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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Mar 05. 2023

직장인으로 스며드는 중


다시 직장 생활 5개월 차, 그렇게 두려워하던 아이들 겨울방학이 끝났다. 그리고 둘째는 내일 초등학교 1학년이 된다. 첫째를 처음 학교에 보낼 때와는 달리, 마음이 비교적 평온하다. 한번 겪어서 그런가.


직장 생활은 오래간만에 다시 시작하는 설렘은 잠시였고, 매일이 걱정이었다. 첫 달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내 자리에 전화벨이 울릴까 봐 무서웠다. 뭐라고 받아야 하지...?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어쩌지? 모두 일상을 살고 있는데, 나만 외계인 같다고 할까. 마지막 직장 생활, 서툴렀던 내 모습에서 현재로 갑자기 점프해온 것 같은 착각도 일었다.


© lucabravo, 출처 Unsplash


인수인계가 따로 없는 직장이라, 혼자 업무를 터득해야 했다. 주변에 어디까지 물어보고, 어디까지 아는 척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전임자가 남겨둔 파일들을 뒤적이면서 '다 알아버리겠어!' 마음먹었지만, 졸음이 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반듯한 자세를 유지해 보려 하지만 점심시간은 참으로 멀기만 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타 부서에서 전화가 하나, 둘씩 걸려왔다. 내 이름을 말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색한 건지. 버버벅... 어리숙함을 보여주기 싫었는데. 혀가 돌돌 말려 목구멍을 막아버린 기분이었다.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말일 때에는 다시 연락드리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내 몸통 전체가 멍텅구리 같았다. 사회 초년생도 아닌데, 오랜 공백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다만, 경력 보유자의 장점은 조금 더 빨리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한 번쯤은 해본 일이었고,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하는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어떤 하루는 예상 밖 적응력에 놀라서 자만했고, 어떤 하루는 이것밖에 안되는 내 모습을 탓하며 좌절했다. 오르락내리락 기분도 너울졌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조직도 바뀌고, 나도 차츰 변해갔다. 일을 하고 있지만, 정신은 다른 곳을 쫓고 있었다. 성취욕을 가장한 욕심 같은 것이었다. 인정 욕구를 넘어선 쟁취 욕구가 커지기 시작했고, 매일 심장이 요동쳤다. 쉽게 화가 났고, 쉽게 절망했다. 왜 이것도 모르는지, 왜 이렇게밖에 생각을 못 하는지.... 내 탓을 넘어서 남 탓을 하고 있었다. 내 입은 가벼워졌고, 생각은 부정적으로 쏠리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자꾸 남을 비난하게 되는 걸까? 그래야 내가 우월하다고 느껴서일까?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탓을 하는 것이 과연 내가 우월함을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걸까? 오히려 열등감을 온 정성을 다해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앞에서는 친절하고 누구라도 품어줄 듯 대하다가, 뒤에서는 온갖 험담과 비아냥을 일삼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그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종종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은, 입사 동기(?)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촌철살인을 날리곤 한다.


"저는 oo 때문에 힘들어요. 일을 잘 하고 싶은데...!@WETWR#W%$@#$%"하고 사소한 환경 탓을 하면,


"나는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요. 뒤늦게 들어온 제가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그냥 그 사람들의 삶을 인정해 줘요. 너그럽게 봐줘요. 내가 쫓아가려고 애쓰지 말고, 그 사람들이 나를 찾게끔 하면 되지 않을까요?"


인생에 더 큰 그림을 그리고, 멀리 보라는 말이 이런 거였나. 일희일비하면서, 작은 것을 두고 분개했던 내가 더 작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런저런 회의에 쫓아다니면서 귀동냥할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만들어야 한다. 내 입에서, 내 머리에서 나온 것들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도록.


언젠가. 회사 선배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 관계에는 포지셔닝이 중요해."


내가 굳이 숙이려 들지 말고, 굽히려 하지 말고. 내 것을 내가 천천히 키워가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불안하고, 불투명하고,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 가장 빠르게 안정감을 얻는 방법은 '읽고, 쓰고, 말하는 것'. 지난 40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터득한 나만의 방법이다.


그냥, 글을 다시 쓰겠습니다.라는 다짐을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어리석음을 되새기며, 다짐을 견고히 하기 위함이다.



쓰지 않으니, 녹이 슬고.

녹이 슬고 나니, 쓸 수가 없다.

나는 부족하더라도 매일 읽고, 쓰려고 한다.


읽고 나면, 다시 말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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