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동안 “잘 사는 법”을 더하는 방향으로만 배웠다. 더 부지런해지고, 더 성실해지고, 더 친절해지고, 더 유능해지는 쪽으로. 그렇게 하루를 촘촘히 채우면 언젠가는 마음도 덩달아 단단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정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얇아졌다. 아무 일도 없는 날보다, 많은 일을 해낸 날에 더 쉽게 무너졌다.
메모장에는 늘 체크할 항목이 있었다. 전화를 해야 하고, 답장을 해야 하고, 밀린 일을 처리해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했다. 하나씩 지워질 때마다 성취감이 드는 대신, 이상한 공허가 남았다. 오늘을 살아낸 느낌이 아니라 오늘을 소비한 느낌. 내가 시간을 쓰고 있는 건지, 시간이 나를 쓰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해야 할 것’을 늘리는 방식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괜찮은 사람은 늘 뭔가를 하고 있으니까. 쉬지 않으니까. 빈틈이 없으니까.
변화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됐다. 모임 하나를 정중하게 미뤘고, 불필요한 알림을 껐다. “지금은 좀 어렵다”라는 말을 연습했다. 처음엔 죄책감이 먼저 왔다.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나만 예민한 것 같아서.
그런데 재미있게도, 내가 안 한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다. 내가 답장을 조금 늦게 한다고 관계가 다 끝나진 않았고,
내가 참석하지 않는다고 모임이 정지되진 않았다. 내가 믿었던 것보다 세상은 더 굴러갔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덜 중요했다.그 사실이 서운하기보다 이상하게 편했다. 그때부터 나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람’ 대신 ‘내가 감당 가능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덜어내는 과정은 의외로 단순하지 않았다. 무엇을 빼야 하는지보다, 왜 그걸 붙잡고 있었는지를 보는 일이 더 어려웠다. 나를 증명하고 싶어서, 불안해서, 외로워서, 혹은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기준에 쫓겨서.그래서 나는 가끔 나에게 물었다.
이건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기대를 잘 수행하고 싶은 걸까. 이건 나를 살리는 일일까, 아니면 나를 갉아먹는 일일까.질문이 쌓이면 답은 생각보다 금방 나온다. 내 마음은 늘 알고 있었는데, 내가 못 들은 척을 했을 뿐이었다.
요즘 내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어떤 날은 일을 덜 하고도 괜찮고, 어떤 날은 사람을 덜 만나도 괜찮고, 어떤 날은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 하루가 끝났을 때 “오늘 충분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
덜어내는 건 포기가 아니라 정렬이다. 우선순위를 새로 세우는 일이다. 무엇을 더 넣을지 고민하기 전에, 무엇이 이미 넘치고 있는지 먼저 보는 일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바쁨을 사랑한다. 바쁘면 불안을 잠시 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불안을 잊는 방식으로 사는 건, 결국 나를 놓치는 방식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주 작은 덜어냄을 한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지 않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설명을 줄이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만 남긴다. 그렇게 남은 시간에 내가 나로 돌아오는 일을 한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내겐 그게 요즘 가장 큰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