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였다

완벽하지 않은 1년을 보내는 법

by KELLY

12월의 끝자락은 늘 심문관 같다. 연초에 세웠던 원대한 계획표를 들이밀며 "그래서 얼마나 지켰니?"라고 묻는 것만 같다. 빼곡했던 버킷리스트 중 줄이 그어진 것은 절반도 되지 않고, 저축 목표는 일찌감치 포기했으며, 외국어 공부는 첫 장만 까맣게 손때가 묻어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미완성된 목록들을 보며 자책 대신 기특함을 느끼기로 했다.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100점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이뤄야만 의미 있는 1년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깨달았다. 폭풍 같은 업무를 견뎌내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수습하고, 때때로 찾아오는 무기력의 늪을 건너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대한 성취인지를.


특별한 훈장은 없어도, 올 한 해 나는 내 몫의 무게를 기어이 짊어지고 왔다. 거울 속의 내가 조금 피곤해 보일지언정, 그 눈빛은 작년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것만으로도 2025년은 충분히 값진 해였다.


관계의 대청소, 미련이라는 쓰레기 버리기


연말은 방 청소만 하는 시간이 아니다. 마음의 서랍 속에 쟁여두었던 '혹시나' 하는 미련들을 버리는 시간이다. 나를 존중하지 않았던 인연들, 내 에너지를 갉아먹기만 했던 의무적인 관계들, 그리고 "그때 그랬더라면" 하고 반복되는 후회들.


나는 이제 이 낡은 감정들을 2026년으로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내 마음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고, 내년에는 더 빛나는 것들을 채워 넣어야 하니까. "미안하지만 여기까지"라고 말하며 닫아버린 문 너머로, 시원한 겨울바람이 들어온다.


내일의 나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지 않기


해마다 '새해부턴 사람이 바뀌어야지'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1월 1일이 된다고 마법처럼 내가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아침잠이 많을 것이고, 가끔은 감정적일 것이며, 사소한 것에 흔들릴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거창한 계획 대신 '나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는 약속'을 적어본다. 더 많이 웃기보다 더 적게 참기, 완벽하기보다 솔직하기, 남의 속도가 아닌 나의 보폭으로 걷기. 2026년의 나에게 "반드시 성공해라"라는 채찍질 대신 "그저 너답게 건강해라"라는 다정한 당부를 건넨다.


안녕, 나의 2025년


창밖으로 2025년의 마지막 며칠이 저물어간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생각한다. 참 고생 많았다고. 때로는 울었고, 가끔은 소리 내어 웃었으며,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결국 오늘을 맞이한 나에게 건배를 보낸다.


남은 이틀, 나는 대단한 마무리를 하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충분히 잠을 자며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이다. 12월 31일의 자정, 종소리가 울리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속삭일 것이다.


"고마웠어, 2025년. 너 덕분에 나는 조금 더 깊어졌어."

작가의 이전글산타는 없어도, 나를 위한 선물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