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기를 보러 놀러 온 동생은 내 얼굴에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언니! 얼굴이 완전 갔어!” 그리고 내가 화를 내기 전 재빨리 병원비에 보태 쓰라며 즉시 두둑한 용돈을 이체해주었다. 마침 그 주 화요일에 엄마와 어머님이 놀러 오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두 명의 할머니에게 아기를 맡기고 오랜만에 평일 낮 강남으로 외출했다. 난생처음 ‘성형외과’ 간판이 붙어있는 병원에 앉아있으니 트렌디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에 괜스레 설렜다. 하지만 동생은 내가 못 미더웠는지 여러 번 강조했다. 상담실장의 화려한 화술에 넘어가지 말고 “리쥬란 힐러 2cc, 양쪽 볼이요”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하라고. 동생의 잔소리 덕분에 내 피부가 또래에 비해 칙칙하고, 건조하고, 얇고, 주름이 많이 생길 것 같지만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상담실장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리쥬란 힐러 4cc로 얼굴 전체에 시술하기, 주름 예방 보톡스 눈가에 맞기, 글루타치온 영양주사 맞기, 등등 다양한 ‘예방법’들이 나열됐지만, 나는 원래 계획대로 리쥬란 힐러 2cc에 아기 엉덩이 샤넬 물광주사(?)와 비슷한 이름의 주사만을 추가하고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하며 얼굴에 마취크림을 바르고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동생도, 상담실장도, 간호사도, 의사도 시술이 처음이라는 나에게 리쥬란 힐러는 무시무시하게 아프다고 말했다. 마취크림을 30분이나 바르고 앉아 있었기에 나는 그들의 위협과 경고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아기도 낳았는데, 남들도 다 하는데, 아파봤자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럴 수가. 욕이 나올 만큼 아팠다. 타투를 해보진 않았지만 얼굴 전체를 까맣게 만드는 타투를 마취 없이 하면 이 정도의 고통일까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심지어 이 시술 시 수면마취를 해주는 병원도 있다고 했다. 돈도 주고 병원에 전화해서 예약까지 해준 동생에게 할 욕을 머릿속에 썼다 지웠다를 500번쯤 했을 때 드디어 시술이 끝났다. 나도 모르게 흐른 눈물을 닦으며 넋이 나간채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다시 병원 로비로 나왔다. 시술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로비를 가득 채우도록 많은 사람들이 얼굴에 마취크림을 바르고 앉아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광기다!’
외모지상주의에 미쳐버린 인간 군상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이제 보니 이 건물도 미친 것 같다. 주차장 출입구는 너무 좁고 구불구불했다. 생뚱맞게도 다리가 땅에 붙어있는 닥스훈트는 정말 훌륭한 토끼 사냥개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가 닥스훈트 만해져야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동차 앞, 뒤, 양옆에서 모두 쉬지 않고 센서 경고음이 울렸다. 삐삐삐삐! 삐이이이이!! 크레이지 서울 피플들 같으니라고! 아무리 땅값이 비싸기로서니 주차장을 이렇게 깊은 지하에, 이렇게 좁게 만들어 놓다니! 시술로 예민해진 피부가 다시 뜨끈뜨끈 달아오를 때쯤 마침내 지하주차장을 탈출했다. 강남대로를 따라 집으로 향하는데,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헤아릴 수 없이 즐비했다. 이 많은 병원들이 지하주차장을 토끼굴 보다도 좁게 만들어야만 하도록 비싼 강남땅의 월세를 견뎌낼 만큼,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시술을 겪어낸단 말인가. 강남대로 전체가 매드니스였다.
강남대로를 미처 다 빠져나가기도 전,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은 한 달 간격으로, 세 번 정도 더 이 시술을 받으면 정말 ‘연예인 피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내 인생에 더 이상 리쥬란 힐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동생은 미끼를 던졌다. “언니, 지금보다 더 예뻐지면?” “그래도 안 맞아.” “훨씬 더 예뻐지면?” “그래도 싫어.” “졸라 더 예뻐지면?” “…”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강남대로의 매드니스에 일조하는 인간이었다. 나 역시 이 집단에 속한다고 인정하고 나니 얄팍한 나의 속내가 발라당 뒤집힌다. 갑자기 마취크림을 바르고 대기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내뿜던 열기가 광기가 아닌 열정으로 느껴진다. 더 예뻐지기 위해 바늘로 얼굴을 수백 방 찌르는 고통도 감내하겠다는데, 이 정도의 열정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내하고 몰입하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외모지상주의의 성지로 느껴졌던 광기 어린 강남이 갑자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이를 향해 달려가는 진취적인 인간들의 성지로 느껴진다. 한 달 뒤에 한 번 정도는 더 시술을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제목 사진 Photo by Nikita Tikhomirov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