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 in Italy, Rome. 3만 2천보와 함께 로마를 즐기다
어느덧 여행 한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나서 이탈리아에 와있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고 행복하다. 혼자 와서 외로울 뻔했지만 어제 언니들과 계속 붙어 있어서 외롭지 않고 행복한 이탈리아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은 민박집에서 깨어났다. 민박집에서 지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여섯 명이 한 방에서 잔다는 게 생각보다 편했지만 생각보다 불편했다. 잘 때는 편하게 잘 잤는데 일어나서 준비하려니까 확실히 불편함이 있었다. 다들 7시에서 8시 사이에 준비를 많이 하는데 어떤 분이 7시 전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샤워를 하시더니 7시 반이 돼서 나오셨다. 그동안 다들 세수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나가야 되는 시간이 있어서 답답해하는 거 같았다. 나는 바깥에 공용 화장실에서 빠르게 세수 양치만 하고 나와서 무사히 준비를 할 수 있었지만 아침에 씻지 말라는 민박집의 규칙을 어기고 가장 바쁜 시간에 혼자 화장실을 쓰고 있는 게 약간은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다. 여덟 시까지 준비를 마치고 민박집주인 분을 따라 아침을 먹으러 카페로 향했다. 카푸치노 한 잔과 크로와상 하나를 사 주셨는데 이탈리아의 카푸치노는 확실히 달랐다. 거품이 부드럽고 커피에 풍미가 느껴지고 스팀 된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풍부하게 어우러졌다. 크로와상도 카페에서 직접 구우신다는데 겉은 바삭하고 안은 퐁신한게 맛있었다. 얘기도 하고 아침도 먹었다. 그 뒤 언니들은 콜로세움으로 가고 나는 혼자 시장으로 향했다.
규모는 작지만 알찬 시장이었다. 치즈, 과일, 기념품도 있고 가장 많은 것은 오일과 같은 양념을 파는 상점이었다. 리몬첼로와 같은 술부터 트러플 소금, 발사믹 식초 그리고 올리브오일까지 매대를 가득 채운 상점이 많았다. 시장이라 그런지 호객 행위도 상당했다. Where are you from부터 예뻐요, 카와이 등등 다양한 말을 들었다. 혼자 있는데 호객 행위를 따라가는 게 부담스러워 감사인사만 하면서 지나갔다. 발길을 멈춘 곳은 기념품 상점이었다. 나라마다 소소하게 배지를 모아서 가장에 달고 있는데, 기념품 가게와 다르게 여기는 1유로에 배지를 팔아서 사기로 했다. 로마가 기념품이 가장 저렴하다는 말도 있어서... 한참을 고민하다 마음에 드는 배지 하나를 발견해 구매했다.
시장 구경을 마저 하고 향한 곳은 타짜도르이다. 로마의 3대 카페를 모두 가보겠다는 결심이 있었기에 타짜도르로 향했다. 커피를 이미 마시긴 했지만, 카페인에 크게 민감하지 않아 에스프레소 한 잔과 샤케라또 한 잔을 주문했다. 낭만 가득하게 바에서 먹었는데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에스프레소는 사실 이탈리아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대성공이었다. 한국에서도 에스프레소 바를 즐겨 가는데 콘파냐와 같은 커피만 주문해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은 처음이었다. 커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3대 카페답게 쓴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부드럽고 풍미가 가득했다. 설탕을 넣어먹지 않고도 초딩 입맛인 내가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1/3쯤 남았을 때 설탕을 추가해 봤는데,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맛이 되어서 원래의 맛이 더 좋았다.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나니 친절하신 직원 분께서 샤케라또를 주셨다. 설탕을 넣고 만들지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에스프레소만 거품으로 마시면 쓸 것 같아서 넣는 걸로 부탁드렸다. 샤케라또는 시원한데 얼음이 직접적으로 들어가지 않아 차갑지 않고, 부담스럽게 달지도 않고 거품이라서 부드러움 가득한 맛이었다. 나는 거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2/3쯤 먹은 후에는 감동이 덜했지만, 현지의 맛이라 그런지 만족스러웠다. 어제의 산트 유스타치오보다 타짜도르가 더 취향인 것 같다.
타짜도르에서 나와 젤라또를 먹으러 걸어갔다. 오늘의 젤라또집을 지올리티! 어제의 파씨와 함께 로마의 3대 젤라또 집 중 하나이다. 나는 리조(쌀) 하나만 바라보고 로마에 오기도 했고, 리뷰를 보니 여기 리조가 파씨보다 맛있다는 의견도 있어서 가장 후기가 많았던 리조와 수박으로 주문하고, 위에 크림도 올렸다. 강경 컵파인데, 컵이 생각보다 작아서 콘으로 주문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씨가 조금 더 취향에 맞았다. 리조만 놓고 보면 여기의 쌀이 더 부드럽게 씹혔지만 나는 파씨의 쌀 식감을 좋아했고, 파씨의 맛이 더 부드럽고 진해서 맛있었다. 수박은 맛있는 수박을 갈아서 초콜릿 칩을 넣은 맛이었다. 수박 자체는 맛있었지만 초콜릿 칩이 그렇게 맛있지 않았다. 가장 실망한 부분은 크림이다. 어제 크림은 자체로는 살짝 느끼하지만 아이스크림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풍미가 살아났는데 여기는 느끼하기만 해서 단독으로 먹기도, 아이스크림과 먹기도 애매했다. 크림을 빼고 싶었지만 위에 올라가 있어서 빼지도 못하고 먹었다. 그래도 시원하고 당을 충전해 준 젤라또를 먹고 향한 곳은 피자집이다. 먹기만 하는 것 같지만, 나름 사이에 걷기와 시내 구경도 많이.. 했다...
점심은 민박집 언니들과 유명한 피자집에 가기로 했다. 너무 유명해 오픈 전에 웨이팅을 해야 된다고 그래서 30분 미리 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픈 25분 전이 되니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줄에서 30분 기다리면서 메뉴도 미리 정해놨는데, 결론적으로는 잘한 일인 것 같다. 우리랑 같이 오픈할 때 들어간 팀 중에 우리가 다 먹고 나올 때까지 메뉴를 받지 못한 팀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주문을 해서 빠르게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줄에서 고른 메뉴는 클래식 마르게리따, 옐로우 피자 하나 그리고 부라타치즈 피자이다. 언니 한 명은 맥주를, 한 명은 물을 주문했다. 나는 마르게리따를 먼저 먹어봤는데, 감동의 맛이었다. 이게 피자지! 이게 피자의 나라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담백하고 쫄깃한 도우, 상큼한 토마토소스, 풍미 가득한 치즈까지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도 떠오르고,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도 떠오르는 맛이었다. 인생 피자로 등극한 마르게리따이다. 이외에 옐로우 피자는 이국적인 맛있는 피자였고, 부라타치즈 피자는 먹기가 약간 불편했지만 햄 등의 다른 재료와 잘 어우러져 역시 맛있었다.
그렇게 인생 피자를 먹고는 언니들과 헤어져 시내투어에 왔다. 부끄럽지만 세계사나 유적지에 관한 지식이 전무해서 신청하게 되었다. 알고 보는 것은 다르다는 말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어제 혼자 돌아다니며 감상했는데, 건물의 웅장함은 느껴지지만 배경을 전혀 모르니 멋있는 건물 1, 2, 3으로 느껴졌다. 오늘의 시내투어는 4시간 진행되는 투어였다. 이미 아침에 많이 걷고 온 상태라서 걱정했는데, 신기하고 재밌어서인지 힘들지 않았다. 스페인 광장부터 시작해 트레비 분수, 미네르바 성당, 캄피돌리오 광장,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 등 로마의 대표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소개를 해주셨는데, 4시간 동안 가이드 분께서 열정적으로 끌어주셔서 나도 재밌게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혼자 오신 분이 또 있어서 쉬는 시간에는 그분이랑 얘기도 많이 했다. 중간에 젤라또 집도 한 번 더 가서 이번에는 초코와 키위 맛을 먹었는데, 맛있었지만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젤라또 한정 민감한 편...)
투어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캄피돌리오 광장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동상의 위치를 바꿨다는 얘기부터 바닥에 있는 모양에 관한 설명도 신기했다. 위에서 보면 아름다운 꽃의 모양인데, 헬리콥터도 사다리차도 없는 그때 수학적인 계산만으로 이렇게 완벽한 바닥 장식을 만든 미켈란젤로가 위대하게 느껴졌다. 여기는 로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뷰도 있는데, 화창한 하늘과 잘 어울리는 포로 로마노의 뷰도 아름다웠다. 마지막 코스인 콜로세움까지 야무진 구경을 마치고 언니들을 만나러 갔다.
언니들은 판초 언덕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을을 본다고 했는데, 콜로세움에서 한 45분 걸어가니 노을은 끝나고 아름다운 야경이 남아있었다. 8시부터 거의 서있고 걸어 다녀 힘들긴 했지만 발길이 닿는 모든 길이 아름다워서 걷기만 해도 행복했다. (결국 오늘 3만 2 천보 넘게 걸었다.) 언덕을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올라 언니들을 만났다. 멋진 언니들은 이미 사진 구도까지 생각해 놔서 언니들이 알려주는 포즈 그대로 착착 사진을 찍고 밥을 먹으러 갔다. 소꼬리찜을 먹고 싶다는 한 언니의 의견에 따라 고른 식당인데, 7시부터 연다고 해서 KIKO라는 화장품 브랜드와 기념품 가게도 들렀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저녁이다. 소꼬리찜을 찾아 산 식당인데, 가이드분들도 많이 추천해 주시는 식당이라고 한다. 소꼬리찜과 대구 튀김, 그리고 봉골레를 주문했다. 숙소에서 와인을 마실 예정이라서 술은 패스하고 푸파를 시작했다. 처음 식전빵이 나왔는데, 발사믹이 시지 않고 상큼하고 깔끔해서 맛있었다. 소꼬리는 한국에서도 먹어보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토마토소스와 잘 어울렸고 약간 감자탕 느낌도 났다. 대구 튀김은 밑에 채소와 나왔는데, 튀김 자체도 잡내나 느끼함 하나 없이 부드럽고, 밑에 채소도 모닝글로리 볶음처럼 적당한 간이 있어서 생선과 잘 어울렸다. 봉골레는 먹자마자 조개의 깊은 맛이 파스타에 가득했다. 면을 만들 때부터 조개 육수를 넣었나 싶을 정도였고, 한국에서도 오일 파스타를 좋아해 자주 먹었는데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40분을 걸어 민박집에 도착했다. 이제 씻고 글도 쓰고 언니들이랑 와인을 마시려고 한다.
오늘은 언니들이 로마에 있는 마지막 날이다. 따뜻하고 세심하게 챙겨줘서 어제 만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언니들이 없었다면 나의 여행이 이렇게까지 재밌었을까 싶다. 덕분에 로마에서 야경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내내 심심하지 않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로마에 오면서 치안 때문에 걱정도 긴장도 많이 했는데 언니들이 하나의 울타리처럼 항상 도와주고 배려해 줘서 오랫동안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원래는 혼자 다니는 게 좋았지만, 사람의 정이 주는 따뜻함을 다시 느껴버렸다. 멋있는 언니들한테 많이 배웠다. 가고 나면 그리울 것 같다.
<오늘의 지출>
식비 56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