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를 믿으시나요?
처음 만난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시나요? 날씨 이야기로? 밥은 먹었는지? 예전에는 혈액형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각 혈액형별로 그 사람의 성격이 구분되었고, 이런저런 수다 떨기에 좋은 소재였죠. 자기를 소개할 때도 “제가 A형이라 소심해서요..”라며 혈액형을 앞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MBTI라는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군요. 어쩌면 혈액형의 파급효과보다 더 파괴적인 것 같습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MBTI가 언급되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이죠. 최근에는 TCI 등 새로운 것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아마도 MBTI의 다음 버전들은 계속 계속 나올 겁니다. 저는 하나의 유행으로, 그냥 대화거리로, 재미 삼아 MBTI를 소비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회사 입사에도 MBTI를 고려한다.”라는 기사 제목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아! 도를 넘어서는구나!”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기사가 좀 오래되었으니 지금은 그 회사 방침이 바뀌었을 까요?
혈액형별 성격이란 것에 심하게 환호했던 두 나라가 있는데 대한민국과 일본이라고 하더군요. MBTI는 혈액형별 성격 테스트의 확장 버전 같은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혈액형의 가짓수라고 해봤자 4가지 정도이지만 MBTI 테스트는 엄청 복잡해 보입니다. 테스트 질문 수도 많아서 지루한 테스트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도 16가지 정도로 세분화가 되었죠. 그러니 MBTI 테스트를 신뢰할 만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더군다나 어느 과학자의 매우 신뢰도 높은 연구로 나온 결과라고 하니 더 현혹이 되었죠.
이 세상의 어떤 과학적 방법도 한 사람의 개인을 판정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한 사람에게는 온 우주가 담겨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MBTI 테스트가 질문 항목이 많다고 하지만 그 질문들로 한 사람을 알기에는 너무도 모자랍니다. 그럼 한 사람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해야 할까요? 과학자들 중 우주의 정체를 이렇게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사람의 뇌는 너무도 복잡한데 그 복잡함이 우주와 같고, 모습도 매우 흡사하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어느 존재의 뇌 속일 수도 있다. -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뇌를 정복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우주를 정복할 수 있나요? 우주만큼 광활한 것이 인간의 뇌입니다.
성공한 인생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아마도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겁니다. 자본주의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아내서 그것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역량을 제대로 알아야 나의 실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고, 성공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척 중요한 사회입니다. 상대방과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죠. 그러나 사람에 대해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MBTI가 재미로 하는 단계를 지나 집착하게 된 이유는 너무도 쉽게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는 희망과 욕심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 대해 알아 간다는 것은 지난한 과정과 고통이 따릅니다. 타인에 대한 것도 그렇고 나 자신을 아는 것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에게 MBTI가 무엇인지 물어봄으로써 아주 빨리 그를 판단하고 관계를 이어갈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MBTI를 알면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인생의 숙제 하나를 덜게 됩니다. 그러나 희망과 달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MBTI 때문에 인생의 벗을 놓치고, 잘못된 길로 자신을 이끌게 될 겁니다.
MBTI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적어도 MBTI는 한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을 판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런 목적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검증되었을 리가 없죠.
그 사람에 대해 아는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시간을 들여서 직접 겪어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시대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아는가로 성공 여부가 갈린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알게 해 준다는 책도 많고 강의 영상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직접, 나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야 합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어느 현인의 말이 기억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