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28일 후> <월드워 Z> <새벽의 저주>
민트 초코만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논쟁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좀비! 좀비 문학은 훌륭하다. 소수의 마니아층을 위한 장르문학 같지만 실제로는 논리 정연한, 잘 구성된 SF다. 작품마다 새롭게 창조된 세계관 속에서 좀비화의 원인, 징후 및 과정, 그에 따른 해결방안이 각기 다르다. <킹덤>의 좀비는 기생충 감염자라 뇌를 파괴해야 하고, <28일 후> 좀비는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라 굶기면 죽는다. <월드 워 Z>에서는 건강하지 않은(숙주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좀비의 특성을 역이용해 ‘병에 걸리기 위해’ 위장 백신을 개발한다. 극단적인 상황에 캐릭터들을 밀어 넣고 그들이 보여주는 인간의 민낯을 관찰하는 건 SF문학 특유의 ‘사고 실험’과도 같다. <새벽의 저주> 속 쇼핑몰, <28일 후>의 군대는 우리 사회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서로를 도와 재난에서 살아남으면서도 서로를 의심하고, 죽이고, 권력을 차지하고자 편을 가른다. 극한의 좀비 아포칼립스는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오기에 더욱 공포스럽다. <워킹데드>의 릭, <28일 후>의 짐은 모두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혼수상태로 있다가 의식을 되찾은 그날 홀로 좀비 세계를 맞닥뜨린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는 ‘나’도 릭, 짐과 함께 좀비의 특성을 이해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면서 실마리를 찾아 생존해 나가야 한다. 스릴이 넘친다.
무엇보다 좀비 자체가 흥미롭다. 좀비의 겉모습은 변화하지만, 코어 정체성은 변함이 없다. 초기 조지 로메로 감독의 ‘무덤에서 기어 나와 어기적거리며 걷는 시체’에 불과했던 좀비들은 이제, 달린다. 좀비화 된 존재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 죽지 않는 몸, 인간보다 우수한 몸이 되어 떼 지어 인간을 공격한다. 하지만 앞뒤 생각 없이 밀어붙이는 태도는 한결같다. 서양의 드라큘라도, 우리나라의 ‘손’이라 불리는 공포의 존재들도 문을 똑똑 두드리고 피해대상이 손수 문을 열어줘야만 그들을 홀리고 해할 수 있다. 하지만 좀비들은 비교적 ‘요즘 것’이라 그런지 정통적인 렛 미인(Let me in)의 예의 따위 없다. ‘인육을 먹겠어! 피 냄새를 맡겠어! 인간을 죽이겠어!’라는 말초적인 충동과 본능, 그들만의 신념에 충실하여 구멍이 있으면 무조건 기어들어가고, 문이 있으면 부수고 들이닥친다. 학식과 예의를 배우고 ‘시민’이 되고자 노력하는, 체면을 차리는 사람들이 모인 현대 사회를 붕괴시키는데 가장 효율적인 ‘무식한’ 빌런의 모습이다. 아니, ‘빌런’은 괜히 트렌디한 표현이다. 그냥 솔직히, 내가 싫어하는 인간 군상을 풍자한 게 좀비다.
무더위가 시작되기 직전, 아직은 걷기에 좋다. 광화문에서 시작해 삼청동, 인사동까지 이르는 골목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교보문고의 거울 천장을 신기해하며 마카로니 샌드위치를 사 먹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보는 날엔 건너편 골목 끝 성곡미술관의 작지만 아름다운 야외정원을 찾았다. 일민미술관 1층 카페에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와플을 먹고, 삼청동까지 걸어가 정독도서관의 여유를 즐긴 후, 인사동을 가로질러 돌아왔다. 나른한 한낮엔 청계천을 따라 위치한 칵테일 바에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아 낮술을 마시고 소라 조형물을 지나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광화문은 시끄러운 사람들로 북적였다. 세종문화회관 옆 스타벅스는 내가 애정 하던 독서 스팟이었는데 확성기 소음이 나를 그곳에서 몰아냈다. 태극기 부대였다.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지만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지나치게 비이성적으로 들렸다. 우글우글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비논리적인 어떠한 신념에 사로잡힌 채, 알 수 없는 분노에 차 있는 모습은 무식한 좀비를 연상시켰다.
본격적으로 좀비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한 9년 전 나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태극기 부대처럼 이성과 상식이 일반적 기준에서 벗어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말할 줄 아는 원숭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기분이었다. <새벽의 저주>에서 인간들은 탈출하기 위해 절대다수의 좀비와 맞서 싸우는데 그 장면이 아주 통쾌하다. 버스를 개조해 좀비 떼를 깔아뭉개며 통과한다. 전기톱으로 좀비들을 닥치는 대로 썰어버리고 총을 쉴 새 없이 난사한다. 가스 폭탄을 던진다. 인간을 그렇게 죽인다면 거부감이 들어 영화를 볼 수 없겠지만, 좀비 학살은 마치 <반지의 제왕>의 오크들을 쓸어버리는 것과 같은 카타르시스가 있다. 좀비를 예찬하는 마음을 글로 써보니 확실하다. 구구절절 언급한 많은 그럴듯한 이유 중 좀비 영화가 끌리는 가장 확실한 까닭은 좀비는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민트 초코를 먹을 때처럼 속 시원한 그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