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밟고 7화
“어디야? 지금 어디야?”
마리아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걱정 마. 내가 갈게, 내가 갈게.”
유스호스텔.
긴 핸드폰의 신호음 사이로 덜덜 떨리는 숨소리. 갇혀 있던 치밀어 오르는 공포와 서러움이 낯선 언어를 만나 외계어처럼 터져 나왔다. 수잔은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마리아는 매니저 폴과 함께였다.
겁먹은 눈으로 마리아를 따라 나온 수잔. 문을 두드리던 남자는 복도 벽에 기대어 선 채 초점 잃은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그의 몸에 베인 알코올 냄새가 계단까지 따라붙었다. 그 공간은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냄새로 각인되었다.
폴이 수잔과 마리아를 내려준 곳은 레스토랑과 가까운 주택가였다.
마리아의 아파트는 2층. 복도 벽의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지만, 계단은 생각보다 깨끗했고, 빛바랜 카펫은 세월을 머금은 채 조명 아래 은은히 빛났다.
방하나와 거실, 화장실. 거실 한편엔 침대와 서랍장, 작은 TV가 놓여 있었고, 거실 중앙, 길게 드리운 커튼이 그곳이 하나의 방처럼 구분된 공간임을 짐작케 했다.
마리아가 그를 소개하자, 그는 수줍은 얼굴로 한국을 좋아한다며 웃었다.
그의 이름은 리아였다. 필리핀에서는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호텔 청소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남자와 같은 공간,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실을 반으로 나눠 써야 한다는 사실이 껄끄러웠다. 하지만 리아는 여자였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그를 ‘그녀’라고 불렀고, 리아 스스로도 자신을 여자라고 소개했다. 필리핀에서는 ‘다름’에 그리 예민하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마리아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본능은 달랐다. 그날 밤, 수잔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거실 한편에 커튼을 친 뒤, 이불을 가슴 끝까지 끌어올리고 그의 숨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뒤척였다.
마리아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중국인 손님에게 만다린(중국어)으로 인사하며 환하게 웃으면 제법 팁을 받았다.
홍콩에서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그녀는, 일상적인 중국어는 할 줄 알았다.
일하던 집이 캐나다로 이주할 때 그녀도 함께 들어왔지만, 그들이 금전적인 이유로 약속했던 스폰을 거절하자 마리아는 어렵게 지금의 직장으로 옮겨야 했고, 결국 이 아파트에 정착하게 되었다.
처음 몇 달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레스토랑에 이민조사관처럼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면 그녀는 얼른 화장실로 숨어 숨을 죽였다.
외줄 위를 걷는 듯 위태로운 날들의 연속. 그래도 앉아서 굶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때, 폴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마리아에게, 폴은 단순한 연인 이상의 존재였다. 정서적 지지였고, 동시에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보증’ 같은 것이었다. 혹시 영주권이 나오지 않을 경우, 캐나다인과의 동거는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했다. 이 땅은 그렇게 그녀에게 절실했다.
수잔과 리아는 마리아와 함께 살면서, 그녀가 돈에 대해 얼마나 철저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어떤 날은 고지서를 펼쳐 놓고 1센트 단위까지 나눠 계산했고, 자신이 방을 단독으로 쓰면서도 리아나 수잔보다 집세를 적게 내는 데 대해선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남은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일은 그녀에게 일상처럼 익숙했다.
리아가 어쩌다가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온 날은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고 핀잔을 줬고, 그런 날엔 리아와 ‘따갈로’(필리핀어)로 한참 동안을 다퉜다. 그들의 지친 얼굴과 상처 입은 말속에서 수잔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한국처럼 전세라는 것이 없었고, 물가는 높았다.
2주에 한 번씩 들어오는 급여는 최저시급,
월세를 내고 식재료를 사면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병원 진료는 무료였지만, 약값은 비쌌다.
대형마트에 무거운 카트를 어렵게 끌고 들어가도, 나올 때는 늘 우유와 빵,레튜스(상추사촌) 정도가 전부였다.
시선은 자연스레 타인의 수북이 쌓인 카트와 자신의 빈 카트를 오가고, 그럴 때면 괜스레 한국의 빨간 장바구니가 그리워졌다. 자연스럽게, 카트에 담은 것보다, 가격표를 확인하며 내려놓은 물건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이민자’라는 단어는 견뎌야만 하는 이유가 되어 집념으로 바뀌고 있었다.
어느새 수잔에게도, 그들과의 동거 아닌 동거는 익숙해지고 있었다. 리아는 밝았고, 마리아는 따뜻했다. 낯선 땅 캐나다에서, 수잔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마리아는 분명 따뜻했다. 언어가 서툰 수잔을 위해 은행을 따라가 주고 캐나다 생활에 대한 팁을 주며 세심하게 살폈다.하지만, 돈 앞에서 명확해진 경계는 ‘정’이란 문화에 익숙한 수잔에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차가운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은 원망과는 달랐다. 오히려, 측은함과 안타까움에 가까웠다.
-바다 건너 두 아이를 두고 온 마리아. 울음을 품은 바다는 밤마다 그녀를 고향집으로 데려가며 너울거렸다.
마리아는 종종 물었다.
“한국 돈이 캐나다 돈보다 더 비싸? 그런데 왜 캐나다에 온 거야? 영어 배우러?”
— 넌 선택해서 온 거잖아. 난 생존을 위해 왔어.
내게 선택권은 없었어. —
그 질문은 그렇게 들렸다.
말끝은 마치 비난처럼 가슴에 박혔다.
마리아에게 수잔은, 어쩌면 배부른 자였을까.
“나는 , 자유를 찾으러 왔어.”
모호한 수잔의 대답.
“너, 북한에서 온 건 아니지?”
그 말에 수잔은 늘 잠시 멈칫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 걸까.
나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자유로운가.
잠결을 뚫고 올라온 불덩이 같은 손가락의 통증.
수잔은 그 아래에서 불면으로 부서지는 신음을 느꼈다. 육신의 고통 앞에서 정신은 언제나 먼저 무릎을 꿇는 것일까?
10월.
가난한 이민자들의 밤은 저마다 다른 꿈을 입고,
낯선 하늘 아래 하얗게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