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무 살 대학생의 유럽 여행 101일 차

극과 극이지만 둘 다 아름다운 스페인의 남부 도시들

by 빈카 BeanCa

오늘은 세비야를 벗어나 스페인의 남부 도시들을 본격적으로 여행하는 날이다. 그러기에 앞서 세비야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엄마와 아빠는 렌터카를 빌리러 가는 길에 드시고, 나랑 언니는 어젯밤에 간 타파스 바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리뷰에 아침 얘기가 많기도 했고, 현지 사람들로 가득해서 우리도 스페인식 아침을 먹으러 방문했다. 빵과 커피가 나오고 거기에 곁들여 먹을 소스나 토핑을 고르는 방식이었는데, 우리는 햄 페이스트 하나와 토마토+올리브오일을 주문했다. 먼저 나온 토마토+올리브오일은 상큼한 토마토퓌레에 상큼하고 고소한 올리브오일이 같이 나와 빵에 올려먹는 방식이었다. 맛.없.없 조합이지만 스페인에서 먹으니 더 상큼하고 맛있는 것만 같았다. 다음으로 나온 햄 페이스트는 더 자극적이었는데, 짜고 느끼해서 많이는 못 먹고 빵에 조금씩만 발라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야외 의자에 앉아서 먹었는데, 먹는 동안에도 현지 사람들이 끊임없이 아침을 먹으러 오는 동네 맛집 같았다.

그러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 잠깐 쉬다가 엄마 아빠를 만나 차를 타러 갔다. 내가 오늘의 조수석 담당이었는데, 스페인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렌트한 첫날이라서 초반에는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내비게이션 연결이나 블루투스 연결, 에어컨 등을 씨름하다가 조금 안정이 되고는 차 안 노래방을 펼쳤다. 막내는 항상 선곡 담당이었기에 오늘도 플레이리스트는 내 픽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싸이 노래로 시작을 해서 차 안에서 신나는 노래로 메들리를 했다. 그렇게 2시간 반 정도 달려 오늘의 첫 목적지인 미하스에 도착했다.

미하스는 해변 도시이자 산 위에 있는 도시인데, 휴양 도시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내리자마자 높은 지대 위라서 산과 구름과 눈높이가 비슷하고 마을의 전경이 보이는데 동시에 멀리까지 바다와 지평선이 닿아 있어 눈에 담기는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다. 점심시간이 되어 어디에서 밥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근처에 있던 모든 음식점은 리뷰에 주문도 음식도 늦다는 얘기가 많아 카페로 갔다. 마지막 목적지인 론다까지 가려면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카페에서 큰 샌드위치 2개와 샐러드, 커피, 맥주, 그리고 환타 오렌지도 주문했다. 사장님 한 분이 하시는 카페였는데, 주문하고 나니 채소를 써시는 소리가 들려 기대가 되었다. 우연히 들어온 카페였는데 전경부터 아름다웠다. 바다를 포함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뷰였는데, 하늘도 바다도 맑아서 보는 내내 힐링되는 뷰였다. 샐러드부터 나왔는데, 최근에 먹은 음식 중에 가장 신선했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정말 신선 그 자체인 양상추와 토마토였다. 나는 원래도 양상추와 토마토를 좋아해 맛있게 먹었다. 다음으로 주문한 BBQ 치킨 랩 샌드위치도 맛있었고, 바게트 샌드위치도 올리브오일의 향이 나면서 간 토마토의 상큼함이 치고 올라오고, 치즈의 풍미와 하몽의 짭짤함까지 어우러져 스페인이 잘 느껴지는 맛있는 맛이었다. 환타 오렌지는 처음 마셔보는데, 확실히 오렌지 함량이 높아서 그런지 탄산음료보다는 오히려 에이드에 가까운 맛이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본격적인 미하스 구경에 나섰다. 미하스는 작은 마을이기도 하고, 우리도 시간이 많이 없어서 동굴 성당과 전망대만 빠르게 구경했다. 전망대에 가니 왼쪽에는 산과 곳곳에 집이 있는 마을이, 오른쪽으로는 해안 마을과 바다가 펼쳐졌다. 동굴 성당은 이름 그대로 동굴 속에 있는 성당인데, 크기가 작은데도 들어서자마자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져 신기했다. 동굴 성당 앞에서는 바다가 쭉 보였는데, 지대가 높은 곳에서 해안 도시를 쭉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더 있고 싶었지만 론다까지 1시간 반을 더 가야 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또다시 조수석에서 간식도 조금씩 먹으며 달리다 보니 5시 반쯤 론다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유명한 누에보 다리로 향했다. 론다는 절벽 위에 있는 도시라고 알고 있었는데, 절벽 위를 잘 가본 적이 없어 체감을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다리 위를 올라가 보니 아찔함과 웅장함이 느껴졌다. 펜스 없으면 바로 떨어지고, 떨어지면 찾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아찔한 절벽이 마주 보고 있고 그 사이를 높고 탄탄한 오래된 다리가 연결하고 있는데 웅장함을 넘어 경이로웠다. 정말 봐도 봐도 옛날에 이런 절벽 위 마을을 만들었다는 것도, 절벽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었다는 것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론다에서는 오랜만에 에어비앤비로 잡아 차에서 캐리어를 끌고 바로 집으로 갔다. 짐만 넣어놓고 다시 나와서 해가 지는 하늘과 다리를 보러 갔다. 높이 올라와서인지 하늘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노을도 더 아름다웠다.

원래는 오늘 저녁에 오랜만에 간단하게 고기를 구워주려고 했는데,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마트에 고기가 없어 양념된 돼지고기만 사봤다. 곁들일 샐러드와 계란, 햄과 치즈, 오렌지 그리고 화이트 와인까지 사서 귀가했다. 오늘 저녁은 스페인식 양념 돼지고기에 달걀을 푼 육개장, 햄과 치즈 플레이트 그리고 화이트 와인이다. 고기도 굽고 블록국도 끓이고 계란을 풀어 완성했다. 해외에서 양념 돼지고기를 처음 사봐서 걱정했는데 매콤한 베이컨 맛이 고기에 입혀져 스페인의 제육볶음 같아 맛있었다. 햄과 치즈도 맛있었는데, 오늘의 킥은 육개장이었다. 론다 날씨가 살짝 쌀쌀했는데, 뜨끈하고 칼칼한 육개장에 달걀을 풀어 든든하게 먹으니 몸도 속도 풀리는 느낌이었다. 육개장은 너무 맛있어 2인분만 끓였다가 앵콜 느낌으로 2인분이나 더 먹었다. 오랜만에 차에 오래 타 피곤해서 다들 요리해 먹는 것을 꺼려하다가 하게 된 건데, 모두가 맛있게 먹어줘서 행복했다. 화이트 와인도 열심히 골랐는데 적당히 달달하면서 상큼해서 맛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산책이다. 깜깜한 밤에 나가니 절벽의 바닥이 더 보이지 않아 낮보다도 아찔했다. 조명에 비친 다리도 절벽도 아름다워 쌀쌀한 날씨에도 한참을 구경했다. 그렇게 산책을 하고 마을 구경을 하다 우연히 뚜론(스페인의 디저트)을 파는 가게를 발견해 들어갔는데, 시식으로 주신 뚜론과 간식이 너무 맛있어 우리 간식과 엄마 아빠의 선물용 뚜론까지 알차게 샀다. 밤산책을 조금 더 하다가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벌써 가족여행이 2/3 지나갔는데,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쉽다. 내일은 더 후회 없이 여행해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