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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Nov 13. 2021

어느 날에는 집에 가고 싶다.

다들 모든 게 귀찮은 날이 있잖아요 


얼마 전에는 제주도로 남자 친구와 미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살아보러 간다는 친구 커플을 만났다. 

" 제주도에 가면 일단 도자기 스튜디오들도 가보고, 공방도 만들 장소도 알아보고 우리 둘 다 디자이너니까 디자인 컨설팅도 해볼까 해 "

그들의 계획을 듣고 있는데 내가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로 돌아간다면, 감귤농장에서 일을 해야 하나? 취업을 해야 하나? 뭘 해 먹고살지? 뭘 해서 돈을 벌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선택지가 나에게는 두 개 이상 떠오른 적이 없다. 가서 엄마랑 할머니랑 가까이 살고 싶어도 돈을 벌 궁리가 없는데 무얼 하며 거기서 살까?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날 가로막는다. 


한국 가서 회사를 사실 다니기 싫다. 솔직한 마음은 그렇다. 친구들은 항상 힘든 소리를 한다. 우리는 서로 힘든데 한국 간다고 힘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니 굳이이고 지고 가서 비슷한 힘듬을 겪어야 하나 싶다. 프리랜서로 살아보고 싶다가도 내가 무슨 재주로 프리랜서를 하나 싶다. 내가 하는 일은 다 컴퓨터로 하는데 언제든 날 대체할 인력이 있다는 생각이다. 누가 날 찾을까? 가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매우 좋다가도 나는 관심이 없다. 주변에서 나와 비슷한 직종의 사람들은 어미새처럼 나에게 뉴스와 배워야 할 스킬들을 물어다 알려준다. 나는 아, 배워야 하는구나 알아야 하는구나 하며 받아먹고 자라다가 요즘은 멈춰있다. 드러누워 나는 모르겠소 하고 있다. 

 

가끔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고, 사진을 잘 찍고 싶다. 그래서 수업을 듣지만 수업을 들을 뿐 수업 밖의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럼 제자리다. 사진을 잘 찍고 싶지만 셔터를 누를 뿐 발전에 대한 고민은 없다. 내가 그린 그림과 찍은 사진으로 달력도 만들고 일기도 쓰고 소품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고민한다.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걸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볼까 싶은 건 아닐까? 남의 재주를 그저 앉아서 탐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거 만들어서 뭘 하고 싶은 건데? 제동이 걸린다. 


이 마음들은 아침 여덟 시에 눈뜨면 소곤소곤 대기 시작하다가 다섯 시쯤 퇴근할 때 큰 바위가 된다. 큰 바위는 퇴근 후에도 나를 짓누르다가 나는 소파에 누워 우울해한다. 그럼 일 뿐 아니라 내 미래도 사람도 다 무겁다. 무거워서 다 사라졌음 싶다. 음 그리고 나를 덮고 있는 이 살덩이들도 너무나 버겁게 느껴진다. 석 달 전에 나는 여덟 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싹 비운 머리로 일을 시작하고 저녁을 고민하고 저녁을 먹고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 baby step! 천릿길도 한 걸 음부터 라며 조그만 오늘이 모여 큰 내일이 될 거라던 나는 지금은 다 사라졌다. 발레는 꼬박꼬박 챙겨서 간다. 발레를 가서 꼬박꼬박 동작을 익히고 음악에 박자를 세며 다리를 폈다 허리를 폈다 팔을 폈다 접는다. 


어느 날에는 집에 가고 싶다. 제주도에 가서 엄마와 할머니와 아옹다옹 사는 삶이 나중에 제일 후회가 없지 않을까? 잔잔하게 고민이 줄어들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 셋이 같이 보낼 시간이 얼마나 될까? 따로 나와 사는 시간들이 의미가 있나? 


어느 날에는 지금이 제일 좋다.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천장 높은 집에서 같이 차곡차곡 하루를 살아가는 삶. 


어느 날에는 다 그만두고 싶다. 다 그만두고 아무것도 안 하는 숨만 쉬는 상태. 날 아는 사람도 모두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고. 


바쁜 남자 친구에게 나 일 그만둘까? 하고 넌지시 던졌더니 나도 그만둘까? 한다. 아니지 아니지 정답은 그래 그만둬 지. 너도 그만두면 어떻게 해! 하여튼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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