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써지지 않을 때 편지를 씁니다.
언니 내가 계속 물어보고 싶은 데 고민하는 게 있어.
내가 언니에게 상담받는 이야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안 나. 사람이 힘들어서 상담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선생님이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야 될 것 같대. 내가 그 말을 첨 들었을 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선생님이 뭘 알아요? 내 우울은 그저 잠깐 지나가는 거라고요. 인터뷰도 떨어지고 회사도 힘들고 뭐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어서 잠깐 이번 주만 그런 거예요'
라고 생각했어. 남편을 붙잡고 선생님이 우울증인 것 같대 엉엉 울고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 아직도 병원은 가지 않았어.
여전히 나는 사는 곳에 살고 회사 사람들에게 정 붙일 일도 없고 친구들도 그대로야. 어쩌면 그래서 그런 걸까? 내가 원하는 변화가 뭔지 사실 난 몰라. 뉴욕에 가면 좀 더 신나지 않을까? 좋아하던 거리를 걷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런 일상이 그리운데, 여기는 없잖아.
내가 시카고에 살 때 굉장히 우울했던 거 기억나지. 첫 방학에 한국에 들어가서는 언니 잡고 엉엉 울었잖아. 짐 싸고 돌아오겠다고. 그 후로 8년이 지났다 언니. 근데 내가 살짝 무서운 게 있어. 내가 그때 립스틱을 엄청 샀던 거 기억나? 나 요 두 달 동안 또 그때처럼 화장품을 엄청 샀어.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빨갛게 발그레하게 발라도 거울 속에 내가 너무 초라하다 언니. 옷을 안 사기로 다짐했는데 옷 사던 만큼 화장품에 돈을 쓴 것 같아. 그 초라함이 무서워. 다시 그때 우울함을 느끼는 건 아닐까. 그때의 우울함은 내가 딱 딛고 있는 바닥이야. 그때 보단 우울하지 않다 가 내게 위안이고, 그때보다 우울한 기분이 든다면 선생님 말대로 나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닐까.
가끔 높은 건물을 보면 생각해. 저기서 떨어지면 사라지겠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회사 건물 주변을 산책하면서 생각해. 사라지고 싶다. 그러면서 집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핸드폰만 보다가 자기 발전 없는 내 모습이 한탄스러운 걸 보면 정말 죽고 싶은 건 아니 구나 해. 여전히 내 현실이 마음에 안 든거지. 바꾸고 싶은 현실에 노력하지 않는 나를 괴롭히는 거야. 죽고 싶은 건 아닌 거 같다면서 그 정도로 우울하진 않네 싶어.
어쩌면 나는 내가 별 거 없는 사람이란 걸 받아들여야 될 때인 걸까? 이도 저도 없이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좋은 날씨에 강아지 산책하고 좋은 날들이잖아. 여기 살면 뭐 어때,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인정받지 못하거나 돈을 더 더 많이 벌지 못하면, 더 좋은 끝 모를 더 좋은 더 좋은 게 없으면 뭐 어떤걸까.
사람들도 여전히 힘들다 언니. 남들은 아무래도 별 거 아니라며 넘길 일들도 나는 버거워. 나는 그런 사람이야. 예민하고 까다롭고, 그럴 거면 못돼먹으면 딱 좋았을 텐데 그 정도로 못되진 않아서 남들도 예민하게 들여다보려고 노력해. 번번이 틀리는 게 날 힘들게 하고.
언니 아직도 우울증 약을 먹고 있나? 언니 기분 관리는 어떻게 하는 거야?
이걸 물어보고 싶은데 이걸 물어볼 용기도 없다.