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by KELLY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을 들으며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문장이 화면을 지나가고,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이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문제는 그 많은 말들 사이에서 이해보다 판단이, 대화보다 단정이 더 빨라졌다는 데 있다. 누군가를 천천히 알아보기도 전에 편을 가르고, 한 사람의 실수나 다름을 곧바로 미워할 이유로 삼는다. 혐오의 시대라는 말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모두가 더 가까워진 것 같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쉽게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는 대개 상처 입은 언어로 시작된다


겉으로 보기에 혐오는 강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많은 경우 혐오는 두려움에서 시작되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에서 자라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미워하면 잠시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단순하게 나누고 밀어내면 세상이 덜 복잡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평온은 오래가지 않는다. 혐오는 남을 향하는 것 같아도 결국 내 마음 안에 먼저 거친 자국을 남긴다. 자꾸 미워하는 사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다름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


요즘 우리는 다름을 만났을 때 질문하기보다 반응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생각이 다르면 틀렸다고 하고, 취향이 다르면 수준을 나누고, 처지가 다르면 함부로 재단한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쉽게 같아질 수 없는 존재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견뎌온 시간도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모두 다르다. 그런데도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고 여기는 순간, 사회는 점점 숨이 막히는 곳이 된다. 혐오의 시대는 단지 미움이 많은 시대가 아니라, 다름을 감당할 여유가 사라진 시대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필요한 건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이해


이럴 때일수록 세상을 바꾸는 힘은 더 독한 말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잠깐 멈춰서 듣는 태도,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마음, 한 사람을 하나의 낙인으로만 보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이해는 늘 느리고 번거롭다. 미워하는 건 빠르지만, 이해하는 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도 우리가 끝내 붙들어야 하는 건 그 느린 쪽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은 당장 세상을 뒤집진 못해도, 적어도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덜 차갑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자리가 조금씩 늘어날 때, 시대의 공기도 분명 달라진다.


다정함은 약해서 남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다정한 사람이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인다. 거친 말이 더 눈에 띄고, 냉소적인 태도가 더 똑똑해 보이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사람을 지키는 건 대개 다정함 쪽이다. 다정함은 현실을 몰라서 생기는 태도가 아니라, 현실을 알면서도 함부로 잔인해지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상처가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쪽으로 가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그래서 다정함은 약한 마음의 결과가 아니라,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의 방식에 가깝다. 혐오가 익숙한 시대일수록, 다정함은 더 희귀하고 더 단단한 힘이 된다.


혐오의 시대를 산다는 건 어쩌면 매일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는 일인지도 모른다. 쉽게 미워하라고 부추기는 말들 속에서도,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람으로 보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조용한 용기일 것이다. 세상이 당장 달라지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는 함부로 잔인해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 그 작은 태도 하나가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멀리 간다. 결국 시대를 바꾸는 것은 가장 큰 분노가 아니라, 끝내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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