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이 글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오는지 세보시오.
오늘 아침은 바쁘게 시작되었다. 세비야로 이동을 하는 날인데, 아침 10시 비행기라서 6시 반에 일어나 호다닥 준비를 하고 7시 좀 넘어 출발을 했다.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보안 검색대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왔다. 공항에는 8시 전에 도착했는데 체크인하면서 한 번 막히고 이런저런 대기도 하다 보니 9시쯤 면세 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살짝 허기져서 크로와상과 커피를 먹고 엄마랑 언니랑 잠깐 쇼핑을 나섰다. 요즘 트렌드인 다크 브라운 가방도 보고 탑승 시작 10분 후에 게이트에 도착했다. 보통의 유럽 항공사들은 지연되어 탑승 대기할 시간이라 여유롭게 갔는데, 놀랍게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뭐지 싶어 급하게 갔더니 승객들이 거의 탑승한 상태였다. 당황해서 호다닥 탑승했는데 알고 보니 비행기에 승객이 거의 없었는데, 그래서 보딩도 빨리 끝난 것 같았다. 비행기는 2시간 정도였는데, 나는 타자마자 잠에 들었다. 거의 뜨자마자 잠에 들어 랜딩 할 때 잠에서 깨어나서 몰랐는데 비행기가 많이 흔들려 엄마랑 언니는 무서웠다고 한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고, 짐도 빨리 나와서 다시 우버를 타고 세비야 호텔로 왔다.
체크인하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호텔에서 추천해 준 구글 리뷰 좋은 맛집이었다. 역시 타파스 바였는데, 우리는 이베리코 목살 감자 구이와 뽈뽀, 트러플 후무스와 황새치 롤을 주문했다. 띤또라는 와인과 레모네이드를 섞은 술이 유명하다고 해 한 잔과 맥주, 그리고 해산물 요리를 많이 주문해 화이트 와인도 주문했다. 띤또는 샹그리아보다 탄산이 강하고 달달한 맛이었고 화이트 와인과 맥주도 맛있었다. 가장 먼저 나온 요리는 후무스였는데 트러플 향이 은은하게 나면서 굉장히 부드러운 후무스라서 빵과 잘 어울렸다. 다음으로 이베리코가 나왔는데 얇은 목살 구이에 살짝 달달한 소스와 감자 구이가 나왔다. 감자 구이는 완벽한 굽기에 부드러워서 맛있었지만 목살은 부드럽지 않아 아쉬웠다. 다음으로 황새치 롤이 나왔다. 황새치가 뭔지도 모르고 리뷰가 좋아서 주문했는데, 익힌 참치와 비슷했다. 소스와 미역 줄기 볶음과 함께 나왔는데, 소스가 익숙한 맛이었다. 마치 한국의 생선 조림을 먹는 것 같은 익숙한 맛이었다. 거기에 미역 줄기 볶음이라니 정말 한식 같았다. 황새치 구이까지 다 먹고도 조금 기다리니 뽈뽀가 나왔다. 가장 비싼 요리였는데 크기가 작은 문어 다리 하나만 나와서 아쉬웠지만 플레이팅은 예뻤다. 문어도 부드럽고 맛있었지만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잘 먹고 나와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건물의 색감이 예뻤는데, 붉은 색감 건물도 있고 색이 다양했는데 화창한 하늘, 푸른 오렌지 나무와 너무 잘 어울렸다. 앞으로 세비야 하면 오렌지가 먼저 생각날 정도로 오렌지 나무도 많고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파란 하늘과 초록색 잎, 주황색 오렌지와 알록달록한 건물까지 행복해지는 풍경이었다. 최애 풍경으로 바로 등극했다. 골목을 들어갈 때마다. 눈을 돌릴 때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황홀할 정도였다. 걷다 보니 다리도 나타났는데 강렬한 햇살 아래라서 물에 윤슬이 아름답게 반짝였는데, 이런 풍경이라면 평생 보고 싶을 정도로 매 순간이 아름답고 행복했다.
그렇게 걸어 시장에 도착했는데 휴일이었는지 영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황금의 탑까지 걸어갔는데 힐링과 행복의 연속이었다. 황금의 탑 전망대도 휴일이라 그런지 오픈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알카사르에도 가봤는데, 역시 휴일이라 문을 닫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계속해서 문을 닫아 아쉬움이 있을 법도 했는데 걷는 내내 보이는 풍경에 아쉬움도 잊을 정도였다.
계속 걸어 잠시 쉬고 싶어 져 츄러스 맛집으로 갔다. 가장 유명한 집으로 갔는데 역시 영업을 하지 않아 옆에 있던 다른 가게로 향했다. 츄러스를 새로 튀겨야 해서 10분 정도가 걸렸는데, 갓 나온 따끈 바삭한 츄러스를 먹을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갓 나온 츄러스는 바르셀로나의 츄러스와 다르게 공기가 많이 포함되어 퐁신했다. 소스 없이 한 입 먹었을 때는 아주 살짝 짭조름했는데 초코 소스에 찍어먹으니 너무 달지 않고 부드럽고 달달하면서 바삭 퐁신해서 행복한 맛이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하루가 행복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츄러스를 먹으며 잠깐 쉬었다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들어가는 순간 시내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펼쳐졌다. 넓은 건물도 아름다웠고, 햇살이 비치는 물도 평화로웠다. 잠깐 앉아서 쉬다가 가족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나는 조금 더 쉬려고 벤치에 남아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카약 타는 사람이 많아 조금은 정신없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카약 시간이 끝났는지 연못이 한적해졌다. 그 순간 정말 평화롭고 고요하면서 조금씩 들리는 버스킹 소리까지 어우러져 이 공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가끔 책에서 빠져나와 사진을 찍을 때 이상하게 확 주변의 소리가 들리고 주변이 인지가 되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여유로운 행복이 느껴졌다. 잠깐 쉬다가 어떤 스페인 아저씨가 말을 걸어주셔서 스몰토크도 하고 세비야 맛집도 추천받고 다시 가족들과 만나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도 호텔에서 간단하지만 든든하게 라면과 햇반을 먹고 잠깐 쉬었다. 그러다가 스페인 현지식으로 간단한 타파스에 술 한 잔을 하고 싶어서 엄마 언니랑 근처 타파스 바로 향했다. 아빠는 잠깐 자다가 합류한다고 하셨지만 결국 오지 못했다. 셋이서 샹그리아. 레드 와인 그리고 맥주를 주문하고 시금치 볶음과 하몽을 주문했다. 하몽이 나오는 순간, 이건 진짜 하몽이구나를 직감했다. 커다란 덩어리에서 썬듯한 비주얼에 빛깔까지 전에 마트에서 사 먹은 하몽, 한국에서 먹은 하몽과는 달랐다. 한 입 먹어보니 정말 향과 맛, 식감이 남달랐다. 충격적으로 새로워서 나에게 ‘하몽’의 존재를 다시 알게 해 줬다. 시금치 볶음은 익숙한 나물이면서도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이 나서 맛있었다. 샹그리아도 상큼하게 맛있어서 1시간 반 동안 엄마 언니랑 열심히 재밌게 수다 떨다가 왔다. 들어오자마자 글을 조금 쓰다가 씻고, 나와서 마저 쓰고 있다. 이제 행복한 내일을 위해 잠에 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