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서가 Dec 17. 2021

진짜 내 이야기가 정답이었는지도...

난 책을 쓰고 싶었다. 10년 가까이 남이 쓰라는 글만 주야장천 쓰는 것이 지겨워서, 이제는 나도 내 이야기를 펼쳐 보일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이름 뒤에 숨어 살다 보니까, 정작 난 내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매월 소액의 원고료가 들어왔지만, 그만큼 내 속은 텅텅 비는 듯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스스로 '작가'라 칭할 수도 없는 그 애매함 때문에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마흔. 내 삶에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날 줄 알았건만 난 여전히 육아가 우선인 전업 주부이다. 내 일과 욕심 앞에, '육아'는 나를 가장 먼저 무너뜨리는 거대한 존재이다.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무단히도 애를 썼지만, 코로나19라는 복병 앞에서 난 처참히 무너져 버렸다. 조금만 그 파도가 거세지만, 내 품 안에 아이들을 감싸기에 급급했으니까.


내 삶에 1순위가 '아이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사실을 격하게 부정하고 싶었다. 엄마만 하기 싫은, 그 어떠한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자기 계발'에 흠뻑 빠져서 한 해를 보냈다. 새벽 기상, 영어 원서 읽기, 독서 모임 등 무엇이든 내가 '짬'을 낼 수 있는 시간들을 이용해, 빈 틈을 채워갔다. 그 사이에 프리랜서 일도 틈틈이 해왔고, 책장이 넘치도록 책으로 꽉꽉 하루를 쏟아부었다. 


그토록 나를 단련시켰던 이유는,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이뤄줄 만한 '내 주제'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직장생활을 10년 했으면 그 분야에 전문가 근처는 갔을 것이고, 취미생활도 10년을 했다면 꽤 실력 있는 아마추어는 되었을 것인데.... 육아는 10년 가까이 애정을 쏟아도 '결과'라는 것이 없으니까. 그래서, 나에게 육아를 뺀 나머지로 이야기를 채우고 싶었다. 물론, 욕심이었겠지. 안 써본 글 빼고는 다 써봤다는 그런 자만함 때문에 내 이야기도 술술 풀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주제'를 찾기 위해서 머리를 감싸고, 쥐어뜯고, 가슴을 내리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왜,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눈에 훤히 보이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난 무엇을 쓸 수 있을까?라는 커다란 물음표 앞에 무릎을 여러 번 꿇었다. 그렇게 두 해 남짓 방황하다 보니까, 안개처럼 뿌옇기만 하던 내 삶에도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반짝이는 것들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반짝임들을 표지 삼으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출간 기획서라는 것을 써보겠다고 덤볐다.


기획서만 잘 써도 책 한 권이 나온다는데... 귀동냥 삼아 얻은 정보들을 쑤셔 넣었고. 주변에서 나에게 조언과 칭찬했던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 지도대로라면, 나는 책 한 권쯤은 뚝딱! 하고 쓸 수 있을 것이라 기세 등등하게 덤볐다. 난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투고의 세계에 발을 내밀었다. 쓸데없는 자신감. 섣부른 판단이 가져온 결과는 참담했다. 무응답과 거절 메일들이 연달아 도착했고, 마음이 아팠다.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쉽게 가는 그 길이, 나에게도 쉽게 열리지 않을까 하는 '도둑놈 심보'도 있었고. 


더욱이 올해가 가기 전에, 어떤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도 컸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빌리고 싶었나 보다. 첫 번째 기획은 '인터뷰집'이었고, 두 번째 기획은 '책 에세이'라는 소재를 이용했었다.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멋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그리고, 팟캐스트에 올린 내용을 글로도 남기고 싶어서 책으로 엮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두 달 정도 마음앓이를 하면서 느낀 것은, 아직 그 카드를 꺼낼 시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제 막 싹이 트기 시작한 소재 씨앗들로, 한 권의 잘 익은 나무 열매를 맺길 바랐구나.'

'내가 부족하니까, 내 것을 꺼내기 귀찮으니까. 남의 이야기를 가지고 오고 싶었구나.'


타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려면, 우선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했다. 내 손에 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것이 펜인지 돌인지도 구분을 못하면서 '쉽게 썰'을 풀려고 했다는.. 그런 반성이 들었다. 


내가 비어있다고 느낄 때, 타인의 이야기가 더 쉽게 들어오는 법이라는 걸 실감했다. 평생 남의 이야기만 써온 것도 모자라서, 그걸로 내 책을 쓰려고 했던. 그 얕은 수는 쓰지 말자 다짐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내가 '주제'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던 것은 바로,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는지. 내 글이 비록, 사담에 가까울지라도, 그저 일기 같다고 스스로 느낄지라도. 그것인 진실이고, 진심이라면. 그 어떤 이야기에도 공감해 주는 이가 있지 않을까.


겉멋은 빼고. 남의 이야기 빼고.

나의 글을 쓰자. 아마도 뼛속 깊숙하게 자리한 '엄마'로서의 나를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뻔한 이야기가 어쩌면 가장 공감을 주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우리 인생이 뻔한 것 같지만, 그 하루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음을 잘 알고 있으니까.

오늘도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글을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기 싫어병'을 벗어나고 싶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