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왔느냐, 북한에서 왔느냐,라는 질문

by 정숙진

"저... 제 친구가 물어보라고 해서 그러는데요..."


사만다 (가명)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며칠 전만 해도 내 앞에서 잇몸이 다 드러날 정도로 활짝 웃고 수다를 떨 만큼 막역하게 굴던 사람이, 이날 갑자기 내 눈과 마주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 아들을 맡아주기로 한 돌보미의 집에 들렀을 때다. 이 자리에서는 그냥 '돌보미'라고 내가 부르겠지만, 영국에서는 아이를 돌보는 직업을 다양하게 구별한다. 언뜻 보면 하는 일이 비슷해 보이는데도 말이다.


사만다는 차일드마인더 (Childminder)로 자기 집에서 애를 보는 사람이다. 한국에서도 흔하게 쓰는 용어인 베이비시터 (Babysitter)와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베이비시터는 엄밀히 자기 집이 아닌 고용인의 집에서 애를 돌본다.


이 외에 고용인의 가정에 입주하여 아이를 돌보는 오페어 (Au pair)가 있는가 하면, 입주 여부와는 상관없이 아이 돌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내니 (Nanny)도 있다. 또한, 가사를 겸하는 아이돌보미도 있다.


이런 용어를 구분해 가며 이 글을 쓰는 건 주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사만다 입장을 이해해 보기 위해서다.


아이를 맡아 줄 만한 차일드마인더의 연락처를 찾아내 전화로 문의하고 직접 찾아가 상담한 후 내가 최종 결정할 수 있듯... 사만다도 내 연락을 받고 사정을 전해 듣고 또 우리 모자를 자기 집에까지 불러다 놓고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내 요청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아직 돌보미 서비스를 합의한 단계는 아니었으니.



"코리아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럼 남한인가요, 북한인가요?"


아, 그 질문이구나!


외국인은 코리아라고 하면 두 나라를 동시에 떠올린다. South Korea와 North Korea. 혹은, 남한과 북한이 한 국가였을 때 부르는 말이겠거니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북한의 특수한 정치, 외교적 배경을 모른다. 그저, 과거 발생한 어떤 중요한 사태로 인해 두 나라가 분리되었다 정도로만 인식한다. 과거 인도 제국이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분리된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South Korea와 North Korea로 말하지 않으면 한국과 북한을 구분할 방법도 없지 않은가.


이날 사만다가 조심히 물어온 이유도, 여느 영국인처럼, 북한이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잊을 만하면 미사일을 쏘거나 포격을 해대는 위험한 국가임을 인식해서 일테다. 내가 단순히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이를 전해 들은 사만다의 친구가 경고를 했으리라. '북한 출신이면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위험한 국가임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들 국가 출신이 영국의 낯선 가정집에 찾아와 아무렇지 않게 애를 맡길 정도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영국에도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북한 출신 직원이 있고 탈북자도 정착해 있기에 북한 출신을 전혀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 태국으로 여행 간다고 하면 영국 정부에서 말리겠지요?"


당시 TV 뉴스를 매일 장식하던 태국 사태를 예로 들었다. 남북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예로 적절하다 할 수는 없지만, 두 국가의 특수한 관계를 빗댈 만한 사례가 필요해서 얼떨결에 끌고 왔다.


태국에서는 탁신 총리가 실각하고 군부가 들어선 상태로, 이들을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대혼란이 야기되고 있었다. 인기 휴양지인 태국으로 여행 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지 못해 발이 묶인 영국인의 사연이 쏟아졌다.


이런 때 태국으로의 여행을 자제하라는 말이 나올 법한데, 그럼에도 방문은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내가 사만다에게 말했다. 자제령 또한 일시적으로 내려지는 조치에 해당하고 말이다. 이에 반해, 북한으로의 여행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정부에서 만류하더라도 내가 지금 태국을 방문한다면 못할 것도 없고 여정이 험난하긴 하겠지만 어떻게든 갔다가 돌아올 수는 있지 않은가. 반면, 북한은 태국처럼 일반인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요 사전 허락 없이 들어갔다가는 본국에서도 북한에서도 범법자가 된다. 다시 고국으로 멀쩡히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 생각해도 허술한 설명이지만, 북한의 특수한 고립 상태와 정치적 배경을 모르는 사람에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다.


이미, 나와 내 가족 모두 남한 출신이라는 말에 안심하게 된 사만다는 예의 함박웃음을 다시 짓는 동시에 약간은 미안해하는 표정이 되었다.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왜 북한인을 흔하게 볼 수 없는지 이해시키느라, 잠시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남의 나라 사례를 드는 등 엉성함 그 자체였건만 사만다는 내 말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내가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처럼 과장된 동작과 목소리로 그 어느 비련의 주인공이 북한에 들어갔다가 붙잡혀버린 상황을 상상하게끔 만드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지금 대학생이 된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였으니 상당히 오래전 일이다.


이처럼 남북한 관계에 대해 질문을 해오는 이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그리고 나의 역사 지식에 한계를 느끼게 되니 이 무렵 나는 다시 역사책을 집어 들었다. 학창 시절만 해도 그토록 지겨워하던 한국사를 다시 체계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의지에서다. '한국인이 그런 것도 모르냐?'라는 타박을 외국인에게서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런 체계적인 지식은 한국인으로서 내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임이 분명하지만, 배우고 익힌 대로 설명해 준다고 외국인이 흥미롭게 들어주는 건 아니었다. 직장 동료와 사회에서 만난 친구도, 또 돌보미 일 때문에 만나게 된 사만다도 나의 엉성한 설명에 더 공감했으니.


한국사를 다시 공부해야겠다 결심하기 전, 나는 Korea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내 고국에 대한 질문에 답하곤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메이드 인 코리아, 필승 코리아, 케이팝. 나는 코리아 출신이니까. 이 때문에, 영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남한과 북한을 구분해 달라는 상대의 요구에 기분이 언짢아질 정도였다.


그래도 어쩌랴. 나도 세계 각 나라의 정치, 역사적 배경을 세세히 알지 못하기에, 당사자는 뻔히 알 만한 일에 대해서도 내가 질문할 수 있듯, 그들도 한국에 대해 의문을 가질 자격이 있지 않은가.


커버 이미지: Photo by Jarritos Mexican Sod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