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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카 BeanCa Nov 10. 2024

스무 살 대학생의 혼자 유럽 여행 32일 차

Day 3 in Italy, Rome. 바티칸을 보고 이탈리아를 맛보다

 오늘의 메인이벤트는 바티칸 투어이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정들었던 언니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먼저 나간 언니를 배웅하고, 뒤이어 민박집을 나섰다. 아침부터 바티칸까지 걸어가기에는 멀어서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봤다. 노점에서 티켓을 사야 된다는 글이 있어서 밖에서 티켓 부스를 찾다가 찾지 못해 결국 안으로 들어갔다. ‘로마의 지하철’이라는 겁도 있고, 내려가는 입구에 노숙자 분이 앉아계셔서 쫄아서 내려갔다. 안은 걱정했던 것보다 깔끔했다. 티켓 판매기도 있어 1회권을 끊고 들어갔다. 출근 시간이라 사람은 많았지만, 벽에 붙어 가방을 꼭 붙들고 가니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12분을 가 투어 미팅 지점에 도착했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 근처 카페에 가 카푸치노 한 잔과 크로와상 하나를 주문해 후다닥 먹었다. 동네의 허름한 동네 카페인데 커피도 맛있고 크로와상도 약간 퍼석했지만 겉에 살짝 있는 시럽이 적당히 달고 향긋해 매력적이었다.

 배부르게 먹고 미팅포인트로 향했다. 새벽부터 기다릴 자신이 없어 9시에 시작하는 패스트트랙 투어를 신청했는데, 잘한 선택인 것 같다. 학생할인까지 받아 투어+패스트트랙 입장권으로 10만 원 정도 했다. 9시에 만나 9시 반에 입장을 시작했다. 짐 검사도 하고 입장하니 설레기 시작했다. 첫 코스는 솔방울 정원이다. 솔방울이랑 이런저런 장식물을 보고, 옆에 붙은 사진과 함께 시스티나 성당의 소개도 들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유명한 성당인데,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으로 유명한 경당이다. 내부에서는 정숙을 유지해야 하기에 미리 설명을 해주셨다. 그림의 의미와 배경에 관한 설명을 해주셔 흥미로웠다. 설명을 하시고 10분 정도 쉬는 시간을 주셔서 가족들이랑 연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의자에도 잠시 앉아있었다.

 다음 코스는 박물관이었다. 가는 길마다 조각상도 있고, 천장화와 벽화 등등 그림을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그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평소 예술 지식이 별로 없이 감상을 하는데, 설명을 들으니 이 그림이 왜 여기에 있는지, 그림의 포인트는 무엇인지, 그림의 뜻은 무엇인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시각에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사진을 못 찍었지만 이탈리아의 곳곳을 지도로 그린 그림이 걸려있는 복도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지도를 부분 부분 그려 전시하고 곳곳에 자기와 같은 한국적인 작품을 넣어도 아름다울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화려한 복도에 그림이 걸려있으니 웅장했다.

 그렇게 바티칸 곳곳을 둘러보고 대망의 시스티나 경당으로 향했다. 바티칸의 꽃인 그곳! 미술에 큰 관심은 없지만 경당에 들어가려니 설렜다. 사람으로 가득한 경당이었지만, 들어가자마자 ‘우와’라는 말이 나왔다. 천장화부터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님이 설명해 주신 대로 천장화의 중간에서 화풍이 바뀌고 인물의 크기가 바뀌는 것도 신기했고, ET 포즈로 유명한 아담의 창조 그림에서 배경이 뇌라는 것도 설명을 듣고 직접 보니 신기했다. 목이 아파서 최후의 심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Holy 한 경당에 이렇게 사실적이고 비판적인 그림들이 있는 게 신기했고, 설명을 들은 부분을 하나하나 뜯어보니 더 재밌었다. 천장화와 벽화를 골고루 보다가 목이 아파 자리에 앉았다. 가장 유명한 두 그림 이외에도 성당 자체가 그림으로 가득해서 이곳저곳 살펴보느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설명을 듣지 않은 나머지 그림에 대해서는 혼자 생각도 해보고, 설명을 들은 그림은 설명대로 이해하니 넉넉하게 주신 자유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다 다시 집합 장소로 갔다.

(내부는 촬영 불가라 찍지 못했다.)

 마지막 장소는 성 베드로 성당이었다. 성인들의 무덤도 보고 안에 있는 모자이크 그림과 조각에 관한 설명도 들었다. 부분 부분 공사 중이라서 아쉬움도 있었지만, 규모와 그림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성당을 마지막으로 투어가 끝이 났다. 아침부터 일어나기도 했고, 계속 설명을 듣고 서있느라 마지막 성당에서는 눈이 반쯤 감기는 상태였지만 막상 끝나니 아쉬움도 있었다. 먹으러 온 이탈리아지만, 시간이 많이 남기도하고 어릴 때 간 바티칸을 조금 커서 다시 가면 감상이 다를 것 같아 신청했다. 역사, 미술, 종교 셋 다 어려운 분야라서 걱정도 했지만 설명을 쉽게 해 주시니 멀게 느껴진 세 분야가 재밌고 흥미로웠다. 투어가 없었다면 ‘웅장하다’라고 끝날 그림들이 이해가 가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행복하고 뿌듯하게 투어를 마치니 배가 고팠다.

 마침 같은 투어를 듣고 나가시는 분이랑 얘기를 하다 밥을 같이 먹게 되었다. 바티칸 근처에 3대 젤라또 집 중 하나인 올드 브릿지가 있어 먼저 갔는데, 리조가 없어 피스타치오와 누텔라, 그리고 블루베리 요거트 맛을 먹었다. 잘 만든 젤라또는 나오자마자 녹는다는데 날씨 때문인지 만드는 기술 때문인지 바로 녹았다. 부드러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쫀득함은 별로 없어 아쉬웠다. 이렇게 3대 젤라또를 모두 먹어보았는데, 내 취향은 파씨 > 올드 브릿지 > 지올라띠인 것 같다. 가격은 파씨 < 올드 브릿지 < 지올라띠인데 의외였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30분 거리에 있는 파스타집이다. 해산물을 먹고 싶다고 하셔서 가려고 한 리스트 중 해산물 집 하나를 골랐다. 가서 뽈뽀와 봉골레를 주문했다. 가는 내내, 그리고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하는데 겹치는 부분도 많고 생각도 취향도 비슷해서 대화가 즐거웠다. 와인을 마실까 하다가 알코올까지 들어가면 이대로 잠에 들 것 같아 콜라를 주문했다. 그렇게 나온 메뉴들을 먹어봤다. 봉골레는 신기한 맛이었다. 한국에서 먹어보지 못하는 맛이다.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간이 세다는데, 여기는 굉장히 삼삼했다. 간을 덜 하셨나 싶을 정도였지만 삼삼해서 재료 본연의 맛이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해산물 맛도 진했다. 뽈뽀는 놀라웠다. 내가 살면서 먹어본 문어는 쫄깃했는데, 이 문어는 굉장히 부드러웠다. 소스도 문어와 어울리는 동시에 문어의 맛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충격적인 문어도 먹고 카페로 향했다.

 3대 카페 중 마지막인 안티코 카페 그레코로 갔다. 앉아서 먹고 가면 에스프레소가 7유로라니..! 오래된 카페라고 들었는데 분위기가 확실히 고풍스러웠다. 인테리어도, 디저트도 아름다웠다. 다른 3대 카페들은 조금 가벼운 느낌이라면 여기는 전통과 품격이 살아있는 카페였다. 나는 뒤에 친구랑 잠깐 통화를 해야 해서 10분만 있을 수 있어 bar에서 마시는 것으로 주문했다. 나오자마자 향부터 맡았는데, 향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조금 쓴 맛이 있는 에스프레소 같았다. 한 모금 마셔봤는데, 부드러움보다는 액체의 느낌이 강했다. 향도 아메리카노 만들 때 내리는 에스프레소의 향이 훅 들어왔다. 설탕을 타서 마시니 부드러워졌지만, 어제 나에게 충격을 준 부드러움은 크게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그래서 정해본 커피 맛으로만 생각한 3대 카페의 순위는 타짜도르 > 산트 유스타치오 > 안티코 카페 그레코이다. 3대 젤라토에 이어 3대 카페까지 야무지게 가니 뭔가 뿌듯했다.

 친구와 잠깐 전화를 해야 해 같이 있던 분과 헤어져 다른 카페로 갔다. 전화하기로 한 친구가 추천해 준 카페라서 거기서 영상통화를 하면 친구가 좋아할 것 같았다. 20분 정도 걸어 친구의 추천 메뉴인 라떼와 살구 크로와상을 주문해 친구와 전화를 했다. 여기 카페라떼는 특이하게 달달한 크림을 올려주셨는데, 커피의 고소함과 향과 잘 어울렸다. 여기도 허름한 동네 카페였는데, 그래서 더 낭만 가득했다. 친구랑 전화도 하고 저녁 먹을 맛집도 찾아 저녁을 먹으러 갔다.

 계속 먹기만 하는 것 같다면 정답이다. 저녁으로는 까르보나라를 먹고 싶었다. 친한 언니가 추천해 준 식당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기분이 좋았는데 낭만 가득한 야외에 앉을 수 있어서 더 기분이 좋아졌다. 직원분이 오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와 같은 단어들로 반겨주시면서 메뉴를 주셨다. 그러고 갑자기 어떤 분께서 오셔서 숫자를 막 말하시길래 뭐지? 싶었는데 자기 번호를 말하는 거라고 무시하라고 다른 직원분이 말하셨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웃겼다. 나의 목표는 오직 까르보나라였기에 까르보나라만 주문했는데, 직원 분께서 “Fresh Pasta? “라고 하셔서 2유로를 추가하고 생면 파스타로 주문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직원 분께서 직접 면을 만드시는 모습이 보여서 신나게 구경했다. 생면이라 그런지 약간 기다려서 메뉴를 받았다. 한국의 까르보나라와는 완전 다른 노란 소스, 그리고 통통한 면이었다. 사진부터 찍고 한 입 먹어보니 상상한 그 맛이었다. 다른 식당의 까르보나라는 짜다는 평도 많던데 여기는 짜지 않아서 좋았다. 계란 노른자의 고소함과 치즈의 짭짤함이 조화로웠고 후추가 있어 느끼하지도 않았다. 얇은 면을 좋아하지만, 처음 먹어본 통통한 생면도 식감이 좋았고 꾸덕한 소스와 잘 어울렸다. 관찰레도 한 번 곁들여 먹었는데 관찰레는 짜서 조금씩만 먹었다. 중간에 직원분이 오셔서 ”맛있다? “라고 하셔 어제 배운 표현인 ”부오니시모“라고 말했더니 ”오 진짜 맛있다 “라고 하셨다. 그런 뒤에 ”벨라이쁘다“라고 하셔서 뭐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벨라가 이탈리아어로 예쁘다는 뜻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그라찌에“라고 하면서 식사를 이어나갔다. 여기는 플러팅 장인들인가 보다. 맛은 있었지만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 다 먹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오는 길에 꼭 가고 싶은 젤라또 집을 발견해 젤라또용 배를 아껴놔야 해서 조금 남겼다. 계산을 하려고 하니 리몬첼로를 후식주로 주셔서 마셨다. 주시면서 ”건배“라고 하시길래 ”살루테“라고 화답했다. 원래의 목표는 로마의 전통적인 파스타인 까르보나라와 카쵸 에 페페를 둘 다 먹는 것이었는데 원래 이런 류의 파스타를 즐기지 않기도 하고, 까르보나라도 맛있지만 취향에 잘 맞지는 않아 이 정도로 만족할 것 같다. 이탈리아 먹부림은 소중하니까 앞으로는 비슷한 메뉴더라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고 싶은 메뉴만 먹으려고 한다.

 배부르게 먹고 젤라또 가게로 향했다. 민박집까지 거의 50분을 걸어가야 해서 젤라또 하나를 사서 여유롭게 걸어가는 계획을 세웠다. 원래 젤라또를 먹을 계획은 없었는데, 오는 길에 사람도 많고 리뷰도 좋은 젤라또 집을 봐서 그 집으로 향했다. 다른 젤라또집과 다르게 은색 통에 담겨 뚜껑도 닫혀 있어 기대가 되었다. 3가지 맛 중 하나는 피스타치오로 고르고 나머지는 추천을 부탁드렸다. 초콜릿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셨는데 아까 초콜릿 맛을 먹어서 안 좋아한다고 했더니 시나몬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셨다. 좋다고 하니 할로윈 신메뉴로 펌킨 시나몬 맛이 나왔다고 하시면서 맛보기 한 스푼을 주셨다. 호박의 고소함, 달달함 그리고 시나몬의 향이 느껴져 맛있었다. 좋다고 하니 마지막 맛으로는 블루베리 맛을 추천해 주셨다. 특이하게 블루베리에 꽃, 그리고 레몬이 섞인 맛이었다. 오묘하면서 상큼하고 맛있어서 마지막 맛으로 골랐다. 그렇게 야무진 젤라또를 들고 민박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 입을 제대로 먹으니 감동이 밀려왔다. 한국에서부터 유명한 젤라또집은 꼭 갈 정도로 젤라또를 좋아하는데, 이 집이 내가 찾던 부드럽고 찐득한 맛이었다. 많이 달지도 않고 고유의 맛이 잘 느껴지면서 특이한 맛도 있었다. 블루베리 맛도 부드럽고 밀도가 높았다. 지금껏 과일은 소르베만 가능한 건가 싶었는데 상큼한 젤라또라니 신세계 같았다. 3대 젤라또 다 필요 없는 감동 가득한 맛이었다. 젤라또를 먹느라 시간이 빨리 갔다고 느낄 정도로 행복의 맛이었다. 여기는 정말 인생 젤라또집이다. 그렇게 행복한 귀가를 하고 들어와 씻고 여유롭게 글도 썼다. 이제 책을 읽고 잠에 들려고 한다.      

<오늘의 지출>

교통비 2유로

식비 6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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