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이 나라를 농담처럼 험하게 부른다. 각박하고, 치열하고, 숨 돌릴 틈 없다고 말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하루하루가 시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못한다. 욕하면서도 뉴스에 관심을 두고, 지치면서도 더 나아지길 바라고, 떠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여기 사람들과 계절을 함께 견딘다. 어쩌면 이 나라는 미워서가 아니라 기대가 남아 있어서 더 자주 아픈 이름으로 불리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살기 힘들다고 말할 때, 그건 단순한 투정이 아니다. 집 한 칸 마련하는 일도, 내 시간을 온전히 지키는 일도, 미래를 쉽게 상상하는 일도 예전보다 더 버겁게 느껴진다. 모두가 열심히 사는데도 안심이 잘 오지 않는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마음 한구석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곳을 완전히 절망으로만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늦은 밤에도 불이 켜진 편의점이 있고, 아플 때 기대볼 의료 시스템이 있고, 빠르게 연결되는 일상과 쉽게 닿을 수 있는 안전망이 있다. 불편과 편리가, 답답함과 안정감이 이상하리만큼 함께 존재하는 곳. 이 모순이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겉으로 보면 사람들은 점점 차가워진 것처럼 보인다. 각자 먹고살기 바빠서 타인의 사정을 오래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정말 힘든 순간이 오면, 이 나라는 또 이상할 만큼 빠르게 서로를 챙긴다. 재난 앞에서 모금이 모이고,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줄을 서고, 온라인의 차가운 말들 사이에서도 현실에서는 따뜻한 손이 먼저 내밀어진다. 평소엔 무심한 척 살아도,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쉽게 남을 외면하지는 못하는 사람들. 그 마음들이 아직 남아 있기에 이 사회는 완전히 메마른 곳이 되지 않는다.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해서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나라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불만이 많아도 고쳐보려는 의지가 살아 있는 곳, 문제를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곳, 더 나은 방향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곳이 결국 오래 버티는 사회에 가깝다. 우리는 자주 이곳의 단점을 먼저 본다. 경쟁은 지나치고, 비교는 숨 막히고, 기준은 너무 빡빡하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작은 취향을 지키고, 자기만의 삶을 끝내 꾸려낸다. 그러니까 좋은 나라란 애초에 흠 없는 공간이 아니라, 흠투성이 현실 속에서도 삶을 계속 세워갈 수 있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한 나라의 인상은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자리를 비켜주는 사람, 골목 식당에서 괜히 반찬을 더 얹어주는 사장님, 별말 없이 안부를 묻는 친구 같은 존재들이 이 땅의 체온을 만든다. 우리는 거대한 구조 앞에서 자주 무력해지지만, 일상을 살리는 건 대개 거창한 구호보다도 작은 친절들이다. 그래서 이곳이 버거운 나라일 수는 있어도, 완전히 살기 나쁜 나라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사람 냄새가 아직 남아 있고, 그 덕분에 많은 이들이 오늘도 다시 살아볼 마음을 낸다.
이 나라는 분명 쉽지 않은 곳이다. 지치게 하는 순간도 많고, 마음이 헛헛해지는 날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완전히 미워할 수는 없다. 불편한 점이 많아도, 여전히 서로를 붙들어주는 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사는 곳을 살 만한 나라로 만드는 건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여기서도 끝내 삶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곳은, 버겁지만 충분히 살아낼 만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