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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resavie Dec 06. 2016

결정되지 않은 삶을 위하여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란다.  내가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끔은 세계가 전혀 없는 사람도 있더라. 그러니 상대의 입장에서 내가 품은 세계는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도 한 번쯤 생각을 해봐야 한다. : P 84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천천히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앞서 간다고도 생각지 않구요.오늘도 감사히 보내시길.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선물은 아닙니다. : P 345




지극히 사적인 감수성


책이든 대화를 통해서든 나와 비슷한 생각이나 가치관,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기쁘다. 더 많이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고 그 사람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한 글자, 한 마디마다 저절로 귀 기울이게 되는 것도 좋다. 이석원 작가가 그렇다. 책이나 종종 블로그에 올라오는 그의 글에 참 많이 공감하고 감동한다. '어쩜 이렇게 나랑 비슷한 생각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거' 라면서 혼자 크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이런 생각 참 멋있네, 닮고 싶다' 라며 맘에 드는 문장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의 글은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사람과 사랑이 있고, 삶에 대한 스스로의 원칙이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있다. 늘 진지하면서도 솔직하고 재치가 넘친다. 부럽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살면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특이한 구조의 산문집이다. 작가가 한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고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그 이후까지의 이야기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 글이다. 근데 이건 실화인걸까? 그의 첫 책인 「보통의 존재」도 정말 좋았는데, 역시 이 책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석원' 이라는 작가 이름 세 글자만으로 망설임 없이 책을 구입하게 만드는 그의 내공이 느껴진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석원' 작가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나는 정말로 그의 글이 마음에 든다.


  수많은 문장들에 마음이 흔들렸고, 그의 글로 인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나 이 문장에서는 마음이 쿵하고 내려 앉기도 했다.


'새로운 인연이 내게 새로움을 줄 수 있을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가면 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도 질문만 던져놓고 자신의 생각은 얘기하지 않았는데, 더 많은 경험을 한 인생 선배로서 그는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애초에 정답이 없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각자의 마음 속에만 답이 있을테니까.

     저런 기대를 갖고 사는 것이 우리 삶을 조금 더 설레이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설령 새로운 인연과 경험, 여행 같은 것들이 겪어보니 결코 새롭지도, 별반 다르지도 않다 하더라도 그의 말대로 '결정되지 않은 삶'이 훨씬 매력적이니까 말이다.


그가 이야기 하는 것들이 나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고스란히 내 머리 속으로 가져오고 싶다. 그가 블로그에 글을 쓸 때마다, '오늘도 감사히 보내시길' 또는 '오늘도 평안하시길' 같은, '바로, 지금,  오늘' 같은 현재적인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나는 참 좋다. 설령 내일은 감사할 수 없고 평안할 수 없게 될지언정, 우리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을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느껴져서 정겹다. 그의 그런 안부인사야 말로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나에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굳이 하나 꼽자면, '밥 먹었어?'가 되지 않을까. 밥 먹었냐는 한마디 안에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걱정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므로, 언제 들어도 참 좋은 말이다.


언제나 좋은 그의 글을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심 가득한 문장들



이렇게 속이 헝클어져 버렸으니, 다시 원래대로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나는 이 머릿속, 내면의 전쟁을 멈추지 못것이다. : P 10



너는 너라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런 말을 하지. 나는 나라서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해.

우리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인데 왜 네 기준을 함부로 남에게 적용하는 거니. : P 92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작은 희망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까. 그럴 때도 나는 서점에 간다. : P 105



니가 그렇게 불평이 많고, 타인과 세상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가진 게 없어서 그래. 니 안목이 남달라서도 아니고 니가 잘나서도 아니야. 단지 가난해서 그래.

니 내면과 환경이. 경험이. 처지가. : P 118



글쎄.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내 경험에 의하면 가치란 건 사랑을 함으로써 만들어지더라. 하기 전에 고려된다면 그것은 조건이 될 뿐. 원래부터 소중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 주고 다른 사람은 해주지 못하는 이해를 해줌으로써 오직 내게만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가치란,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닐까. : P 126



어려서는 별 대가 없이도 넘치도록 주어지던 설렘과 기대 같은 것들이 어른이 되면 좀처럼 가져보기 힘든 이유는 모든 게 결정되어버린 삶을 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벌 수 있는 돈,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 등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으면 대개 정해져 버다. 장차 여행은 몇 나라나 더 가볼 수 있고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으며 내 힘으로 마련할 수 있는 집의 크기느 어느 정도일지가 점점 계산 가능한 수치로 뚜렷해지는 것이다. 남은 생이 보인다 할까. 허나 아무리 어른의 삶이 그런 것이라고는 해도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한 채로 몇십 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고 생각하기에 나는 노력하기로 했다. 너무 빨리 결정지어진 채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은 생에서도 한두 번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바라며 살고 싶다. 자고 일어나서 막 눈을 떴을 때 또다시 맞을 하루가 버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가꾸는 일이 소중한 이유는 그 일을 함으로써 나와 내 삶이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믿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 게 앞으로 가는 건지는 몰라도, 맞는 길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느낌. 그런 느낌을 가질 수만 있다면 하다못해 살이라도 몇 킬로 빼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게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 해도, 그런 작은 변화의 여지라도 있어 내 남은 생이, 내 몸과 마음이 이대로 정해져 버리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나는 노력할 거다. 언제까지고 결정되지 않은 삶을 위하여. : P 149



연애를 할 때 정말 좋은 상대는 같이 있을 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함께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그가 나를 얼마나 배려하는지 이 관게에 얼마나 성의를 보이는지 알 수 있지요. : P 172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끔찍하단 기분이 드는 게 아니라 마음이 편안하고 당연한 듯 여겨진다면 그게 바로 진짜 평생 해도 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일을 찾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지만. : P 197



사랑은 이처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이 또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 P 221



인간은 결국엔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혼자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봤을 때, 책의 가장 위대하고도 현실적인 효용성은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람들과 있을 때 못지않게, 때로는 그보다 더욱 풍요로운 순간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쉽게 말해, 바로 이런 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 P 237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때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과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의 상처에 집중하는 사람 중 나는 어느 쪽일까. 어느 쪽이어야만 할까. : P 282



나의 결핍은 친구나 가족, 연인이 메워줄 수 없다. 그들은 나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한 존재가 아니며 그들 자체로 각자의 결핍을 스스로 메워가야 하는 독립적인 존재들일 뿐이다. : P 316



생존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 삶에서 비롯된 모든 세상에 대한 의문과 생각, 꿈들은 공허할 수밖에 없는 것이거늘. 그래서 다들 그렇게 밥벌이를 위해 필사적이거늘. 세상이 공평하다면 그 돈을 줄 수 있는 부모를 만난 것은 행운이겠으나 그럼으로써 너의 사유가 좀 더 가치 있는 것이 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은 일종의 불행이라 할 수 있겠지. : P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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