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실망시키고 나를 구원하기로 했다

by KELLY

연말의 도시는 다정한 척하지만 무례하다. "새해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덕담은 사실 "지금의 너로는 부족하다"는 가스라이팅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그 우아한 강요를 거절하기로 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보다, 더 나다운 '불편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친절이라는 이름의 부채


그동안 나의 친절은 일종의 부채였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쓴 웃음은 나중에 내 마음의 통장에서 고스란히 이자로 빠져나갔다. 남들이 원하는 '좋은 사람'의 외피를 두르기 위해 나는 매일 조금씩 나의 영혼을 헐값에 팔아넘겼다.


하지만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나를 깎아 그들의 입맛에 맞는 조각상을 만든들, 그들은 결국 또 다른 각도를 요구할 것이라는 사실을. 타인의 만족은 밑 빠진 독이었고, 내 에너지는 한 방울씩 말라가는 오아시스였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기꺼이 악역이 되는 법


모두에게 주인공일 수는 없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나를 멋대로 정의하고 소모하려는 이들의 시나리오에서 나는 기꺼이 '차가운 악역'이나 '예의 없는 단역'이 되기로 했다. 그들이 나를 향해 던지는 "너 좀 변했다"는 비난은, 역설적으로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세운 방벽이 견고하다는 증명서와 같다.


세상을 실망시키는 것은 의외로 짜릿한 해방감을 준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족쇄를 풀고 나면, 비로소 내가 걷고 싶은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의 비위를 맞추느라 구부정했던 허리를 펴니,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자존감'은 타인의 박수가 아니라 나의 '단호한 거절'에서 싹트고 있었다.


"나를 잃어가며 지킨 관계는 결국 흉터가 되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버린 관계는 훈장이 된다."


고독은 고립이 아니라 고결한 선택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과 섞이지 못해 생기는 여백은 외로움이 아니라, 온전히 나로 숨 쉴 수 있는 '성소(Sanctuary)'다. 북적이는 파티의 중심에서 텅 빈 미소를 짓는 것보다, 조용한 방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음악과 불완전한 나를 마주하는 것이 훨씬 더 밀도 있는 삶이다.


세상의 기준이라는 잣대를 꺾어버리자 비로소 나만의 박동이 들린다. "이래야 한다"는 당위의 파도 아래 잠겨 있던 "이게 좋다"는 취향의 목소리. 나는 이제 유행하는 삶을 살기보다, 유일한 삶을 살기로 했다.


나의 2026년은 무례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다가올 새해, 나는 더 많이 거절하고 더 자주 침묵할 것이다. 나를 함부로 다루는 이들에게는 서늘한 표정을 짓고,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에게는 더 깊은 온기를 건넬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나를 잃어버리는 비극은 이제 끝났다. 나는 오늘 밤, 나를 향한 세상의 기대를 기분 좋게 배신한다. 세상을 실망시킨 자리에서 비로소 피어날 진짜 나의 계절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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