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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Feb 17. 2022

강아지가 소파를 좋아한 이유

우리를 더 잘 보고 싶어서  

우리 집에 온 강아지는 하루 이틀은 나랑 꼭 붙어있으려고 하다가 우리가 제일 잘 보이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소파를 북북북북 긁더니 마치 자기 둥지를 만든 마냥 푹 앉아서 눈으로 우리를 보고 귀로도 우리를 따라다녔다. 이미 소파는 강아지 털과 미처 밖에서 털고 오지 못한 흙이 묻은 발바닥으로 까매졌는데 뒤늦게 플리스 이불을 깔았다. 거기 앉아서 나도 보고 잠 도자고 갑자기 멍멍 짖던 강아지는 2주 반을 지내고 쉘터로 돌아갔다. 부드러운 플리스 이불을 깔아놓은 소파 위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두 발로 강아지가 매일 누워서 날 보던 이불에 발을 감고 강아지의 사진을 한참 봤다. 


강아지는 그날 저녁도 엄청 짖었다. 내가 이름을 부르고 간식과 장난감으로 시선을 끌어도 짖는데 굉장히 집중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강아지를 임시 보호하고 있다고 하자 얼른 돌려보내라고 했다. 내가 지금 이 힘듦을 감당하면 사랑이 올 거야, 나도 힘들어 죽겠지만 맛있는 건 네가 먹어, 이렇게 생각하는 게 나랑 비슷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손 놓고 보고 있던 게 절대 아닌데 결국에 화목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선생님은 내가 이미 돌보는데 힘들어하고 있고, 힘들지만 좀 지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정드는 것도 모르고 버티고 있다고 했다. 왜 그 말이 그리도 눈물이 나던지. 선생님의 말대로 당장 그날 보낼까 했다. 


강아지를 돌보는 건 힘들었다. 강아지는 나보다 항상 일찍 일어나서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산책을 시켜주러 나갔다.  강아지는 산책하다가 다른 강아지를 보면 조그만 몸이 튕겨나가게 짖었다. 1인 1개 생활을 하는 우리 동네 사람들 덕분에 코너를 돌면 강아지를 만나고 길을 건너면 어디선가 사람과 강아지가 튀어나왔다. 아침 산책을 하려고 대문을 열고 나오면서 만난 강아지를 보고 짖느라 동네 아침 알람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결국 산책 횟수는 하루에 두 번으로 줄었다. 


우리의 하루에 강아지라는 한 가지 구성요소가 추가되었을 뿐인데 나도 남편도 강아지와 보내는 시간들이 쉽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아니라 남을 위해 밥을 챙기고 산책을 시켜주는 일을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해볼까라는 마음을 일으킨 건 강아지 스스로의 귀여움이 해낸 일이다.  잘 때도 꼭 붙어 자고 싶어 하고 집에서 일하는 우리를 하루 종일 구경하고 짖고 본인의 존재를 회사 사람들에게도 스스로 알렸다. 그러다 의자 옆에 와서 두 발을 의자에 대고 동동거리며 자신을 안아달라고 졸랐다. 강아지도 독립심을 키워줘야 하니 너무 많이 안아주지 말라고 해서 모른 척 모니터만 봤다. 스스로 이렇게 강아지의 기대를 이랬다 저랬다 흔들어 놔도 되나 강아지도 헷갈리는 거 아닐까 걱정했다. 그동안 강아지는 토 도도도 2층에 올라가서 한참을 카펫에 멍청한 표정으로 몸을 굴렸다. 내가 화장실을 가도 문 앞에서 낑낑대고 2층에 올라가면 나보다 빠른 속도로 내 옆에 와 찰싹 붙었다. 마치 본인의 세상에 우리가 없으면 안 된다며 우리가 잠깐만 혼자 두고 나가면 짖고 울었다.  


유튜브가 강아지 동영상으로 가득 찰 때까지 강아지와 잘 지내고 사는 법을 열심히 봤다. 강아지도 자신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다고 해서 상자로 열심히 집도 만들고 간식도 넣어줬다. 잠도 자기 집에서 자라고 쿠션도 넣어줬다. 집은 2주 동안 두 번 들어가고 내내 밖에서 살았다. 다른 동영상에서 분리불안 이 있는 강아지에게 주인이 집이라고 했다. 집이 자꾸 움직이고 집이 자꾸 안 보이고 혼자 나가버리니까 집이 없는 강아지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거다. 우리 서로 안지 고작 3일도 안됐는데 그럼 이 강아지는 나를 집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와 다른 신뢰 체계로 움직이는 강아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우리가 뚝딱거리며 집의 형태로 만들어준 집은 강아지 눈에는 집이 아니고 이렇게 흐물거리는 내가 집이구나. 남에게 상처받고 버림받는 게 무서운 나는 눈치를 보느라 조심스러운데 강아지는 나는 네가 좋아! 같이 나가서 신나! 너랑 붙어있을래! 나를 두고 어디가! 라고 온몸을 다해 표현했다.  그 의도를 추측하고 곁눈질할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연약하게 솔직하게 나만 바라보는 집중력이라니.








자기를 쓰다듬어 주는 게 내 손이란 걸 깨달은 강아지는 자꾸만 자신의 동그랗고 조그만 머리를 내 손에 들이밀었다. 소파에 습관처럼 털썩 앉으면 기지개를 켜는  다리를 쭉 늘려 옆에 살금살금 기어와 내 팔을 핥다가 엉덩이를 콕 붙이고 잠이 들었다. 털이 복슬복슬 꼬불거리는 강아지가 좋다고 민둥민둥한 이 까만 강아지는 키울 일이 없을 거라던 나는 닿는 온기만큼 정이 들었다. 선생님의 걱정처럼 어느 날은 힘들어서 회사일을 할 때 내 기분이 태도가 되기도 했다. 한 시간을 우리를 찾아 울고 짖는 분리불안의 이유가 내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납득시키려 노력했다. 임시보호 지만 다시 돌려보내는게 강아지가 더 힘든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과 서툴고 뭘 더 잘몰라서 빨리 돌려보내고 더 능숙한 사람과 지내는게 나은건 아닐까,  내 힘든 하루를 저울질 했다. 강아지는 선생님이 어서 보내라고 하고도 일주일을 더 있다가 갔다. 강아지는 이제 어느 가족과 만나 그 집 어디에 앉아 있을까? 강아지가 있을 때 강아지 한 마리만큼 우리는 더 웃었다. 강아지를 보내고 처음 먹는 저녁시간에 2주 반 만에 처음으로 그래도 오랜만에 우리가 강아지가 아닌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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