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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무궁전 Nov 24. 2023

클래식 음악 공연을 보며 졸았다면

졸다가 터득한 클래식 공연 보는 법

아주 오랜만에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갔다. 오케스트라 관현악단 공연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못 봤으니 적어도 3-4년은 되었을 것이다. 찾아서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도 졸음엔 취약한 편이라 아는 음악이 나오면 재밌게 보지만 조용하고 느린 음악이 나오면 곧잘 졸음에 빠지는 편이다. 오늘도 약간 졸음이 올 것 같은 기운이 들었지만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왠지 아는 곡일 것 같아 기대를 해본다.


이번 공연에서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교향곡 4번이 준비되어 있었다. 클래식 음악에는 이름이 이런 식이어서 뭐가 뭔지 기억하기 어렵지만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라… 왠지 내가 아는 그 곡일 것 같았다. 들으면 누구나 다 알 법한 그 곡이 맞다. 첫 등장에 빰빰빰빰~~! 하는 관악기 소리에 이어 강력한 피아노의 선율이 쫭! 쫭! 쫭! 화음을 내리꽂는 그 음악. 긴가민가 했는데 아는 곡이 나와 신났다. 하지만 첫 부분 아는 부분이 나오고 뒤로 가면서는 처음 듣는 구절에 점점 졸음이 왔다. 졸음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졸다 깨다 보다가 1부가 지나갔다. 2부는 졸지 않으리.


피아노 협주곡 1번의 뒷부분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약간 느리고 서정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2부 교향곡 4번은 조금 달랐다. 1부 때 졸면서 피로가 풀렸던 걸까 두 번째 곡이 조금 빠른 편이라 졸리지 않았던 걸까 아무튼 두 번째 곡은 너무 재미있게 봤다. 지금까지 클래식 공연을 1부처럼 멍하니 보다 졸다 했다면 이번 공연을 보면서 클래식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1. 드라마 보듯이 보기

내가 터득한 클래식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는 첫 번째 방법은 드라마를 보듯이 보는 것이다.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드라마인데, 한국의 베토벤 바이러스와 일본 만화 원작의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이 두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는 공연 장면이 정말 극적이고 멋있게 나오는데, 이번 공연을 보면서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공연을 보았다.


이 방법은 각 연주자들이 드라마의 출연 배우처럼 보는 것이다. 현악기, 바이올린과 첼로 등은 꽤 많은 구성으로 이루어지는데 관악기들은 적은 대수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듣다 보면 현악기들이 배경을 깔아주고 관악기, 플룻이나 클라리넷 등이 음을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서로 대사를 이어가는 것이다. 가끔 씬이 바뀌어 타악기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금관악기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있다. 피아노 협주곡같이 대놓고 주인공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피아노가 묻어갈 때도 있고 이런 교향곡일 경우에는 지금 주인공이 누구인지 소리를 내는 악기를 쫓아 눈을 따라가다 보면 졸음이 올 새 없이 공연에 집중하게 된다.


2. 드라마 감독이 되어 보기

첫 번째 방법이 익숙해지면 두 번째는 이제 내가 감독이 되어 컷을 담고 편집하듯이 보는 것이다. 주인공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사를 쫓아가다가 점점 고조되어 이제는 이곳저곳에서 사건이 벌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감독이 되어 지금 이 사건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촬영하고 편집하듯이 보는 것이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공연 장면처럼, 지휘자의 신호에 맞춰 빰~~ 하며 팀파니 연주자의 손동작으로 컷, 바이올린들의 현란한 스윙, 플루트의 화려한 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에 줌인으로 들어갈지 지휘자와 팀파니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줄지 뮤직뱅크 감독님처럼 현장에서 즉석 편집을 하며 본다. 앞다투어 터지는 사건들로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으로 몰입하게 된다.


3. 지휘자가 되어 보기

두 번째 방법에서 감독이 되어 지휘자도 하나의 배우로 보았다면 이번에는 내가 직접 배우가 되어 드라마에 출연해 보는 것이다. 지휘자가 되어 지금 흐르고 있는 음악에 맞춰 손으로 춤을 춰본다. 공연을 보며 손춤을 출 수 없으니 나의 손춤을 눈으로 보내 지휘자의 손에 붙인다. 지휘자의 손에 나의 내적 댄스가 전송된다. 힙합 듀오의 댄스처럼 한 명이 춤을 추다 옆 사람에게 제스처를 보내면 한 명이 이어서 춤을 추듯 지휘자가 금관 쪽에 제스처를 탁 보내면 금관들이 춤을 춘다. 바이올린들은 관객의 호응처럼 지휘자의 선동에 맞춰 박수를 친다. 통! 통! 통! 통! 바이올린 줄을 손으로 튕길 때는 지휘자도 통통거린다. 춤을 추다 보니 숨이 가빠질 지경이다.


4. 잠시 몰입에서 벗어나보기

공연을 즐길 만큼 즐겼다면 이번에는 잠시 벗어나보는 타임이다. 지금 연기하고 있는 역할이 아닌 배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금 이 무대에서 하나의 음을 내기까지 얼마나 긴 발걸음을 걸어왔을지 상상해 본다.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어떨까. 나는 타악기를 좋아하는데 오늘 곡에 팀파니가 많이 나와서 좋았다. 팀파니의 소리는 아주 강력하고 존재감이 있다. 그래서 한번 칠 때 타이밍이 아주 중요한데 만약 내가 팀파티를 친다면 정말 현기증이 날 것만 같다. 연주 내내 치진 않지만 내가 들어가야 할 타이밍을 기다리는 게 정말 긴장되고 엄청난 집중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바이올린이나 현악기는 여럿이 있어서 조금 틀려도 묻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대밖에 없으면서 존재감이 강력한 타악기는 더 어려울 것 같다. 팀파니 연주자의 집중력을 살펴보다 옆에서 계속 가만히 앉아있는 연주자가 눈에 띈다. 엄청난 감초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 혹은 엄청난 복선임을 감지한다.


5. 클라이맥스 즐기기

이제 공연은 끝에 다다랐다. 지금까지 해본 방법들을 총동원해서 공연을 즐긴다. 4악장까지 내내 가만히 있던 감초 혹은 복선은 심벌즈와 트라이앵글이었다. 30분가량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존재감을 뿜어냈지만 그들이 화면 앞으로 나서자 존재감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지금 이 순간 마지막을 위해 지금껏 숨어있던 것이다. 전쟁영화의 폭탄씬, 멜로영화의 격정적인 이별, 액션영화의 추격신을 보는 것처럼 화려한 촬영과 특수효과, 컷편집을 총동원하여 공연을 즐긴다. 그리곤 곧 막이 내린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악장 사이사이엔 박수를 치지 않아 30-40분가량의 긴 곡의 끝에서야 박수를 친다.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볼 때처럼 배우 한 명 한 명이 앞으로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친다. 길게 이어진 곡만큼이나 긴 피날레 시간을 갖는다. 어느 때보다 재밌게 클래식 공연을 보았기에 나도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번 공연으로 클래식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였다. 정말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완전히 몰입하여 흥미진진한 사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졸면서 봤던 경험이 쌓였던 걸 수도, 오늘 선곡이 나와 잘 맞았던 걸 수도 있다. 이번에 터득한 방법으로 다음 공연도 또 보고 싶어 진다. 클래식 음악이 어려운 분들에게 나의 방법이 도움이 되어 좋은 시간 졸지 않고 재미있게 잘 보시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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