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어둠이 가시기 전이지만 곧 날이 밝아올 듯하다. 창문이 달린 것도 아니고 시계도 없지만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만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소에게 여물을 주려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시는 할아버지의 분주한 발걸음과 그 수고에 회답이라도 하듯 소가 내뿜는 콧김 소리 때문이다. 외양간 입구 불빛도 희미하게나마 문틈으로 스며든다. 여물 끓이는 가마솥이 걸린 사랑방에 누운 덕택에 할아버지가 한창 불을 지피고 나니 등과 엉덩이까지 후끈하다. 하지만 얇은 창호지 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바람은 아직 차다.
예상은 했지만, 엄마는 그날 저녁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도 그 이후 며칠이 지나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이니 어린아이가 인식하는 시간은 무한대로 길어질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정확히 얼마 동안 시골집에서 지냈는지 모른다. 동생도 같이 있었는지, 나 혼자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걸 기억하기에는 너무도 바쁘게 돌아가는 시골집 일상이다. 무엇보다, 내 어린 시절 아픈 기억들은 짝이 맞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뒤죽박죽 섞여, 서로 연관성 없는 일처럼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를 피하려 혹은 노름으로 생활비를 날린 아빠 대신 돈을 벌기 위해, 엄마는 어린 나를 친척집에 맡기곤 했다. 시골의 추운 새벽 공기와 함께 기억하는 그날도 그중의 하나다. 수차례 남의 집에 맡겨졌지만 시골집이라면 아빠의 폭력 때문에 온 건 아니리라. 시외버스를 타고 와서도 다시 택시나 경운기를 얻어 타고 비포장길을 한참 가야 하는 깡촌이요, 그것도 남편의 고향집에다 자식을 남겨두지는 않을 테니.
무슨 이유로 엄마가 나를 시골집에 맡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럴만한 이유는 엄마에게 충분히 있었으리라,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왜 뻔한 거짓말을 하고 갔느냐, 그 원망스러운 의문은 계속 남아 있다.
이렇게 해명해주고 가면 안 되나?
언제 온다는 기한이라도 있으면 기다리는 이의 고통은 줄어든다. 나이가 어리다고 엄마의 뻔한 거짓말을 믿어야 하나? 그날 온다고 해놓고 며칠씩 나타나지 않은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자식에게까지 손찌검하던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못 미더운 태도만으로도 엄마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내게 싹트기에 충분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는 자기 집에서도 남의 집에서도 천덕꾸러기가 된다.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도 안 하고 떠나는 어른의 무책임한 행동은 내 어린 시절에만 통하던 이야기라 짐작했다. 가정폭력과 아동 학대를 범죄로 취급하지 않던 80년대였기 때문이다.
시간은 한참 흐르고 장소는 한국에서 영국으로 옮겨졌다. 지금 고등학생 나이가 된 아들이 뱃속에 있을 무렵이다. 내게 대꾸할 틈도 안 주고 S는 이런 말을 남긴 채 휙 가버렸다. 장난감에 정신이 팔린 M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줄행랑치듯 대문을 빠져나갔다.
오랜만에 S의 연락을 받은 터다. 내 임신 소식에 축하도 해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우리 집에 놀러 와도 되냐고 물었다. 영국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도 특히 나를 살갑게 대하던 이라 그녀의 방문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S는 꼭 오겠다 하면서도 날짜와 시간을 미리 잡으려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S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마침 근처에 있는데 지금 집으로 와도 되냐고 물었다. 하필 번역 마감을 앞두고 일에 집중하던 때 오겠다니 곤란했지만, 근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승낙하고 말았다.
S는 네 살 난 아들 M을 데리고 왔다. 어린아이를 둔 엄마가 혼자서 친구를 만나러 다니는 자유분방한 세상을 꿈꾸지는 않았지만, 뭔가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이야기 나누던 S가 볼일을 보고 올 테니 M을 맡아 달라고 했다. 나는 뭐라 항의할 겨를도 없었다.
살다 보면 급하게 애를 맡겨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S가 처음부터 애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면 내가 못 도와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오랜만에 둘이 회포나 풀자 해놓고 불쑥 애를 맡기는 일은 상식 밖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교류가 전혀 없던 낯선 어른에게 아이를 맡기다니. 아이가 잘 적응하는지 살피지도 않고 도망치듯 가버린 엄마다.
어린아이를 장시간 돌본 경험이 없던 나는 갑작스레 남겨진 M을 두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엄마가 사라진 걸 잠시 뒤 알아차린 M은 곧바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곤란했다.
1. 내게는 몇 시간 이내에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
2. M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는 갑자기 사라지고 낯선 사람의 집에 혼자 남겨진 셈이다.
3. S는 휴대폰이 매번 먹통이라는 핑계로 전화를 받지 않는다.
4. S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어쩔 도리가 없던 나는 M을 안방에 내버려 두고 작업실로 쓰던 거실에서 다시 일에 몰두했다. 엄마를 찾는 M에게는 잔인하다 싶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임신했다고 모성애가 갑자기 뿜어져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만난 지 30분도 안 된 남의 집 아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할 일이 너무나 다급하다.
겨우 마감 시간에 맞춰 일을 끝낸 후 M을 방에서 데리고 나왔다. 처음에는 울먹이던 M도 안정을 되찾은 상태다. 그 무렵 S가 돌아왔다. 아들의 평온한 모습을 보더니 내가 잘 돌봐준 거라 착각한 S는 흡족해했다. 기막혀 처음에는 말도 안 나왔다. 낯선 어른에게 애를 내팽개치듯 맡겨 놓고 몇 시간 만에 돌아와서는 미안해하지도 않다니. 나는 S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일을 털어놓았다.
그제야 표정이 바뀐 S는 대놓고 화를 내지는 않지만, 애가 얼마나 무서웠겠냐며 나무라듯 말했다. 나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앞으로 S의 전화를 받을 생각도 없고, 집 앞까지 오더라도 문도 안 열어줄 작정이었다.
다행히 그 후 S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머물며 영국 여행을 다니던 K의 말이다. K의 아들은 엄마와 잠시라도 떨어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상황이다. 화장실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애가 한눈팔 때마다 몰래 자리를 비우는 K에게 꼭 그렇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앞서 나온 S도 비슷한 말을 했다.
K와 S를 보며 이제 40여 년 전의 일이 된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린 자녀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하면 안 될까?
몰래 나가버리면 아이가 모를 거라 생각하나, 그래서 영영 안 울거라 생각하나?
말도 안 하고 나가버리면 아이가 더 상처 받지 않을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Arwan Sutanto on Unsplash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