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생, 먼저 떠나는 친구들

by KELLY

주말 아침, 휴대폰 진동 소리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분홍빛 배너가 나를 반긴다. "우리 결혼합니다." 벌써 이번 달만 세 번째 청첩장이다. 94년생, 서른둘. 이제 우리 사이에서 결혼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단톡방의 주제는 주말 맛집과 연애 상담에서 어느덧 대출 금리와 가전제품, 그리고 임신과 육아로 넘어갔다. 친구들이 하나둘 '어른의 세계'로 국경을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여전히 텅 빈 놀이터에 홀로 앉아 모래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정답지가 바뀐 단톡방의 풍경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미래를 걱정했고, 누가 더 자유로운 영혼인지 겨루곤 했다. 하지만 지금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은 웨딩 화보나 갓 태어난 아이의 발가락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인생의 가장 정석적인 코스를 훌륭하게 완주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그들과 대화할 때 느껴지는 묘한 거리감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너도 빨리 가야지", "애는 언제 낳으려고 그래"라는 다정한 참견들. 그들에게 결혼은 '완성'이겠지만, 아직 나에게 결혼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인데. 친구들이 정착이라는 항구에 닻을 내릴 때, 나는 여전히 망망대해에서 돛을 만지고 있다.


사회적 시간표와 나의 시계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표준 시간표'가 존재한다. 94년생이라면 이쯤엔 자리를 잡아야 하고, 이쯤엔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그 시간표에 맞추지 못하면 마치 낙오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왜 우리는 모두 같은 속도로 살아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봄에 꽃을 피우지만, 누군가는 시린 겨울에야 비로소 향기를 내뿜는다. 친구들의 결혼 소식은 그들의 계절이 찾아온 것일 뿐, 내 시계가 멈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계절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남들의 마침표에 내 쉼표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기엔, 내 인생은 여전히 써 내려갈 문장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축하의 마음과 소외감 사이의 균형


친구의 결혼식장, 하얀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는 친구를 보며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 눈부신 행복이 가짜가 아님을 알기에, 나는 기꺼이 그날의 조연이 된다. 하지만 뷔페 접시를 들고 혼자 자리를 찾을 때 스미는 고독까지는 어쩌지 못한다.


이 소외감은 질투가 아니라, 함께 자라온 동료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에 가깝다. 이제 더 이상 갑자기 불러내 술 한잔할 수 없고, 긴 여행을 함께 떠날 수도 없다는 사실. 우리가 공유했던 그 찬란했던 '무책임의 시간'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의식 같아서, 나는 신부보다 더 코끝이 찡해지곤 한다.


텅 빈 놀이터에서 발견한 자유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간 텅 빈 놀이터는 외롭지만, 동시에 광활하다.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놀이를 마음껏 할 수 있다. 결혼이라는 거대한 숙제를 잠시 미뤄둔 덕분에, 나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벌었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할 수 있는 여유. 이 고독의 시간은 나를 더 단단하고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나중에 내 계절이 와서 나도 누군가와 함께 걷게 될 때, 그때의 나는 지금의 이 방황 덕분에 훨씬 더 성숙한 파트너가 되어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친구들아, 먼저 가서 행복해라. 나는 여기서 조금만 더 놀다가,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뒤따라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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