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열고 조심스레

천리향의 향기가 준 행복을 기억하고자

by 구자훈


창문 열고 조심스레 들어 올려 방 안으로 들였다. 숨을 고르고 가슴을 진정하도록 가만히 두었다. 오감을 자극하는 향기가 점점 번진다.

불을 꺼야 할 시간. 그래야 뭔가 이루어질 기회가 있을 듯하다. 숨소리가 침묵을 덮는다. 째깍대는 벽시계의 소리는 점점 커져 내 벌렁대는 가슴의 떨림을 가려준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향기가 무사할까?


불을 끌 수가 없다. 어둠 속에서는 향기가 질식할 듯하여, 나는 뭔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창문으로 내보내기로 한다. 서로 짐짓 모르는 척하는데, 따스한 감정이 올라와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에 감싸인다.



가지 끝마다 맺힌 꽃송이 25개

꽃송이마다 매달린 별빛 꽃 십여 개

꽃송이 8개까지 꽃의 수 세다 그만두었다


빠졌다고 섭섭한 꽃 있을까

하나씩 소심하게 세는데

향기가 내 손을 만져

더는 셀 수 없었다.


숨을 줄이며 향을 더듬는데

이러는 모습을 안도현이 보고 있다

“삶이란 기꺼이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꽃 하나 필 때마다 사진 찍어 마음 전하기로 한 이가 있다. 꽃 두 개가 피었을 때였다. 한 송이에 꽃이 10여 개이고 25송이가 있으니, 앞으로 적어도 248장의 사진을 보내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어느새 여럿의 꽃이 피어 있었다. 앞에 있는 양지쪽 가지만 바라보았던 탓이다.

잎 아래, 뒤쪽 그늘진 곳에 저 혼자 핀 꽃이 있었다.

작은 화분을 사방에서 살펴보니 여기저기에 핀 꽃, 피는 꽃이 보인다.

가만 생각해 보면 앞서는 게 다인 세상은 없었지.

삶이란 앞, 뒤, 위, 아래.

또 너, 나 할 거 없이 제 몸대로 피어 향기를 내는 일일테니



햇볕이 드물어 허약한 아랫가지

아직 피어나기는 이른,

분명 피어 날,


작은 화분이 향기로 잠을 깨워

세상의 구석구석

보라 한다



248장의 마음 전하기는 공염불이 되었다.

잠시 쉬기로 하자.

시원한 맥주가 냉장고에 있으려나. 취기가 오르면 불 끄고 싶은 욕망이 다시 살아오지 않겠냐며 횡설수설하는 사이에 잠기운이 취기의 손을 잡고 왔다. 버티지 못한 나는 슬그머니 침대방으로 갔다.


아침에 서재로 나오니 꽃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밤새워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에서는 새벽 공기의 서늘함이 묻어난다. 삐친 것인가 눈치를 본다. 지그시 눈 감은 침묵의 깊이를 가름할 수 없어 말을 걸지 못했다.

사소한 감정은 깊은 사색에 덮인다.


다시 창문을 열고 올 때처럼 내보내야 할 시간이다.

이미 아침이 되었으므로 불을 끌 필요도, 켤 필요도 없었다.

천리향 그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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