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게 살기보다 우직하게 헤매고 싶다: 비효율의 미학

by KELLY

바야흐로 효율의 시대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미리 골라주고, 내비게이션은 단 1분이라도 빠른 길을 찾아내며, AI는 단 몇 초 만에 수천 자의 글을 요약해 준다. 우리는 '최적화'와 '가성비'라는 이름 아래 인생의 모든 지름길을 섭렵하며 산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든다. 지름길로만 달려온 내 삶에, 과연 나만의 풍경이 남아있기는 한 걸까?


알고리즘이 훔쳐간 우연이라는 선물


예전에는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기도 했고,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간 골목 끝에서 인생 맛집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런 '우연'이 끼어들 틈이 없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리뷰를 샅샅이 뒤지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 데이터를 맹신한다.


실패 없는 선택은 편안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를 뻔한 사람으로 만든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취향 안에 갇혀, 우리는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검증한 행복만을 수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가끔은 알고리즘의 멱살을 잡고, 그가 싫어할 법한 길로 나를 끌고 가고 싶다.


사랑과 우정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들은 하나같이 비효율적이다. 효율 따지자면 연애는 감정 소모가 너무 크고, 아이를 키우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다. 친구와 밤새도록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것보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게 훨씬 생산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비효율적인 대화 속에서 위로를 얻고, 아이의 서툰 웃음 하나에 무너졌던 하루가 복구된다는 것을.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난도질당한 관계에는 온기가 남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건, 기꺼이 내 소중한 시간을 상대방을 위해 '낭비'하겠다는 가장 숭고한 비효율의 선언이다.


헤매는 시간만이 내 것이 된다


나는 이제 손으로 글을 쓰는 불편함을 즐기고, 빠른 지하철 대신 느린 버스를 타고 창밖을 구경하는 법을 배운다. 단 몇 초면 끝날 검색 대신 두툼한 책장을 넘기며 정답 주변을 배회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예기치 못한 문장들, 창문에 비친 노을, 그리고 정답보다 귀한 오답들이 비로소 '진짜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똑똑하게 살라는 세상의 압박에 맞서, 나는 조금 우직하고 미련하게 살고 싶다. 빨리 가느라 놓쳐버린 수많은 꽃들, 그리고 목적지 그 자체보다 중요했던 '과정의 땀방울'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고 싶다.


비효율의 숲에서 숨을 고르다


생산성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해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일에 나를 던져보자. 그림을 못 그려도 붓을 들고, 돈이 안 되어도 흙을 만지며, 목적지 없이 걷는 그 시간. 그 비효율적인 시간들이야말로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다.


인생은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는 수학 문제가 아니라,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모험이다. 오늘도 나는 기꺼이 길을 잃기로 한다. 헤매는 그 모든 순간이, 결국 나를 가장 나다운 곳으로 안내할 것임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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