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이 부러웠던 학창 시절 이야기
나의 학창 시절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날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특히 고등학교와 재수 생활은 좌절된 목표들로 얼룩져 있다.
당시 다녔던 재수 학원에는 재수 생활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원하는 대학에 가려면 유속보다 빠르게 노를 저어야 하고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저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의 노 젓기는 대체로 유속보다 느렸다. 나는 최선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강의 상부로 앞질러 나가는 친구들의 등이 보였다.
열심히 할수록 등수는 더 떨어졌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성적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이 어느새 당연한 사실이 되었다.
기이한 점은 아무리 실력 좋은 과외 선생님도 내 성적을 올려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두 손을 모아 떨어지는 물을 받으면 시간이 지나 손가락 사이로 모두 새어 나가듯이, 당시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유명하고 노련한 선생님들의 노력은 그렇게 무색해졌다.
반전이지만 나는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이 좋았다. 혼자서 공부해도 성적이 잘만 나왔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가서도 당연히 그럴 줄로 알았다.
일종의 이별이다. 나의 십 대 후반기는 있다가 없어지는 쪽이 원래 없는 것보다 괴롭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잃어버린 우등생의 자리를 잊기 위해서 나는 가상의 세계로 피신했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책들을 읽고 미드를 봤다. 주말이 되면 중독된 것처럼 활자를 읽어 치우고 영상으로 뇌를 채웠다.
불안과 초조가 섞인 마비 상태. 교실에 앉아 이해가 되지 않는 수식을 볼 때 후회는 세 박자쯤 늦게 찾아왔고, 그때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나를 다독였지만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매 주가 비슷비슷했다.
고3이던 주말에는 수학 과외를 받으려고 선생님 댁으로 직접 찾아갔었다. 수업 시작 전에 아파트 내부의 계단에 앉아서 허겁지겁 읽어 치운 책이 있는데, 바로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다.
고요한 계단 옆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종이가 노란 듯 하얗게 빛나던 것, 검은 글자와 여백에 주의를 빼앗겼던 순간을 기억한다. 모자라는 시간을 속수무책으로 낭비하고 있다는 감각과 함께 달큰한 체념과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책 속 성균관 유생들과 나는 전혀 다르게 살고 있었다. 내가 간절히 원하지만 해내지 못하는 그것을 그들은 할 수가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주인공 유생들은 대쪽 같은 성실함과 뛰어난 머리, 그 모든 것을 받쳐 주는 체력으로 마주한 문제 상황을 해결해 나갔다.
하루는 역사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나를 호출하셨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한 인물에 대한 내 생각을 반 전체 앞에서 전개해 보라는 주문을 하셨다.
교실 앞으로 나가는 과정부터가 문제가 많았다. 앞자리 학우가 바닥에 살포시 놓아둔 텀블러를 실수로 발로 차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가서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횡설수설 후의 정적만 기억난다.
내가 얼굴이 뜨거워져서 자리로 돌아가 앉자 선생님이 입을 떼셨다.
원두막이 써서 제출한 역사 과제를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에 말할 기회를 주고 싶었는데 오늘은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고. 그런데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은 앞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 글이란 무슨 글이었을까. 선생님께서 도대체 어떤 가능성을 보셨기에 발언 기회를 주셨던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옛날 파일 더미들을 열어보았다. 놀랍게도 역사 과제 원본이 남아 있었다!
과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인물 하나를 골라 보고서를 쓰는 것이었고 나는 이승만을 선택했다. 김일성에 대해 쓸 수도 있었지만 이승만을 골랐다. 왜 그를 선택했는지 당시 글의 요지를 다시 써보자면 이렇다.
남과 북의 정치적 입장이 정반대로 갈리기 때문에 남한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김일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그에 대해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란 남한의 입장에서 쓰인 것들 뿐이다. 그에 대한 북쪽의 정보는 더욱 신뢰할 수 없다. 그를 찬양하는 내용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승만을 보고서 인물로 선택한다면 나는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뿐 아니라 부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을 만한 사실들에 접근할 수 있다. 남한 학생들이 권력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실은 교과서를 볼 수 있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 덕분이다.
이후로는 공권력을 이용한 선거 개입, 경향신문 강제 폐간 등을 들어 이승만이 민주주의 국가의 리더로서 부적합했음을 주장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선생님께서 과제의 어떤 부분을 결정적으로 좋게 봐주셨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나로서는 과거의 내가 정보의 편향성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 특별하게 와닿는다. 내가 어느 편에 속한 사람인지에 따라 특정 인물에 대하여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다르며, 그 정보에는 정보 작성자의 의견이 일부 이미 개입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떤 말은 오래도록 남는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많은 말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정말 중요한 말은 긴 시간이 지나 대부분이 잊히고도 내게 남아서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래서 선생님의 말씀처럼 나는 세상을 바꿨나? 아니다. 나는 세상을 바꾸지 못했지만 나를 바꿨다. 비록 아주 미세한 변화일지라도 내가 나를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나에게 세상이 바뀌었다.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