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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Mar 21. 2024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에게 자폐 성향이 보인다는 사실을 인지한 건 육아휴직 후 복직한 뒤 반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직무 특성상 가장 바쁘고 예민한 가을에서 겨울 그 어딘가쯤에서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한동안은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앞으로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채울 때도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보다도 나 자신을 먼저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의 문제를 앞에 두고 가장 먼저 고민한 건 회사 생활이었습니다.

이직이 아닌 단순 퇴사는 아이를 낳고 난 뒤부터 종종 생각했던 일이지만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젖먹이와 함께 하며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육아휴직 기간 내내

이렇게 예민한 아이를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고 회사를 다시 다닐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늘 함께했었지만,

이런 식으로 회사 생활을 끝내는 건 내키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우선은 맞벌이 생활과 아이의 치료를 병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 곁에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아이를 치료하기 위한 경제적인 여유가 필요했으니까요.

아이의 증상 치료를 위해 센터를 자비로 다니는 데 꽤 많은 비용이 들었고,

남편이든 저든 누구 한 사람의 외벌이로 충당하기에는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당장은 어떻게든 버틴다 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궁지에 몰릴 게 뻔했습니다.


경제적 여유만큼이나 여태까지 쌓아온 모든 성취와 위치를 포기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거나 엄청난 사명감과 로열티를 가지고 일하는 것도 아니지만

12년간 한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제 일에는 꽤나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어려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저는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욕심만큼 결과를 내지 못하면 좌절하고,

힘들더라도 미련하다시피 몰입해서 노력 끝에 보상이 주어지면 그 누구보다도 뿌듯해했습니다.

대학교 때는 학교와 학점이, 졸업 후에는 회사에서의 제 성취와 위치가

저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한순간에 저를 설명하는 모든 수식어를 잃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 곁에서 아이의 치료만을 위해 지내다 보면

나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온전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반응 없는 아이에게 벽을 보고 말하는 느낌으로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게  너무 괴로워서

일을 핑계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를 계속 다니면, 일을 핑계로 아이의 치료를 센터에만 의존하고

직접적인 신경을 덜 쓰게 되더라도 죄책감을 덜 느낄 것 같았습니다.

난 바쁘니까, 치료비를 벌어야 하니까 하는 핑계를 대면서요.


1년 넘게 회사 생활과 아이의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이제야 인정하지만 그 시간 동안 제 못난 욕심과 도망치고 싶은 비겁함이,

아이의 치료비를 마련한다는 명목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이의 치료보다 우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회사에 가족 돌봄 휴직을 신청했습니다.

퇴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잠시동안의 휴직을 시작하고 이제는 아이 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엄마가 곁에 있다는 게 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치료를 위해서는 아이에게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육아를 병행하면서 가뜩이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행여나 꼬리표로 남을까 봐 두려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이의 상태를 상사에게 말하던 날,

회사에서 처음으로 마음 놓고 울었습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되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걱정했던 대로 저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제 자신보다는 아이가 우선인 아이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세상으로 초대한 이 아이의 긴 삶이 부디 행복하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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