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타파스와 함께한 동방 박사의 날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한 화창한 아침이다. 가족들이 아침에 카사 밀라 안에 있는 카페에 간다고 했는데, 나한테는 너무 이른 아침이라 1시간 더 자다가 8시 반에 일어났다. 어재부터 한식이 너무 먹고 싶어 블록국 하나에 햇반 반개, 김 그리고 볶음고추장을 먹었다. 블록국으로 우거지 해장국을 먹었는데 뜨끈하게 맛있었고, 볶음 고추장은 기내식 비빔밥 말고는 처음 먹어보는데 밥도둑이었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후다닥 준비해서 만나기로 한 구엘 저택으로 향했다. 이 집은 실제로 구엘이 거주하기 위해 가우디에게 부탁한 주택이었다. 어제 구경한 구엘 공원에 살기 전까지 가족들과 함께 이 저택에 살았다고 한다. 가우디가 모두 건축한 건물인데, 어제 가우디 투어에서 보지 못한 내부를 자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하 마구간부터 입구, 응접실, 아이들 방, 구엘 부부의 방, 발코니 그리고 옥상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하녀들의 방에는 방음 시스템을, 부부의 방에는 메인 홀을 바로 볼 수 있는 창문을, 경비실에는 말의 발굽 소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건축한 게 느껴졌다. 독창성과 섬세함까지 갖춘 건축가라서 보는 내내 감탄하면서 봤다.
구엘 저택을 나와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다. 온라인 예매에는 실패했지만 혹시나 현장 구매가 가능할까 해서 가봤다. 다행히도 1시간 반 뒤의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동안 호다닥 점심을 먹고 오기로 해서 찾아놓은 타파스바로 향했다.
타파스 바에서도 열심히 메뉴를 고민하다 깔라마리, 고추 튀김, 샌드위치, 참치 샐러드 그리고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여기도 오픈 15분 만에 모든 자리가 꽉 차는 맛집이었다. 주문한 맥주 2잔부터 나왔다. 블렌드 맥주와 레몬 맥주를 주문했는데, 단맛 없이 이렇게 레몬의 상큼함만 담기는 게 신기했다. 블렌드 맥주는 나에게는 맛있는 맥주였지만, 엄마는 진하고 고소하다고 좋아하셨다. 먼저 깔라마리와 고추 튀김이 나왔다. 둘 다 튀김옷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얇았다. 한 입 먹어보니 둘 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이게 타파스 바지(라고 한국 사람이 말합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징어는 부드럽고, 고추는 맵지 않고 촉촉하면서 풍미가 느껴져 놀랍게도 오늘의 베스트 메뉴였다. 다음으로 나온 참치 샐러드는 참치와 감자, 그리고 계란이 들어간 것 같았는데 촉촉하고 부드럽고 고소해서 빵이랑 잘 어울렸다. 샌드위치도 계란과 햄, 토마토와 양상추 그리고 치즈가 들어간 기본적인 샌드위치 같았는데 놀라운 맛이었다. 샌드위치 러버인 언니가 고른 오늘의 베스트 메뉴였다. 마지막으로 먹은 감자튀김은 깍둑 썰기한 감자가 튀겨져 촉촉했고, 위에 올라간 마요네즈 소스와 잘 어울렸다. 조금조금씩 나와 맛보기도 좋았고, 짜지 않으면서도 맥주와 잘 어울려 환상의 맛이었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다. 평소에 이런저런 미술관에러 피카소의 작품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본 적은 처음이라 기대가 되었다. 미술관은 피카소의 초기 작품부터 시대별로 나와있어서 변화를 함께 보기 좋았다. 도자기 작품도 있는 게 신기했다. 한 모티브로 여러 크기의, 여러 구도의, 그리고 여러 종류의 작품을 그리는 게 신기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들은 따로 있었는데, 스페인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림들이었다. 밝고 화창한 색감과 자유로움이 느껴져 좋았다.
그다음으로 카페를 가려고 했는데, 앉아서 마실 수 있는 카페가 많지 않고 마침 바닷가 주변이라 근처에 있던 호프만 베이커리에서 크로와상을 사서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갔다. 근처에서 커피 2잔을 사서 벤치에 앉아 마스카포네 크로와상과 함께 먹었더니 낭만 그 자체였다. 화창한 하늘 아래 여유롭고 활기찬 해변가에서 커피와 크로와상이라니. 이게 행복이지 싶었다. 그렇게 한바탕의 여유를 즐기고 몬주익 언덕으로 가기 위한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바닷가는 너무 골목길이라 큰길 쪽으로 걸어 나갔는데, 도로가 특이한 큰길에 섰는지 처음 10분간은 택시가 잡히지 않고 그다음부터는 기사님들이 오시다가 다른 길로 가셔서 도착 예정 시간이 10분씩 훅훅 늘어나고 그러다가 취소당하고를 반복했다. 결국 조금 더 걸어가 다른 곳에서 시도했는데 10분 동안 잡히지 않아 결국 길거리에 있던 미터 택시를 탔다. 하지만 오늘이 동방박사의 날이라 길이 거의 퍼레이드 준비로 통제 중이었고, 기사님이 통제 때문인지 빙 돌아가시길래 몬주익 언덕을 포기하고 내렸다. 다행히 해변 근처에 내려서 해변에서 잠깐 노을을 보다 우리도 동방박사의 날 퍼레이드를 보러 시내로 향했다.
6시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6시에 경찰차만 계속해서 오더니 25분쯤 시작을 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동방박사의 날이 알려진 축제가 아니라 긴가민가 했는데, 스페인에서는 크리스마스보다도 큰 행사라고 한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처럼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 퍼레이드는 춤추는 사람들도 있고 인사하는 사람들, 큰 차에 타고 오는 사람들 등등 긴 행렬이 이어졌다. 특이한 부분은 중간에 큰 뜰채 같은 것을 든 사람들이 행진하며 관중 쪽으로 뜰채를 보내면 사람들이 거기에 소원이 적힌 것 같은 종이를 던져 넣었다. 우리는 길어야 20분 정도 되는 퍼레이드를 생각했는데 퍼레이드는 1시간 정도 이어졌고, 우리는 2시간 가까이 인파 속에서 서 있어야 했다. 다리가 아파서 갈까 했는데 사람이 많아 가기도 애매하고, 계속 이어지는 퍼레이드가 재밌어서 계속 보고 있었다. 그렇게 행렬이 이어지다가 사탕을 뿌리는 트럭을 마지막으로 퍼레이드가 끝이 났다. 우리도 사탕 몇 개를 잡아서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마트에서 간단하게 과일과 물만 사서 곧바로 집에 왔다. 계속 걷고 서있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다들 지쳐서 라면 2개와 밥, 그리고 반찬으로 야무진 한식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야무진 한식은 오랜만이라 정말 맛있게 허겁지겁 먹었다. 친구가 준 와인도 다 마시고 어제 산 레몬 맥주도 조금 마셨다. 이제 글도 마무리했으니 씻고 자려고 한다. 내일은 세비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