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곰 Feb 21. 2022

성급한마음과 콜리플라워

콜리플라워도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전날 내가 시킨 그릇 한가운데 내 얼굴만 한 콜리플라워와 가지 소스가 뎅그러니 나온 요리를 본 당황스러움이 생각났다. 나는 콜리플라워를 좋아하니 괜찮았지만 메인 요리로 잘 구워져서 나온 콜리플라워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면서 익숙했다. 내 얼굴 만한 콜리플라워를 조각조각 내듯 내 머릿속으로 친구의 말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콜리플라워는 머리 부분만 잘게 잘리면 먹기가 어렵다. 나는 젓가락질이 서툴고 포크로는 잘게 잘린 부분을 집기 어려우니 포크와 숟가락으로 열심히 그러모아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심지가 딱딱하고 굵어서 모든 조각을 머리와 심지가 잘 붙어있도록 썰기 어렵다. 굵고 얇고 잘고 이 말 저 말 친구가 말한 첫째 둘째 셋째 중에 나로 인해 일어난 감정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한다. 

이번 주 선생님의 과제 중 하나는 내 감정표현을 잘 하고 남의 감정의 공을 쥐고 있지 않기였다. 집에서 일하고 사실 사람 만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 요즘 감정표현을 할 일이 없을까 봐 상담도 3일 늦게 잡았다. 다행인지 친구가 나에게 서운한 점을 말할 일이 생겼고, 나는 속으로 선생님의 말을 곱씹었다. 하나는 남의 감정은 내가 책임 질 필요가 없다 둘은 나는 여기까지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경계를 잘 긋는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은 어떤지 모르고 누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타인에 민감한 나는 남의 마음을 읽어서 부응하려고 했다. 우스운 건 그런 부분에서 서로가 서운하고 불편한 지점들이 자꾸만 생겨났다. 마치 머리만 잘못 잘려 우스스 부서진 콜리플라워 같다. 



콜리플라워가 다 썰린 그릇을 보면서 뭘 먼저 집을지 생각한다. 조각낸 콜리플라워를 나는 소스 없이 꼭꼭 씹어먹기도 소스에 푹 담갔다가 소스 맛으로 먹기도 한다. 맛은 변해도 콜리플라워의 식감은 변함이 없다. 친구에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이런 게 옳다고 믿는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해왔어.라고 대답한다. 이번에는 절대 모든 걸 내 잘못으로 돌리지 말아야지, 절대 친구가 마음 편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지 말아야지. 대화가 끝나고 속이 시원했다. 이런 종류의 대화는 주로 억울한 기분과 내가 또 잘못을 했다는 후회와 자책으로 마무리되었었다. 분명 속이 시원했는데 얼마 안 돼서 마음이 영 불안했다. 스스로도 나 정말 그런 사람 맞나? 나 스스로가 이렇게 나를 생각하나? 내가 잘 한걸 까? 내가 오히려 더 실수를 한건 아닐까? 친구의 말대로 내가 융통성 없이 내 신념을 고집한 건 아닐까? 나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다시 흐물거리기 시작한다. 너무 익어서 내가 좋아하는 식감은 찾아볼 수 없는 콜리플라워처럼.


 











엄지와 검지로 만든 동그라미 크기로 자른 콜리플라워를 남편은 오십 번 이상을 씹고 넘긴다. 나는 여섯 번이면 이미 다음 조각을 입에 넣고 있다. 아 천천히 씹어먹어야지 나도 맛을 음미하겠어. 생각하다가 다음 젓가락질을 할 때 또 잊는다. 우적우적 먹다가 스스로가 게걸스럽게 느껴지면 소름이 끼친다. 소화기관은 남편보다 내가 훨씬 느려서 나는 사과식초도 챙겨 먹고 페퍼민트가 과민한 나의 장에게 좋다 하여 챙겨 먹는다. 소화가 안되는데 자꾸 음식을 밀어 넣으니 명치에서 차곡차곡 쌓인 음식이 머물러 열이 나곤 한다. 친구와 대화를 하고 나는 우리의 관계 모양에 큰 변화가 생길 줄 알았다. 선생님! 제가 이렇게 잘 말했는데 왜 저는 여전히 그 친구도 다른 친구들도 눈치를 보고 있는 걸까요? 왜 저는 여전히 인간관계들이 벅찬 건가요? 선생님은 웃으면서 백번 중에 한번 다르게 해 본 건데 천천히 가자고 했다. 앞으로도 이런 순간들이 올 때 내 마음을 잘 관찰하다 보면 감정을 더 잘 돌려주고 건강하게 사람들과 만나게 될 거라고 했다. 콜리플라워가 맛은 없어도 몸에 건강해요 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나는 다행히 콜리플라워로 두 끼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여섯 번 씹어서 체하지 말고 오래오래 뒤에 달큼한 맛이 올라올 때까지 천천히 씹어 넘겨 봐야 하나 보다. 하, 처음부터 내가 선 잘 긋는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 까 다시 자책 버튼을 누르려다 다시 콜리플라워만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