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지 않고 머무는 기술

by KELLY

젊은 날의 주량은 일종의 전투력이었다. 몇 병을 마셨는지가 곧 그날의 승전보였고, 다음 날의 숙취는 훈장처럼 여겨졌다. "나는 소주 세 병까진 끄떡없어"라는 말 뒤에는 어떤 술자리에서도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비장한 객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술잔의 무게가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깨닫는다. 진짜 주량이란 단순히 알코올을 해독하는 간의 능력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잃지 않고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감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숫자가 삼켜버린 대화의 밀도


우리는 흔히 주량을 '병'이나 '잔'이라는 숫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 숫자에 집착할수록 술자리의 본질은 흐려진다. 술은 대화의 문을 여는 열쇠여야 하는데, 어느덧 열쇠의 크기만을 자랑하다가 정작 그 문 뒤에 있는 사람의 진심은 놓치고 마는 것이다.


내가 견딜 수 있는 양을 초과하는 순간, 대화의 밀도는 급격히 낮아지고 관계의 온도는 비정상적으로 과열된다. 진짜 주량이 센 사람은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술기운을 빌려 평소보다 조금 더 솔직해지되 결코 무례해지지 않는 선을 아는 사람이다. 숫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술이 주는 적당한 해이함과 따뜻한 유대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노화가 가르쳐준 '적당함'의 미학


나이가 들면서 주량이 줄어드는 것을 서글퍼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몸이 보내는 가장 다정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독한 액체로 몸을 채우기보다,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을 더 깊게 음미하라"는 조언 말이다.


주량이 줄어든 자리에 채워지는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아무 술이나 마시지 않고, 아무하고나 마시지 않으며, 취기가 오르기 전의 그 기분 좋은 황홀경에서 멈출 줄 아는 지혜. 이제 나에게 주량은 '얼마나 마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기분 좋게 멈출 수 있는가'로 재정의되었다. 멈출 줄 아는 용기가 있을 때, 술자리는 비극적인 숙취가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완성된다.


술잔 뒤에 숨은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


가끔은 주량을 시험하듯 혼자 술잔을 기울일 때가 있다. 이때의 주량은 오롯이 '나 자신과의 대화 시간'을 의미한다. 한 잔에 오늘의 피로를 녹이고, 두 잔에 내일의 걱정을 잠재우는 시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취기는 경직되었던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고, 닫혀있던 감정의 문을 살며시 열어준다. 이 고독한 음주 끝에 만나는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너그럽고 조금 더 용감하다. 주량의 한계 안에서 즐기는 이 안전한 일탈은, 다시 삭막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작은 쉼표가 되어준다.


당신의 주량은 오늘도 안녕한가요?


당신의 주량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술잔이 당신을 해치지 않고, 당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며, 내일의 당신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밤, 당신의 주량이라는 그 섬세한 저울 위에서 가장 평화롭고 따뜻한 온도를 찾길 바란다. 취기에 휘청거리는 삶이 아니라, 적당한 온기로 세상을 껴안을 수 있는 넉넉한 주량을 가진 당신이기를. 술잔 속에 비친 당신의 미소가 내일 아침에도 선명하게 기억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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