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에서 맞이한 여행 100일 차
오늘은 대망의 여행 100일 차였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호다닥 준비를 마치고 첫 일정인 트리아나 시장으로 향했다. 트리아나 시장이 9시에 연다고 해서 여유롭게 9시 반에 도착했다. 신선한 과일이나 간단한 음식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갔는데, 연 가게가 많이 없었다. 한 바퀴 구경을 하고 착즙 오렌지 주스와 하몽 샌드위치 그리고 츄러스를 주문했다. 시장인데도 관광지라 그런가 물가가 비쌌다. 츄러스부터 한 입 먹어봤는데, 어제 먹은 츄러스보다 가늘고 짭짤한 맛이 강했다. 초콜릿도 묽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하몽 샌드위치는 정직하게 빵과 하몽만 들어있었는데, 맛있고 향과 식감이 매력적인 하몽을 빵이 조금 가리는 것 같아 아쉬웠다. 착즙 주스는 전에 마트에서 산 것보다 맛있어서 한 병을 나눠마시고 한 병을 더 사갔다.
다음 코스로 살바도르 성당에 가려고 했는데, 오늘이 스페인 가게들의 세일 시작일인지 가게마다 세일 표시가 붙어있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쇼핑에 진심인지 거리에 사람마다 양손이 쇼핑백으로 가득했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마침 옷가게가 몰려있는 길을 지나가게 되어 엄마의 옷 2개와 내 가죽재킷 하나를 샀다. 아주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쇼핑을 하니 허기가 져서 주변에 있던 유명한 츄러스 집으로 향했다. 어제 오려다가 휴무일이라서 못 갔는데, 오늘은 다행히 열어있어서 갈 수 있었다. 가자마자 직원 분께서 “츄러스 앤 초코?”라고 물어보셔서 “Yes”라고 했더니 바로 튀긴 츄러스와 따끈한 핫초코를 주셨다. 츄러스의 비주얼은 어제 먹은 츄러스와 마찬가지로 두껍지만 공기가 많아 퐁신해 보였고, 초콜릿은 진해 보여서 기대가 되었다. 한 입 먹어보니 여태 먹은 츄러스 중 가장 맛있었다. 초콜릿 맛도 진하고 바삭 퐁신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가족들도 좋아해서 하나를 다 먹고 아쉬움에 하나를 더 주문해서 먹었다. 츄러스는 먹는 사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세비야 대성당 입장 시간이 빠듯해졌다. 그래서 살바도르 대성당을 다음 순서로 미루고 세비야 대성당부터 갔다.
세비야 대성당은 규모도 크고 높이도 상당히 높았다. 우리는 입장하자마자 히랄다 탑부터 올라갔다. 꽤나 높이 올라가야 했지만, 무념무상하게 올라가니 생각보다 금방 정상에 도착했다. 세비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였는데, 빼곡한데 다채로운 건물들이 눈에 들어와서 예뻤다. 철조망이 많고 촘촘해 사진을 찍기는 어려웠지만 이틀 동안 세비야를 열심히 돌아다녔기 때문에 조금씩 추억하며 구경하기 좋았다. 4개 방면이 있어 구경을 마치고는 다시 성당으로 내려왔다. 중앙에 가장 대표적인 장식이 있었는데, 엄마가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시는 동안 나는 아빠랑 그 앞에 의자에 앉아서 잠깐 쉬었다. 앉아있는 동안 주변에서 이런저런 투어 단체에서 와서 설명을 했는데, 우리 근처에서 하셔서 조금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것보다 내용을 알고 보니 더 신기하고 재밌었다. 여기는 콜럼버스의 무덤이 있는 성당으로도 유명한데, 역사책에서만 보던 콜럼버스의 무덤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가운데 있는 정원에는 오렌지 나무가 가득했는데, 푸른 하늘에 초록색 잎과 주황색 오렌지라니 정말 힐링되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세비야 대성당 구경을 마치고 잠깐 호텔에 들러 쇼핑한 짐을 내려놨다. 그리고 근처에 세비야 특산품 가게인 오렌지 가게가 있어 나는 엽서를 사고, 엄마는 찻잔과 티팟 세트를 사시고 언니는 오렌지 젤리를 샀다. 귀여운 오렌지가 특산품이라 그런지 가게 안도 귀여운 상품들로 가득했다.
쇼핑백을 호텔에 내려놓고 새로 산 가죽재킷으로 옷을 갈아입고 살바도르 대성당으로 향했다. 살바도르 대성당은 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화려하고 신성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지하 공간에는 여러 사람들의 무덤이 었었고, 정원은 역시 오렌지 나무로 가득했다.
마지막 성당까지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늘도 타파스 바로 향했는데, 가는 길이 10분 정도 걸려서 메뉴를 열심히 고민하며 갔다. 치열한 고민의 결과는 오리 콩피와 뽈뽀, 오징어 먹물 빠에야와 치즈 요리였다. 곁들여 마실 시원한 맥주 2잔도 주문했다. 치즈 요리가 먼저 나왔다. 구운 치즈 위에 살짝 구운 아보카도가 올라가고, 그 위에는 루꼴라, 옆으로는 스위트 칠리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네 재료가 심플하면서도 잘 어울려서 맛있었다. 다음으로는 오리 콩피가 나왔다. 오리 콩피는 처음 먹어보는데, 당근 퓌레랑 미지의 소스랑 오리 콩피가 정말 맛있었다. 당근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당근 퓌레는 정말 맛있고 고기랑도 잘 어울렸다. 뽈뽀는 어제보다 양도 많고 소스도 맛있었다. 마지막 빠에야도 먹물 맛이 진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풍미가 느껴져 맛있었다.
세비야를 알차게 돌아다녀 대표적인 관광지는 모두 돌아봤지만, 이대로 실내로 들어가기에는 세비야의 풍경이 아름다워 왕복 1시간 거리인 스페인 광장에 다시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여전히 예쁜 오렌지 나무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30분을 걸어 스페인 광장에 도착을 했다. 시간이 늦어져 걱정했는데, 다행히 카약이 아직 가능해서 줄은 잠깐 기다려 우리도 카약에 탑승했다. 처음에는 언니와 아빠가 노를 젓기 시작했는데, 언니의 실력이 영 좋지 않아 내가 노를 젓기 시작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많이 봤는데, 실제로 젓는 건 처음이라 기대되었다. 막상 시작하니 모두가 인정해 주는 숨은 재능러였다. 나도 재밌어서 새로운 적성을 찾은 것 같았다. 아빠가 장난 삼아 새우잡이 배에 보내야겠다고 말하실 정도로 언니보다도, 아빠보다도 빨리 저어 뿌듯했다. 언니와 아빠는 중간중간 교대했는데 나는 적성에 잘 맞았는지 별로 힘들지도 않아서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노를 담당했다. 딱 석양이 지는 시간에 카약을 타서 실시간으로 변하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행복하고 아름다웠고, 석양이 비치는 건물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마치 윈도우 배경화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유유자적함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카약 타기를 마치고 잠시 건물 2층에 올라가 야경을 감상했다. 지금까지 야경은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 전경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아름다운 조명이 있는 건물과 조명이 비치는 수로의 풍경도 아름다웠다.
다음으로는 걸어 백화점까지 갔다. 오전에 한 쇼핑을 마저 하러 갔는데, 생각보다 별게 없어서 금방 나왔다. 그러고는 앞에 있는 메트로폴의 야경도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으로 오늘도 간단하게 한식을 먹고, 다 같이 낮에 본 현지인 가득한 타파스바로 향했다. 가장 유명한 메뉴인 꿀가지를 주문하고, 맥주와 Vermut이라는 와인을 주문했다. Vermut은 종류가 다른 걸로 2잔 주문했는데 큰 차이가 없이 둘 다 향신료가 들어간 와인 맛이었다. 꿀가지는 얇게 자른 가지를 튀겨 꿀을 뿌린 메뉴였는데, 달달하고 바삭해서 안주로 맛있었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귀가해서 씻고 글을 조금 쓰다가 피곤해서 결국 다 못 쓰고 피곤해서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화창한 도시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