다. 좋은 성과, 큰 보상, 분명한 결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마음을 오래 버티게 하는 건 의외로 소박한 순간들이다. 어릴 적 불량식품 하나에 웃을 수 있었던 마음은, 지금도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필요하다. 잠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편의점에서 충동적으로 집어 든 간식 하나, 별일 아닌데 괜히 피식 웃게 되는 순간들. 삶은 그런 작고 가벼운 기쁨들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